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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된 사랑

만료된 사랑

Liora

Last update: 1970-01-01

제1화

  • ——
  • 나는 이상현을 10년이나 사랑했다. 하지만 나와 그의 내연녀가 동시에 바다에 빠졌을 때, 그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부터 구했다.
  • 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 그런데 그런 나에게, 그가 내게 다른 남자를 꼬셔서 같이 자라고 시켰다. 단순히 영업 비밀을 캐내라는 이유로.
  •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10년 동안 붙잡고 있던 감정, 이제 버리기로 했다.
  • 꼬셔서 자라고? 당연히 할 수 있지. 그뿐만 아니라, 그 남자가 내게 빠지게 만들 거다. 그리고 이상현의 모든 것을 내 손으로 박살 내 주겠다.
  • ——
  • 비릿한 바닷물이 입과 코를 사정없이 헤집고 들어왔다.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워져 끝을 알 수 없는 심해로 가라앉고 있었다.
  •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간신히 고개를 들었을 때, 수면 위로 이상현의 얼굴이 보였다.
  • 오늘은 우리의 10주년이다. 하지만 그는 크루즈 갑판 위에서 내연녀와 밀회를 즐기고 있었고 보란 듯이 그 장면을 SNS에 올려 과시했다.
  • 나는 병든 몸을 이끌고 작은 배를 빌려 그 현장으로 향했다. 그저 단 하나, 그의 진심 섞인 대답이라도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 하지만 유나은의 친구들이 몰려와 미친 듯이 나를 두들겨 팼고, 나는 결국 균형을 잃은 채 차가운 바다로 추락했다.
  •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유나은을 함께 끌어내렸다.
  • 이상현이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키워낸 잘나가는 슈퍼모델, 그의 가장 소중한 내연녀...
  • 나는 그가 나를 구해주리라 믿으며 버둥거렸다. 하지만 이상현은 오직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차갑게 훑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유나은을 향해 헤엄쳐 갔다.
  • 나의 심장은 칼로 난도질당하는 것 같았다. 이 모든 비극은 3년 전과 지독하게 닮아 있었다.
  • 3년 전, 한별 그룹은 사활이 걸린 인수합병을 극적으로 성사시켰다. 그 공으로 이상현은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최상위 대표 반열에 올랐다.
  • 그러나 세상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 거대한 딜을 끝까지 밀어붙인 사람이 바로 나였다는 사실을.
  • 이상현은 그저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다.
  •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매일 고작 두세 시간만 자며 사투를 벌였었다. 몇 번이나 몸이 무너져 내렸지만, 오직 그를 위해 내 지병인 심장병조차 외면하며 버텨냈다.
  •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을 때, 나는 드디어 짧은 휴식을 가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 하지만 이상현은 내게 축하 파티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본래 비서가 도맡아야 할 업무였음에도 그는 당연하다는 듯 나에게 일을 떠넘겼다.
  • 어리석고 순진했던 나는 그 무리한 요구조차 ‘나만을 신뢰한다’는 신호로 착각했다.
  • 그렇게 나는 단 한 순간도 쉬지 못하고 밤을 지새우며 초청 메일을 작성하고, 정·재계의 유력 인사들을 한 명 한 명 섭외했다. 직접 장소를 답사하고 현장의 작은 디테일까지 조율하느라 몸이 부서지는 줄도 몰랐다.
  • 밤샘 작업 끝에 두툼한 기획 서류를 챙겨 그의 사무실로 향했을 때, 창밖은 이미 희뿌연 새벽빛으로 밝아오고 있었다.
  • 40시간째 한숨도 자지 못한 몸에 싸늘한 한기가 밀려왔다.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눈앞이 칠흑처럼 어두워졌고 울컥하며 뜨거운 피가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 숨이 턱 막히는 고통 속에서 나는 떨리는 손으로 가장 의지했던 이상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 “상현아... 나 좀 구해줘...”
  • 하지만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것은 화려한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뿐이었다. 그는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 “나은이 파티 때문에 바쁘니까 이따 얘기해. 파일은 거기 두고 그냥 집에 가.”
  • 이상현은 내가 왜 전화를 했는지, 목소리가 왜 이런지 단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는 용건만 내뱉고는 냉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 그날 밤, 복도에 쓰러진 나를 발견한 사람은 순찰을 돌던 미화원 아주머니였다.
  • 응급실로 실려 간 뒤, 들려온 진단명은 과로로 인한 심각한 위출혈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생명이 위험했을 거라는 의사의 경고에도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 그저 병상에 누워 초점 없는 눈으로 하얀 천장만 멀거니 바라볼 뿐이었다. 뺨을 타고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이 베개를 적셨다.
  • 10년... 나는 이상현의 곁을 꼬박 10년이나 지켰다. 아무것도 모르던 사회 초년생에서 시작해 그의 곁에서 판세를 가장 정확히 읽는 눈이 되었고, 꼬인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는 손이 되었다.
  • 나는 골치 아픈 재무제표를 밤새 분석하고, 산더미 같은 프로젝트 속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사업만을 골라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 그를 이용해 먹으려 드는 하이에나들을 온몸으로 막아낸 것도 나였다.
  • 무일푼 청년이었던 이상현을 지금처럼 값비싼 수트가 어울리는, 촉망받는 비즈니스계의 신성으로 만든 건 결국 나의 헌신이었다.
  • 하지만 그 대가로 내게 돌아온 것은 매번 차갑게 밀려나는 자리뿐이었다.
  • 그에게 나는 그저 쓰기 편한 도구에 불과했다. 지치면 갈아 끼우고, 고장 나면 미련 없이 버려지는 소모품...
  • 그는 나의 희생을 당연한 의무로 여겼다. 3년 전 인수합병 때도, 그리고 차가운 바다에 던져진 지금 이 순간에도.
  • 나는 깊은 절망 속에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차라리 바닷물이 나를 완전히 집어삼키도록 내버려두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으니까.
  • 하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 시야에 들어온 것은 하얀 병실 천장이었다.
  • ‘나... 안 죽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