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 그때 정윤혁은 달려와 사람들을 흩어지게 하고 사진들을 전부 찢어버렸다.
- 그는 나를 꽉 안고 몇 번이고 말했다. “서혜야, 무서워하지 마. 그거 네가 아니라는 거 나 알아.”
- 그의 품은 따뜻했고 목소리는 단호했다.
- 나는 그의 소매를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 붙잡듯 꽉 잡고 애원했다. “윤혁아, 가서 모두에게 말해줘. 그 사진들은 전부 가짜고 정수아가 합성한 사진으로 나를 모함한 거라고. 제발 가줘.”
- 하지만 그는 말이 없었다.
- 내 팔을 감싼 그의 손이 굳었고 눈길은 자꾸 나를 피했다.
- “서혜야.”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녀는 내 누나야. 사람들 앞에서 그녀가 합성한 가짜 사진으로 널 모함했다고 인정하면 그녀 명성은 어쩔 거야? 우리 집안 체면은 어디에 두고?”
- “좀만 이해해 줘, 응? 내가 널 지킬게. 다시는 그녀가 널 못 다치게 할 거야.”
- 그 순간, 나는 그의 눈에 얽혀 있던 복잡한 감정을 똑똑히 봤다.
- 그건 누나를 감싸는 동생의 마음만이 아니었다. 그 자신도 눈치 못 챘을, 피붙이 정을 넘어선 그 이상이었다.
- 이 일을 알게 된 우리 엄마는 거의 미친 듯했다.
- 엄마는 내 억울함을 풀어주려 했지만 학교 쪽은 정씨 가문이 이미 손을 써놔서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 엄마는 울지도 소리치지도 않았다.
- 다음 날, 엄마는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강의동에서 몸을 던졌다. 목숨으로 뜻을 밝혔다.
- 엄마가 남긴 건 쪽지 한 장뿐이었다. “내 딸 최서혜는 결백하다.”
- 연회장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팔다리가 다 저릴 때까지 바닥에 멍하니 앉아 얼마나 있었는지 몰랐다.
- 그러다 나는 천천히 휴대폰을 꺼내 번호 하나를 눌렀다.
- 전화는 신호가 한 번 울리자마자 상대가 받았다.
- 나는 천천히 말했다. “전에 나랑 결혼하고 싶다 했지? 다음 주 화요일이 좋은 날이래.”
- 상대가 가볍게 웃었다. “다 네 뜻대로 해.”
- 나는 휴대폰을 꽉 쥐고 물었다. “정씨 가문을 무너뜨리게 도와주겠다던 말은 아직 유효해?”
- “당연하지. 네가 내 아내가 되면 안팎으로 손잡고 정씨 가문을 무너뜨리는 건 시간문제야.”
- “좋아.” 상대는 그렇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마친 나는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 소파에 막 앉자마자 윤세찬이 디자인이 정교하고 재단이 고급스러운 웨딩드레스 사진을 몇 장 보냈다.
- “맘에 드는 거 있어?”
- 사진을 보고 있는데 문 여는 소리가 났다.
- 정윤혁이 내 곁으로 와서 내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 웨딩드레스 사진을 보더니 그의 눈빛에 잠깐 만족이 스쳤다.
- 그는 몸을 숙여 내 어깨를 감싸려 했지만 나는 몸을 빼서 피했다.
- 그가 잠깐 멈칫하더니 혼잣말하듯 말했다. “드레스 보고 있었네? 잘 됐다. 수아 누나가 아까 그러더라. 너 여기 친구도 별로 없으니 들러리 서주겠대. 보답으로 작은 백 하나 선물하면 돼.”
- 그 말을 듣고도 내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 어차피 내가 결혼할 사람은 그가 아니니까.
- “그리고 수아 누나가 이따 올 거야. 네 이름으로 초대했어. 낮 연회에서 있었던 불쾌한 일을 사과하는 의미로 말이야.”
- 그러면서 그는 선물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좀 있다가 수아 누나한테 줘. 네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 “정윤혁.”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비웃듯 말했다. “사과하고 싶으면 네가 직접 무릎 꿇고 빌든가. 나를 끌어들이지 마.”
- 그의 얼굴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막 나를 타이르려는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이어서 정수아의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러키야, 어서 들어와. 우리 서혜가 집에 있나 보자?”
-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사람 절반 키만 한 큰 개 한 마리가 나를 향해 돌진했다.
- 나는 어릴 때부터 개가 제일 무서웠다.
- 그래서 본능적으로 비명이 튀어나왔고 몸이 말을 안 들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쳤다. “비켜! 정윤혁, 살려줘. 저 개를 좀 치워줘.”
- 정윤혁은 그걸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개를 잡으러 나왔다.
- 하지만 옆에 있던 정수아가 그의 팔짱을 덥석 끼고 환하게 웃으며 막았다. “윤혁아, 긴장하지 마. 러키는 순해. 서혜를 너무 좋아해서 같이 놀고 싶어 하는 거야. 악의는 없어.”
- 정윤혁의 발걸음이 거기서 멈췄다.
- 막는 사람이 없자 개는 더 신이 나서 으르렁거리며 나에게 확 달려들었다.
- 나는 필사적으로 뒤로 피하다가 발이 뭔가에 걸렸다. 쾅 소리와 함께 뒤통수가 탁자 모서리에 거세게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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