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 “닥쳐.” 정윤혁은 더 이상 이 얘기 하고 싶지 않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자리에 있던 하객들을 둘러봤다.
- “여러분, 민망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최서혜가 개인적인 이유로 수아 누나를 심하게 오해하고 질투했습니다. 그게 쌓여서 마음이 많이 뒤틀린 거예요.”
- 정윤혁은 말을 이었다. “제 휴대폰에 있던 수아 누나와의 사진을 몰래 여러 번 싹 지웠고 각종 익명 계정으로 괴롭히고 비방도 했습니다. 그래도 전 옛정을 생각해서 조용히 처리했어요.”
- 이 말을 듣자 하객들 표정이 금세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 정윤혁이 계속 말했다. “오늘 돌아다닌 그 영상들은 전부 최서혜가 자기 손으로 합성한 겁니다. 제일 큰 피해자는 수아 누나예요.”
- 정윤혁의 말, 그리고 눈물 그렁그렁한 정수아의 얼굴을 보자 주변의 유명인사들과 권위 있는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 “아 그래서였구나. 진짜 또라이네.”
- “정윤혁이 저런 사람을 곁에 두고 어떻게 참았대?”
- “가난한 집 출신은 어디 가도 티가 나지. 내 구두라도 들 자격도 없어.”
- “너 그거 알아? 걔 엄마 예전에 창녀였대…”
- 하객들이 입을 모아 내게 험담을 퍼부었다. 경멸 섞인 시선이 연달아 내게 꽂히자 나는 주먹이 절로 꽉 쥐어졌다.
- 정윤혁이 나를 보며 톤을 낮췄다. “최서혜, 오늘은 네가 너무했어. 지금 당장 수아 누나한테 사과해.”
- 사과? 비웃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 정수아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말로만 하면 끝이야? 정윤혁, 난 얘가 무릎 꿇고 사과하길 원해.”
- 나는 고개를 확 들고 정수아를 똑바로 노려봤다. 눈에 독이 가득 찼다. “꿈도 꾸지 마.”
- 정윤혁이 미간을 찌푸리고 막 정수아를 달래려다 그녀의 그렁한 눈과 마주치자마자 바로 마음이 무너졌다.
- 그가 옆에 있던 보안요원들에게 눈짓했다.
- 보안요원 두 명이 곧바로 달려와 날 붙잡고 억지로 무릎을 꿇게 했다.
- 쿵 소리와 함께 나는 바닥에 무릎을 박았다. 눈물이 눈가에 그렁그렁 맺혔지만 끝까지 떨어지지 않게 이를 악물었다.
- “됐어.” 정윤혁은 충혈된 내 눈가를 보더니 복잡한 눈빛을 했다.
- 그는 한숨을 쉬고 정수아를 돌아봤다. “수아 누나, 최서혜가 돌아가서 제대로 반성하게 할게. 날 잡아 직접 찾아가서 사과하게 할게, 어때?”
- 정수아는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대충 넘어갔다.
- 정윤혁은 손짓해 하객들을 돌려보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정수아를 몇 마디 달랜 뒤 직접 연회장 밖까지 바래다줬다.
- 소란이 가라앉자 정윤혁이 다시 돌아와 손을 내밀어 나를 일으키려 했다.
- 나는 그 손을 확 뿌리쳤다.
- 정윤혁의 손이 허공에서 굳었다. 그는 내 눈에 맺힌 분노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 “서혜야.” 그는 달래는 톤으로 말했다. “그 일은 더 이상 꺼내지 않기로 했잖아?”
- “물론 수아 누나가 잘못하긴 했지. 근데 그땐 어렸고 충동적으로 그런 거였잖아.”
- “게다가 난 너랑 결혼하겠다고 했고 내 평생을 걸고 보상하겠다고도 했잖아. 왜 아직도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거야?”
- 그 말이 둔한 칼처럼 이미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을 계속 비벼댔다.
- 눈가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붉어졌다. 애써 봉인해 둔 장면들이 제멋대로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 열여덟 살, 나는 정윤혁과 사귀기 시작했다.
- 그는 나한테 정말 잘해줬다.
- 딱 그날까지였다. 그날 정수아가 무리를 끌고 우리 반으로 들이닥치더니 합성해 만든 내 지저분한 사진들을 교실 벽이랑 문, 창문에까지 죄다 붙여버렸다.
- 나는 피가 순식간에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옆에서는 애들이 놀라서 숨을 들이키는 소리만 들렸다.
- 정수아는 교실 한가운데 서서 그 사진들을 가리켰다. “다들 봐. 너희가 청순하다고 믿던 학교의 최서혜, 속은 그 창녀였던 엄마랑 똑같이 천해.”
- 그 말 한마디가 내 마지막 남은 체면까지 싸그리 벗겨냈다.
- 나는 미친 듯 달려가 그 사진들을 찢으려 했지만 그녀가 데려온 애에게 한 방에 걷어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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