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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 다락방은 숨이 막힐 듯 비좁고 눅눅했다. 천장에 난 손바닥만 한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줄기만이 이곳이 지상임을 겨우 알리고 있었다. 사방에는 먼지 쌓인 잡동사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 이게 내 친부모라는 작자들이 십수 년 만에 돌아온 친딸에게 내어준 ‘방’의 실체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에겐 구본혁 회장님이 있었고, 그분이 나를 이 진흙탕에서 반드시 끄집어낼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구 회장님이 보낸 메시지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 [구 회장: 서윤아, 아직 집엔 안 들어온 거니? 혹시 거기서 또 서운한 대접이라도 받은 게냐?]
  • “조금요.” 나는 짧게 답장을 보냈다. 바로 다음 메시지가 도착했다.
  • [구 회장: 그자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주고 싶니?]
  • 창밖으로 외롭게 떠 있는 달을 응시하며, 나는 단호하게 두 글자를 눌러 응답했다.
  • “원해요.”
  • 답장을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층이 발칵 뒤집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리나의 날카로운 비명과 한진태 회장의 불호령, 그리고 엄마 한수진 씨의 경악 섞인 목소리가 뒤엉켜 다락방 문틈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 “아빠! 엄마! 내 광고 계약이 전부 취소됐대! 브랜드 측에서 내 이미지가 나쁘다면서, 말도 안 되는 위약금을 청구하겠다는데 어떡해!”
  • “여보, 큰일 났어! 우리 한강 그룹 주가가 하한가로 치닫고 있다고! 파트너사들이 줄줄이 전화를 걸어서 투자를 철회하겠다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 절망적인 소음 속에서 한수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구진혁 씨를 향했다.
  • “구진혁 씨! 진혁 씨가 방법 좀 찾아봐요! 어서 구본혁 회장님께 전화드려서 손 좀 써달라고 하란 말이에요!”
  • “제발 좀 귀찮게 굴지 마세요! 우리 아버지는 지금…… 내 전화는 아예 받지도 않으신다고요!”
  • 나는 차가운 다락방 문에 몸을 기댄 채, 그들의 파멸 소나타를 조용히 감상했다. 화려한 몰락의 막이 아래층에서 막 올랐고, 그 잔인한 대본을 쥔 연출가는 바로 나였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다락방 문이 거친 발길질에 비명 지르듯 열렸다. 눈이 벌겋게 충혈된 한진태 회장이 성난 황소처럼 들이닥치더니, 다짜고짜 내 옷깃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 “너지! 이서윤, 네년이 꾸민 짓이지!”
  • 그가 잡아끄는 힘에 몸이 비틀거렸지만, 나는 오히려 차갑게 식은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한 회장님.”
  • “이게 끝까지 시치미를 떼!”
  • 그는 이성을 잃은 듯 손을 번쩍 들어 내 뺨을 내리치려 했다. 그 서슬 퍼런 폭력이 내 얼굴에 닿기 직전, 낮고 묵직한 음성이 문가에서 얼음처럼 울려 퍼졌다.
  • “한 회장님, 이제 막 찾은 친딸에게 손찌검이라니.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성진 그룹과의 관계가 아주 볼만해지겠군요?”
  • 한진태 회장의 동작이 공중에 박힌 듯 뚝 멈췄다. 그가 떨리는 고개를 돌려 문가에 선 남자를 확인했다.
  • 성진 그룹의 구본혁 회장. 구진혁 씨의 아버지이자, 이 바닥의 생태계를 지배하는 진짜 포식자였다. 그는 몸에 딱 맞는 검은 수트를 입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공간 전체를 압도했다. 그 뒤로는 무장한 듯한 경호원들과 서류 가방을 든 엘리트 부하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 한 회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내 옷깃을 쥐고 있던 손에서도 스르르 힘이 빠져나갔다.
  • “구…… 구 회장님? 여긴 어찌…….”
  • 구 회장님은 그를 벌레 보듯 무시한 채 곧장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의 눈빛엔 노골적인 걱정과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그는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자신의 수트 재킷을 벗어 내 초라한 어깨 위에 덮어주었다.
  • “가자, 서윤아. 너를 기다리는 진짜 집으로 데려다주마.”
  •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곁에 섰다. 한 회장의 곁을 지나칠 때, 그는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거실에 있던 한수진 씨와 강리나 역시 구 회장님의 등장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강리나가 악을 쓰며 달려들려 했지만, 사색이 된 구진혁 씨가 그녀의 팔을 낚아채 저지했다.
  • 구진혁 씨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 “아, 아버지…… 저…….”
  • 구 회장님은 아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뒤에 선 비서에게 나직하게 명령했다.
  • “언론사에 공식 발표해. 성진 그룹과 한강 그룹의 혼약은 이 시간부로 전면 무효다.”
  • “또한, 한 회장. 네 무능함이 우리 그룹에 끼친 손실에 대해서는 법무팀을 통해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다. 파산 준비나 하고 있지.”
  • 그 선전포고를 끝으로, 구 회장님은 내 어깨를 단단히 감싸 안으며 경악에 빠진 그 집구석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 전용 롤스로이스의 뒷좌석에 깊숙이 몸을 묻자 그제야 팽팽했던 긴장이 풀렸다. 구 회장님이 따뜻한 물이 담긴 컵을 내밀었다.
  • “많이 놀랐느냐?”
  • 나는 고개를 저으며 창밖으로 빠르게 멀어지는 한씨 가문의 저택을 응시했다.
  • “아니요. 그저 우스워서요.”
  • 가짜 딸 강리나에게 눈이 멀어 제 살을 깎아 먹은 그들의 말로가 너무나 명확해 보였으니까. 이제는 그들이 뿌린 대로 거둘 시간이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세워두었니?” 그가 물었다.
  •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깊고 형형한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 “제 것을 전부 되찾아올 거예요. 한강 그룹의 모든 것은 원래부터 내 것이었으니까요.”
  • 구 회장님이 만족스러운 듯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마치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 “좋다. 네가 원하는 대로, 이 구본혁이 끝까지 보좌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