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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 놈들이 저렇게 떠받드니 이재현은 금세 또 우쭐해졌다.
  • 그는 아직도 훌쩍이는 한지수를 품에 안은 채, 무슨 은혜라도 베푸는 사람처럼 나를 내려다봤다.
  • “서은채, 그만해.”
  • “내 관심 끌려고 이러는 거, 다 알거든? 수작이 너무 유치하잖아.”
  • “지금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하면, 아까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해 줄게.”
  • “그래도 우리가 몇 년을 만났는데. 나 그렇게까지 매정한 사람 아니야.”
  •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왔다.
  • “이재현, 내 말이 안 들려?”
  • “나 결혼 안 해. 우리 여기서 끝이야. 알아들었어?”
  • 이재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좋아, 서은채. 잘났다, 아주.”
  • “헤어지자고? 그래, 그러자.”
  • 그가 손바닥을 위로 한 채 내밀었다.
  • “돈 갚아.”
  •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 “무슨 돈?”
  • 이재현은 차갑게 비웃었다.
  • “모른 척하지 마.”
  • “네 엄마 치료비 없어서, 내가 대신 1억 원 내줬잖아.”
  • “너네 엄마 살리느라 내가 돈 안 썼으면 내 회사 차리는 게 이렇게까지 늦어졌겠어?”
  • “헤어질 거면 그 돈부터 깔끔하게 정리하자.”
  • “1억 원, 한 푼도 빼지 말고 갚아. 다 갚고 나면 어디로 꺼지든 상관 안 해.”
  • 어처구니가 없었다.
  • 그때 엄마는 요독증 판정을 받고 신장이식이 필요한 상태였다.
  • 이재현은 내가 형편이 어려운 줄 알고, 잘난 척 한번 해 보겠다고 집까지 팔아 마련한 돈을 내 손에 억지로 쥐여 줬다.
  • 하지만 그 1억 원쯤은 이미 여러 방식으로 열 배도 넘게 갚았다.
  • 지금 그가 그토록 자랑하는 오메이와의 대형 계약도 사실은 내가 김 실장님께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 그런데 이제 와서 고작 그 1억 원을 내놓으라고?
  • 역시 가난한 남자 돈은 받는 게 아니라고 했지.
  • 한 번 받으면 평생 생색으로 돌아오니까.
  • 한지수가 이재현의 품에서 얼굴을 쏙 내밀더니, 기다렸다는 듯 말을 보탰다.
  • “재현 오빠, 오빠는 너무 착해.”
  • “이런 꽃뱀한테는 좋게 대해 주면 안 돼.”
  • “1억 원이 무슨 돈인지 알아? 저런 밑바닥 인생은 평생을 벌어도 손에 못 쥘 돈이야.”
  • “내가 보기엔 애초에 갚을 생각도 없었겠지.”
  • 그러더니 갑자기 입을 틀어막고는, 엄청난 비밀이라도 알아낸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 “아, 맞다!”
  • “엊그제 내가 직접 봤어. 얘가 나이 지긋한 남자 차에 타더라.”
  • “어쩐지 갑자기 파혼하자고 하더니, 벌써 더 돈 많은 남자한테 붙은 거였네.”
  • “진짜 뻔뻔하네. 감히 재현 오빠를 배신해? 진짜 미쳤나 봐.”
  •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분위기가 삽시간에 술렁였다.
  • 주변에 있던 금수저 무리들이 노골적으로 비웃기 시작했다.
  • “진짜야? 와,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네.”
  • “이재현, 이걸 그냥 넘어간다고? 위자료라도 받아 내야지.”
  • 이재현은 눈에 불을 켠 채 나를 노려봤다.
  • “지수 말이 사실이야?”
  • “서은채, 너 진짜 별짓을 다 하는구나?”
  •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 “헛소리하지 마.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야.”
  • 나는 그냥 아빠 차를 탔을 뿐인데.
  • 이런 인간들한테 내가 왜 하나하나 해명해야 하지??
  • 이재현은 얼굴을 붉힌 채 나를 노려봤다.
  • “그래서 계속 핑계 대면서 상견례도 안 잡은 거구나.”
  • “알고 보니 스폰이나 받는 천박한 여자였네.”
  • “당장 1억 갚아. 너 같은 건 한 번 더 보는 것도 역겨우니까.”
  • 저런 인간과는 더 말 섞고 싶지도 않았다.
  • “그래.”
  • “지금 당장 갚아 줄게.”
  • 나는 싸늘하게 그를 바라봤다.
  • “대신 이재현, 잘 들어.”
  • “오늘부로 우리 사이는 완전히 끝이야.”
  • 말을 마치고 나는 그대로 돌아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 뒤에서는 한지수가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 “웃기고 있네. 분명 그 늙은 남자한테 전화해서 돈 보내 달라고 하려는 거겠지.”
  • 나는 상대하지 않았다.
  • 재빨리 캐리어를 열어 짐부터 챙겼다.
  •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이재현의 계좌번호를 입력해 송금 버튼을 눌렀다.
  • 그리고 바로 김 실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 “김 실장님, 오메이 측에서 이재현과 진행 중인 계약, 오늘부로 전부 취소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