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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 “최서혜!”
  • 그제야 정윤혁이 허둥대며 소리치고 달려와 날 부축하려 했다.
  • 아직 그 찌르는 통증이 가라앉기도 전에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 깨지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 휙 고개를 돌리자 나는 심장이 그 순간 덜컥 멎는 줄 알았다.
  • 엄마의 유일한 영정사진이 탁자에서 떨어져 액자 유리가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 그 개가 뻔뻔하게 사진 위를 발로 짓밟고 있었다. 엄마 눈 부분에는 발톱에 긁힌 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 심지어 고개까지 번쩍 들더니 마치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받으려는 듯 주인 정수아를 바라봤다.
  • 그리고 난 정수아 눈끝에 스치고 지나간 그 우쭐한 미소를 놓치지 않았다.
  • “엄마!” 나는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다.
  • 정윤혁이 날 일으키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 “서혜야, 진정해. 사진이 깨졌어도 다시 뽑으면 되잖아. 괜찮아.”
  • 정수아도 손으로 입을 가리며 억지로 미안한 척 다가왔다.
  • “정말 미안해, 서혜야. 러키가 너를 너무 좋아해서 친해지고 싶었나 봐.”
  • 정수아는 바닥의 사진을 힐끗 훑더니 비꼬듯 말했다.
  • “근데 액자 퀄리티가 왜 이래? 살짝만 스쳐도 박살이네.”
  • “어떤 건 사람도 그래. 내세울 데가 없어서 살짝만 건드리면 와장창 깨지고 감쪽같이 사라지는 거지 뭐야.”
  • “정수아!” 확 고개를 든 내 눈에 핏발이 섰다. “지금 뭐라 그랬어? 다시 말해 봐!”
  • 정윤혁이 잽싸게 정수아의 앞을 가로막았다.
  • “최서혜, 수아 누나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네게 사과도 했잖아. 또 뭘 더 바래?”
  • 정수아가 정윤혁 등 뒤로 비껴 서서 코웃음을 쳤다.
  • “내가 틀렸어? 원래 오래 못 살 팔자였잖아. 남은 건 허접한 사진 한 장……”
  • 짝!
  • 나는 있는 힘껏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 정윤혁의 얼굴이 시커멓게 굳더니 주먹을 꽉 쥐고 나를 노려봤다.
  • 내 눈빛이 끝내 꺾이지 않자 그는 천천히 주먹을 풀더니 정수아를 부축해 안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 그 뒤 며칠 동안, 정윤혁은 돌아오지 않았다.
  • 결혼식 전날 밤, 난 윤세찬이랑 밥을 먹고 있었다.
  • 폰 화면이 번쩍였다. 정윤혁한테 온 메신저였다.
  • “내일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해. 장소와 하객은 전부 내가 다 준비했어. 하지만 결혼식이 끝나면 너는 모든 친척과 지인들 앞에서 수아 누나에게 정중히 사과해. 그리고 그녀의 용서를 받아.”
  • 나는 입꼬리가 비웃듯 올라갔다. 화면을 툭 꺼버리고 가방에 던져 넣었다.
  • “아직도 헛꿈을 꾸네.”
  • 윤세찬이 고개를 들어 날 보더니 눈빛에 옅은 칭찬이 비쳤다.
  • “네가 준 정씨 가문 그룹 내부 정보는 꽤 쓸모 있었어.”
  • 난 와인잔을 들어 그와 살짝 부딪쳤다.
  • “서로 필요한 거 챙긴 거지. 잘해 보자.”
  • 윤세찬이 나를 뚫어지게 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 “내겐 이게 단순한 협업이 아니야.”
  • 잠깐 뜸을 들이더니 진지하게 이어갔다.
  • “최서혜, 난 진짜 너랑 결혼하고 싶어.”
  • 난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잔잔하게 웃었다.
  • 다음 날, 결혼식장.
  • 정윤혁은 맞춤 수트를 말끔히 차려입고 격식 있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 시간이 천천히 흘렀지만 난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 정수아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 “윤혁아, 서혜가 아직도 삐져 있는 거 아니야? 전화 한 번 더 해보지 그래?”
  • 정윤혁의 인내가 바닥나려던 찰나, 그의 폰이 울렸다. 내가 보낸 문자였다.
  • 그는 곧장 문자를 열었다. 당연히 내 사과일 줄 알았다.
  • 하지만 내용을 보자 그의 미소가 입가에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 “정윤혁 씨, 정수아 씨를 동반해 저와 윤세찬의 결혼식에 정중히 초대합니다.”
  • “장소는 맞은편 호텔 최상층 스카이홀입니다.”
  • “최서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