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4화

  • 나는 카트를 밀어 화장로 쪽으로 간다. 복도는 길고 형광등은 반쯤 나가서 깜빡였다.
  • 카트 바퀴가 바닥 타일을 긁으며 끽끽댄다. 누군가 신음하는 소리 같다.
  • 머릿속에서 두 목소리가 싸웠다.
  • 하나는 말한다.
  • “태워. 돈만 들어오면 딸 항암치료비 되는 거잖아.”
  • “넌 이 죽은 사람 모르잖아. 너랑 아무 상관도 없어.”
  • 다른 하나가 맞받는다.
  • “한 번 태워버리면 끝이야. 되돌릴 수 없어. 민준하 손에 네 약점이 들어가고 널 협박하는 그놈도 네 약점을 쥐게 될거야. 평생 휘둘릴 거다.”
  • 나는 화장로 앞에서 멈췄다. 그속은 텅 비어 있었다. 괴물 입이 쩍 벌어진 것 같았다.
  • 시신을 카트에서 들어 올려 화장로 앞 투입 슬라이드로 옮겼다.
  • 시신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눈은 반쯤 떠 있었다. 잿빛 각막에 화장로 안 어둑한 붉은 빛이 비쳤다.
  • 손을 뻗어 점화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 그 표정이 보였다. 죽은 자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 웃는 듯했다.
  • 근육 경련 같은 일그러짐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의도가 있는 웃음이었다.
  • 동시에 그의 눈이 천천히 커지더니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 눈엔 두려움도, 고통도 없었다.
  • 오직 하나...
  • ‘널 기다렸어’라는 확신만 있었다.
  • 내 손가락은 점화 버튼 위에서 멈췄다. 도저히 누를 수 없었다.
  • “한 실장님. 왜 그러세요?”
  •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깜짝 놀라 펄쩍 뛰려 했다.
  • 당직 화장로 조작원 박의하였다. 스무 살 갓 넘은 애였다. 온 지 반 년도 안 됐고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오늘은 원래 쉬는 날인데 웬일인지 이미 와 있었다.
  • “아니야. 괜찮아.”
  • 나는 몸을 돌려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 “이건 민 소장이 특별히 지시한 일이야. 너는 돌아가. 나 혼자 할게.”
  • 박의하는 여기서 가지 않았다. 투입 슬라이드 위 시신을 힐끗 보더니 눈을 번쩍 뜨고 말했다.
  • “그 사람이에요?”
  • 그 말에 미간이 딱 좁혀졌다. 치밀어 오르는 긴장을 눌러 담으며 나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