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은 숨이 막힐 듯 비좁고 눅눅했다. 천장에 난 손바닥만 한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줄기만이 이곳이 지상임을 겨우 알리고 있었다. 사방에는 먼지 쌓인 잡동사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게 내 친부모라는 작자들이 십수 년 만에 돌아온 친딸에게 내어준 ‘방’의 실체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에겐 구본혁 회장님이 있었고, 그분이 나를 이 진흙탕에서 반드시 끄집어낼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구 회장님이 보낸 메시지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구 회장: 서윤아, 아직 집엔 안 들어온 거니? 혹시 거기서 또 서운한 대접이라도 받은 게냐?]
“조금요.” 나는 짧게 답장을 보냈다. 바로 다음 메시지가 도착했다.
[구 회장: 그자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주고 싶니?]
창밖으로 외롭게 떠 있는 달을 응시하며, 나는 단호하게 두 글자를 눌러 응답했다.
“원해요.”
답장을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층이 발칵 뒤집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리나의 날카로운 비명과 한진태 회장의 불호령, 그리고 엄마 한수진 씨의 경악 섞인 목소리가 뒤엉켜 다락방 문틈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빠! 엄마! 내 광고 계약이 전부 취소됐대! 브랜드 측에서 내 이미지가 나쁘다면서, 말도 안 되는 위약금을 청구하겠다는데 어떡해!”
“여보, 큰일 났어! 우리 한강 그룹 주가가 하한가로 치닫고 있다고! 파트너사들이 줄줄이 전화를 걸어서 투자를 철회하겠다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절망적인 소음 속에서 한수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구진혁 씨를 향했다.
“구진혁 씨! 진혁 씨가 방법 좀 찾아봐요! 어서 구본혁 회장님께 전화드려서 손 좀 써달라고 하란 말이에요!”
“제발 좀 귀찮게 굴지 마세요! 우리 아버지는 지금…… 내 전화는 아예 받지도 않으신다고요!”
나는 차가운 다락방 문에 몸을 기댄 채, 그들의 파멸 소나타를 조용히 감상했다. 화려한 몰락의 막이 아래층에서 막 올랐고, 그 잔인한 대본을 쥔 연출가는 바로 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락방 문이 거친 발길질에 비명 지르듯 열렸다. 눈이 벌겋게 충혈된 한진태 회장이 성난 황소처럼 들이닥치더니, 다짜고짜 내 옷깃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너지! 이서윤, 네년이 꾸민 짓이지!”
그가 잡아끄는 힘에 몸이 비틀거렸지만, 나는 오히려 차갑게 식은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한 회장님.”
“이게 끝까지 시치미를 떼!”
그는 이성을 잃은 듯 손을 번쩍 들어 내 뺨을 내리치려 했다. 그 서슬 퍼런 폭력이 내 얼굴에 닿기 직전, 낮고 묵직한 음성이 문가에서 얼음처럼 울려 퍼졌다.
“한 회장님, 이제 막 찾은 친딸에게 손찌검이라니.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성진 그룹과의 관계가 아주 볼만해지겠군요?”
한진태 회장의 동작이 공중에 박힌 듯 뚝 멈췄다. 그가 떨리는 고개를 돌려 문가에 선 남자를 확인했다.
성진 그룹의 구본혁 회장. 구진혁 씨의 아버지이자, 이 바닥의 생태계를 지배하는 진짜 포식자였다. 그는 몸에 딱 맞는 검은 수트를 입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공간 전체를 압도했다. 그 뒤로는 무장한 듯한 경호원들과 서류 가방을 든 엘리트 부하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한 회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내 옷깃을 쥐고 있던 손에서도 스르르 힘이 빠져나갔다.
“구…… 구 회장님? 여긴 어찌…….”
구 회장님은 그를 벌레 보듯 무시한 채 곧장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의 눈빛엔 노골적인 걱정과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그는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자신의 수트 재킷을 벗어 내 초라한 어깨 위에 덮어주었다.
“가자, 서윤아. 너를 기다리는 진짜 집으로 데려다주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곁에 섰다. 한 회장의 곁을 지나칠 때, 그는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거실에 있던 한수진 씨와 강리나 역시 구 회장님의 등장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강리나가 악을 쓰며 달려들려 했지만, 사색이 된 구진혁 씨가 그녀의 팔을 낚아채 저지했다.
구진혁 씨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아, 아버지…… 저…….”
구 회장님은 아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뒤에 선 비서에게 나직하게 명령했다.
“언론사에 공식 발표해. 성진 그룹과 한강 그룹의 혼약은 이 시간부로 전면 무효다.”
“또한, 한 회장. 네 무능함이 우리 그룹에 끼친 손실에 대해서는 법무팀을 통해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다. 파산 준비나 하고 있지.”
그 선전포고를 끝으로, 구 회장님은 내 어깨를 단단히 감싸 안으며 경악에 빠진 그 집구석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전용 롤스로이스의 뒷좌석에 깊숙이 몸을 묻자 그제야 팽팽했던 긴장이 풀렸다. 구 회장님이 따뜻한 물이 담긴 컵을 내밀었다.
“많이 놀랐느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창밖으로 빠르게 멀어지는 한씨 가문의 저택을 응시했다.
“아니요. 그저 우스워서요.”
가짜 딸 강리나에게 눈이 멀어 제 살을 깎아 먹은 그들의 말로가 너무나 명확해 보였으니까. 이제는 그들이 뿌린 대로 거둘 시간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세워두었니?” 그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깊고 형형한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제 것을 전부 되찾아올 거예요. 한강 그룹의 모든 것은 원래부터 내 것이었으니까요.”
구 회장님이 만족스러운 듯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마치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