제3화 복수의 스위치
- 강혁의 쇼가 끝났다. 경호원들의 호위 속에 인파를 가로지른 그가 내 앞에 섰다. 플래시 세례가 더욱 거세게 터졌다. 그가 오직 나만 들을 수 있는 낮은 목소리로 비릿하게 속삭였다.
- “봤어? 이게 너와 나의 격차야.”
- 가련한 개미를 보듯, 그의 눈에 연민이 가득 찼다.
- “강싸 부인이라 불려봤자 넌 평생 시궁창 인생이야.”
- 그는 넥타이를 고쳐 매며 다시 고결한 척 얼굴을 바꿨다.
- “이제 ICU로 꺼져. 가서 네 아버지랑 마지막 인사나 나누라고.”
- 그의 목소리엔 온기라곤 없었다.
- “심장 적출 늦어지지 않게.”
- **‘심장’** 이라는 단어를 뱉는 그의 발음이 유독 선명했다. 무딘 칼날로 내 심장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 나는 대답 대신 몸을 돌려 ICU 복도로 향했다. 많은 카메라가 내 뒷모습을 담았다. 라이브 화면 속의 나는 한없이 외롭고 초라해 보였다.
- 사람들은 내 마지막 발악을 기대했다. 처절하게 오열하며 무릎 꿇고 참회하는 그 자극적인 그림을.
- 카메라가 끈질기게 내 뒤를 쫓았다. 강혁은 따라오지 않았다. 그는 수술실 앞에서 제 연인이 얻을 새 생명을 기다리며, 승리의 전리품을 만끽해야 했으니까.
- 복도 끝, ICU의 문이 고요히 서 있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정적 속에 단조로운 기계음만이 울렸다. 지난 7일간 내가 들었던 가장 아름다운 소리였다. 가느다란 줄 하나에 의지하고 있을지언정, 내 아이가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
- 병상으로 다가갔다. 온갖 관에 뒤덮인 작은 몸. 수만 번 입 맞췄던 통통한 뺨은 이제 생기를 잃었다.
- 울지 않았다. 내 눈물은 이안이의 응급실로 실려 가던 날 이미 다 말라버렸으니까. 남은 건 오직 고통과 슬픔뿐이었다.
- 나는 몸을 숙여 이안의 차가운 이마에 입을 맞췄다. 이안이가 잠들 때마다 늘 해주던 것처럼.
- 입술에 닿는 피부는 딱딱하고 싸늘했다. 살아있는 인간의 온기는 전혀 없었다.
- 이안은 죽었다.
- “이안아...”
- 나는 달콤하게 속삭였다.
- “엄마랑 집에 가자. 이제 아빠 같은 건 필요 없어.”
- “…….”
- “그 사람이 우릴 버렸으니, 우리도 그를 버리는 거야.” 카메라는 이 모든 장면을 기록했다. 영상은 병원 밖 대형 스크린과 강혁의 휴대폰으로 전송되었다.
- 셸리의 부모와 웃으며 결과를 기다리던 강혁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딱딱하게 굳었다.
- “이...안...?”
-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 “누구보고 이안이라는 거야? 저 여자 미쳤어?”
- 실시간 채팅창도 의아함으로 폭발했다.
- [ 멘탈 나간 듯;; 자기 아빠한테 이름이 볼었네 ] [ 와, 이거 완전 소름 돋는데? ] [ 빨리 떼어놔! 수술 늦어지면 어떡해! ]
- 강혁과 시청자들이 경악 섞인 시선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몸을 일으켰다.
- 내 시선은 이안이의 가슴 위, 인공호흡기와 연결된 투명한 관에 고정되었다. 생명력이 사라진 증거이자, 내 복수의 시작을 알리는 스위치.
- 손을 뻗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 그리고, 단호하게. 인공호흡기의 전원 플러그를 뽑아버렸다
- 순식간에 세상이 고요해졌다.
- 다음 순간, 고막을 찢는 경보음이 층 전체에 울려 퍼졌다. 모니터 위의 녹색 심박선이 거칠게 요동치더니, 이내 완벽한 직선을 그렸다.
- 화면 위로 붉은 글자가 떠올랐다.
- [ 심박수 : 0 ] [ 호흡 : 0 ]
- 모든 것이 끝났다. 그리고,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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