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쇼윈도 위의 광대들
- 병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 방 안에 있던 모든 눈동자가 나를 향해 꽂혔다. 신다온의 부모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어 나를 에워쌌다.
- “오, 세린아! 정말 고마워요, 정말로!”
- 신다온의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위아래로 붕붕 흔들었다. 어깨에 걸친 신상 명품 백과 손가락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가 형광등 불빛 아래 번쩍였다.
- “걱정 말아요. 우리 다온이만 다 낫고 나면, 원하는 건 뭐든지 챙겨줄 테니까.”
- 옆에서 신다온의 아버지가 거들었다.
- 입으로는 감사를 내뱉고 있었지만, 눈빛은 달랐다. 그들의 눈에 서린 것은 명백한 경멸과 조소.
- 마치 내가 딸을 팔아넘겨 한몫 챙기려는 잡상인이라도 되는 양 취급하고 있었다.
- 강혁은 병상 곁에 서서 이 역겨운 연극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신다온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손을 올린 채, 비련의 여주인공을 구하는‘능력 있는 구원자’ 코스프레에 심취해 있었다.
- 눈앞의 그림이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 “다들 모인 김에 할 말이 있습니다.”
- 그가 신다온의 어깨를 더욱 단단히 감싸 안았다.
- “다온이 회복다 되면 김세린과는 이혼하겠습니다.”
- 그의 시선이 쓰레기를 보듯 내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 “보상금은 없어. 너랑 네 아버지 인생값으로도, 내 돈은 한 푼이 아까워. 아무것도 챙기지 말고, 몸만 꺼져”
- 신다온의 부모가 만족스럽다는 듯 눈빛을 교환했다. 강혁의 품에 기댄 신다온의 눈동자에도 승리감이 번뜩였다.
- 강혁은 아직 만족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 그는 내 얼굴이 고통과 절망으로 무너지는 순간을 기다리며, 비웃듯 말을 이어갔다..
- “아, 그리고 기자들을 좀 불러와.”
- “…….”
- “내일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라이브로 대대적으로 방송할 거야.”
- 그가 광기 어린 눈을 빛냈다.
- “내가 얼마나 넓은 아량으로 전처의 도박꾼 아버지까지 구제했는지, 세상에 널리 알릴 생각이야. 나와 다온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도 증명하고.”
-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 뻔뻔한 자기애가.
- 내 아버지의 ‘시신’을 밟고, 내 아들의 ‘심장’을 뜯어내어 본인의 사랑 놀음에 쓰겠다는 선언.
- 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또 얼마나 역설적인 코미디인가.
- 나는 그들의 추악한 민낯을 보면서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그저 고요하게, 물음 하나를 던졌을 뿐이다.
- “강혁.”
- “…….”
- “정말, 일을 이렇게 크게 벌일 생각이야? 감당할 수 있겠어?”
- 강혁은 내 질문을 패배자가 내지르는 마지막 몸부림쯤으로 여겼다.
- 겁에 질려, 조용히 덮어 달라며 매달리는 줄로만 아는 눈치였다.
- 그가 더욱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 “당연하지!”
- 그가 비릿하게 웃었다.
-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알게 될 거야. 누가 내 옆에 어울리는 여자인지. 그리고 김세린 너가 얼마나 비참하고 실패한 인생인지 말이야.”
- 수술 당일. 동이 트기도 전이었다.
- 병원 입구는 이미 인산인해였다.
- 강혁이 돈으로 긁어모은 기자들이, 정작 환자 보호자보다 더 많아 보일 지경이었다.
- 팡, 팡, 팡!
- 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 세례.
- 강혁이 벤틀리에서 내렸다.
- 최고급 맞춤 정장에, 머리에는 포마드까지 말끔히 올린 모습이었다.
- 그의 연기는 언제나 완벽했다.
- 세상의 모든 고뇌를 짊어진 듯, 지쳐 있으면서도 결연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다.
- 그리고—
- 이미 준비해 둔 ‘연설’이 시작됐다.
- “바쁘신 와중에도 찾아주신 기자님 여러분, 감사합니다.”
-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엄숙하게 굳힌 표정.
- “오늘, 이 자리에 선 제 심정은 참으로 복잡합니다.”
- 그는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바라보다가,
- 인파 저편에 서 있는 나를 힐끗 흘겨봤다.
- “한 남자로서… 씻을 수 없는 배신을 당했습니다.”
- 의도적으로 끊어낸 숨,
- 뜸을 들이는 연출까지 완벽했다.
- “하지만 저는 책임을 선택했습니다.”
- 그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 “제 가정을 파탄 낸 사람, 장인어른은 지금 생사의 갈림길에 서 계십니다.
- 그리고…”
-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 “제 진정한 사랑, 다온이는 역시 심장 부전으로 위독한 상태입니다.”
- 강혁은 비통한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 카메라가 가장 좋아할 표정이었다.
- “운명은 잔인하지만, 동시에 기회를 주더군요. 장인어른과 다온이 매칭 되었습니다.”
- 강혁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얼굴에는 성스러운 성직자 같은 아우라가 피어올랐다.
- “개인의 원한은 뒤로하고, 한 생명을 살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자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제 선택이 이 차가운 세상에 작은 온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완벽한 쇼였다.
- 실시간 라이브 방송 채팅창은 폭발적인 반응으로 도배되고 있었다.
- [갓강혁... 인성 미쳤다 진짜]
- [이게 찐사랑이지. 남자가 보살이네]
- [와, 저걸 살려주네? 나 같으면 도박꾼 장인어른 거들떠도 안 봄 ㅋㅋ]
- [전처는 아직도 저기 있냐? 양심 있으면 혀 깨물고 죽어야지.]
- 화면을 가득 채우는 저주와 찬양.
- 강혁은 순식간에 시대의 로맨티시스트이자 성인군자로 등극했고, 나와 내 아버지는 만인의 지탄을 받는 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 드르륵, 드르륵.
- 그때, 바퀴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신다온이 등장했다. 간호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수술실로 향하는 그녀는 마치 대관식에 오르는 공주님 같았다.
- 이동 침대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찰나.
- 군중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 틈을 타, 신다온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 창백한 얼굴에 피어오르는 붉은 미소. 그녀가 소리 없이 입을 벙긋거렸다.
- ‘고마워. 네 아들 심장, 잘 쓸게, 김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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