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 테론이 싸늘하게 비웃었다.
- 그 순간, 내게 남은 마지막 희망마저 산산이 부서지리라는 걸 직감했다.
- “착각하지 마, 칼리스타!”
- 그 말은 또 한 번의 따귀처럼 나를 후려쳤다.
- “널 보러 온 게 아니야. 세실리아가 연회에서 갈아입을 드레스를 가져오라고 해서 온 거야. 오는 길에 우연히 널 봤을 뿐이야, 이 미친년아.”
- 테론은 연민 한 점 없는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 “자살 소동으로 또 날 붙잡아 두려는 수작 부리지 마. 넌 이미 세실리아를 충분히 아프게 했잖아. 네 미친 짓으로 주변 사람들 겁주지 좀 마.”
- 미친 짓.
- 테론은 그 한마디로 친여동생인 나를 규정했다.
-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나를 괴롭혀 온 저주마저 단 한마디로 부정해 버렸다.
- 나는 씁쓸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 가슴 한복판이 텅 빈 듯 시리고 아팠다.
- “오빠.”
-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딱 한 번만… 한 번만이라도 나를 믿어 주면 안 돼? 그날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 말 좀 들어 줘.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해. 내가 한 말은...”
- “그런 맹세로 세실리아에게 저주라도 내리겠다는 거야?!”
-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테론이 날카롭게 끊어 냈다.
- 그는 성큼 다가와 나를 거칠게 밀쳤다.
- “세실리아의 행복을 망치지 마, 이 거짓말쟁이야.”
- 나는 젖은 진흙 위로 나뒹굴었고 뾰족한 갈대가 손바닥을 찔렀다.
- 테론은 처음부터 나를 걱정한 게 아니었다.
- 이제야 분명히 알았다.
- 테론은 세실리아를 사랑했다.
- 하지만 세실리아가 끝내 선택한 사람은 반드로스였다.
- 그래도 테론은 그녀가 웃는 모습 한 번 보겠다고 혼례 날 심부름까지 자청했다.
- 그렇다면 나는?
- 같은 피를 나눈 동생인 나는, 변명 한마디 들어 줄 가치조차 없었다.
- 나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몸을 돌려 강물 속으로 한 걸음씩 들어갔다.
- 차가운 물이 발목을 삼키더니 곧 무릎까지 차올랐다.
- 테론은 둑 위에 서서 비아냥거렸다.
- “더 빨리 가. 죽고 싶다며?”
- 그가 소리쳤다.
- “시간 끌지 마. 네 탓에 세실리아의 혼례 연회를 놓치고 싶진 않으니까.”
-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 물은 가슴을 덮고 목까지 차올랐다.
- 마침내 머리끝까지 완전히 잠겼다.
- 숨이 막히는 순간, 이상하리만큼 안도감이 밀려왔다.
- ‘드디어 헤라가 내 안에 남긴 고통이 끝나겠구나.’
-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누군가가 나를 거칠게 물 밖으로 끌어냈다.
- 테론은 나를 둑까지 질질 끌어 올리더니 다시 뺨을 후려쳤다.
- “정말로 죽을 생각이었어?!”
-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여전히 분노가 가득했다.
- “칼리스타, 누가 네 마음대로 죽어도 된댔어? 네 목숨은 네 어머니가 주신 거야. 감히 그걸 내던져?”
- 어머니.
- 리산드라를 떠올리자 굳어 있던 마음이 그제야 흔들렸다.
- 세상에서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준 단 한 사람.
- 어머니에게만큼은 상처를 줄 수 없었다.
- 하지만 그렇다고 더 버티며 살아갈 수도 없었다.
- 폐 속까지 들어찬 강물을 기침과 함께 토해 내며 속삭였다.
-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을게. 어머니가 나를 이런 모습으로 보게 하진 않을 거야.”
- 테론은 내가 마침내 죽을 생각을 접었다고 여긴 듯 굳어 있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 하지만 내가 돌아서자, 등 뒤에서 다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반드로스가 다른 여자와 혼인했다고 이렇게 난리를 피우는 거야? 정말로 그를 사랑했다면, 여기서 미친 짓이나 할 게 아니라 그와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축복했어야지.”
- 나는 걸음을 멈췄다.
- 하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
- 테론은 틀렸다.
- 내가 죽고 싶었던 건 반드로스가 다른 여자와 혼인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 나는 한때 테론이든 반드로스든, 내가 진심을 다하고 얼마나 애쓰는지 보여 주면 언젠가는 나를 사랑해 줄 거라고 믿었다.
- 진실한 사랑을 받으면 헤라의 저주에서 벗어나 평범한 사람처럼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 하지만 이제야 알았다.
-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들은 절대 나를 선택하지 않는다.
- 도시로 돌아온 뒤에도 어머니의 방에는 가지 않았다.
- 대신 시장에서 질긴 밧줄 한 가닥을 샀다.
- 그리고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도시 외곽의 올리브 숲으로 향했다.
- 적어도 그곳이라면 내 죽음이 어머니를 놀라게 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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