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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 그는 몇 초 동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현관 밖에 늘어선 검은 세단들을 바라봤다. 서른 대의 차량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길게 늘어서 있었고, 차 앞에 꽂힌 늑대 문양의 깃발이 바람에 거세게 펄럭였다. 검은 바탕에 금빛으로 새겨진 늑대 문장이 그의 눈동자 속에서 일렁였다.
  •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 "너…… 정말 그 죽어가는 불구자한테 시집가는 거야?"
  • 윤아린이 곧장 달려와 강도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 "언니! 정말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도윤 오빠가 날 구해 주려고 그 크리스털 목걸이를 선택한 거잖아. 그런데 어떻게 돌아서자마자 다른 사람이랑 결혼할 수 있어?"
  • 붉게 충혈된 눈가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 "언니, 허영심 때문에 그러는 거잖아! 설마 한성가의 지위와 재산이 탐나서 그러는 거야?!"
  • "아린아."
  •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그녀를 바라봤다. 시선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았다.
  • "내 결혼식을 망치고, 가문의 미래까지 망쳐 놓으면 네가 책임질 수 있어?"
  • 아린의 울음소리가 그대로 목에 걸렸다. 입술을 몇 번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 강도윤은 그녀의 뒤에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붕대 아래 손가락 마디에서 검붉은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 "서아야, 넌 이러면 안—"
  • "내가 이러면 안 되는 게 뭔데?"
  • 나는 계단을 내려왔다. 하얀 웨딩드레스 자락이 마지막 세 계단을 천천히 쓸고 지나갔다.
  • 그의 앞에 멈춰 선 나는 고개를 들어 강도윤을 바라봤다. 코끝이 닿을 듯 말 듯 가까운 거리였다.
  • "강도윤. 네가 아린을 선택했을 때, 내 생각은 해 봤어?"
  • "내 엄마의 목걸이를 끊어 버렸을 때는?"
  • "나는—"
  • "일주일."
  • 나는 그의 말을 끊었다.
  • "네가 일주일만 줬잖아. 난 그 일주일 동안 내 살길을 찾았어."
  • 나는 현관 밖에 늘어선 차량들을 한 번 바라본 뒤 다시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 "지금 저 문밖에 웨딩카가 서 있어. 서른 대나 되는 차량이 줄지어 있고, 이 도시 절반이 이 결혼을 알게 됐어."
  • "그래도 막을 거야?"
  • 그의 턱이 단단하게 굳었다. 목 옆으로 푸른 핏줄이 선명하게 솟아올랐다.
  • "네가 한성가와의 결혼을 막을 수 있어?"
  •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철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내게 다가와 대문을 열어 주었다. 아침 햇살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눈이 시릴 만큼 새하얀 빛이었다. 그 순간 저택 밖에 늘어서 있던 서른 대의 차량이 동시에 시동을 걸었다. 낮고 묵직한 엔진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마치 야수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 같았다.
  • 나는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어 문턱을 넘어섰다. 그때 등 뒤에서 강도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갈라지고 잠긴 목소리였다.
  • "서아……."
  •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윤아린의 울음소리가 뒤에서 날카롭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 "도윤 오빠, 가지 마! 언니가 자기가 가겠다고 한 거잖아! 한성가 돈이 탐나서 그러는 거라고! 자기가 직접 그렇게 말했다고!"
  • 내 등 뒤에서 대문이 천천히 닫혔다. 아침 햇살이 하얀 웨딩드레스 위로 쏟아지며 얇은 금빛 테두리를 만들어 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긴 치맛자락이 거칠게 펄럭였다.
  • 나는 아무 말 없이 저택 앞에 대기하고 있던 무광의 검은 웨딩카를 향해 걸어갔다.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문 너머에서 들려온 탓에 웅웅 울릴 뿐, 무슨 말을 하는지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 나는 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죽 시트는 차가웠고, 에어컨은 이미 켜져 있었다. 좌석 위에는 얇은 담요까지 깔려 있었다. 나는 몸을 안으로 밀어 넣으며 드레스 자락을 발밑으로 가지런히 모았다.
  • 차 문이 닫히는 순간, 세상이 조용해졌다. 차 앞에 꽂힌 늑대 문양의 깃발이 바람에 세차게 펄럭이며 쉴 새 없이 펄럭이는 소리를 냈다. 나는 차창 너머로 강도윤이 대문을 밀치고 뒤쫓아 나오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저택 계단 위에 멈춰 서서 입술을 몇 번이나 움직이며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택도, 강도윤도, 윤아린도, 그리고 내가 닫고 나온 그 대문도 모두 뒤로 밀려났다. 점점 작아지고, 점점 멀어졌다.
  • 나는 고개를 숙여 목에 걸린 진주 목걸이를 바라봤다.
  • 마흔일곱 알. 비어 있는 자리 하나가 쇄골 위에 닿아 있었다. 차갑고 서늘했다. 마치 무언가 하나가 빠져 버린 심장처럼.
  • 서른 대의 차량이 길게 이어진 행렬이 거리를 가로질러 교회를 향해 달렸다. 도시 절반을 뒤흔들 만큼 거대한 행렬이었다. 그런데 정작 교회 안에는 단 한 사람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 내 약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