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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은 여사친의 전용 해독제

내 남편은 여사친의 전용 해독제

adore

Last update: 1970-01-01

제1화

  • 남편과 관계를 가지려던 찰나, 그의 등 뒤에 가득한 손톱자국이 내 시야에 박혔다.
  •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흉터를 만지며 무심하게 뱉었다. “지수가 약을 먹었대서. 해독하는 거 도와준 것뿐이야.”
  • “걔는 내 부랄친구잖아. 한 이불 덮고 자란 사이나 마찬가진데, 이게 뭐 대수라고.”
  • “걱정 마, 여보. 난 그냥 걔를 살리려고 했던 것뿐이니까. 우리 사이엔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 나는 믿기지 않는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결혼한 지 2년. 그는 나랑 가장 친밀한 행위조차 키스에서 멈췄다. 자신에게 심각한 심리적 장애가 있다며, 나를 '플라토닉한 부부'로 살게 했던 남자다.
  • 그런 남자가 지금 자기 여사친의 ‘정욕’을 해독해주고 왔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 “여보, 다시 해볼까? 당신을 위해서라면 나도 이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아.”
  • 결연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난 그럴 능력 없어. 그냥 네 여사친 불러서 치료해달라고 하지 그래?”
  • “강이린, 너 지금 말이 좀 심하다? 지수랑은 아무 사이 아니라니까! 난 그냥 사람 목숨을 구한 거야!”
  • “이 밤중에 갑자기 왜 미친 척이야?”
  • 한유준은 벗다 만 바지를 급하게 챙겨 입으며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
  • 방금 전까지 나를 위해 장애를 극복하겠다던 남자는, 이제 책장을 넘기는 속도보다 빠르게 바지를 올리고 있었다. 내 앞에서 이토록 공들여 연기를 하는 이유. 결국 지수와 저지른 추잡한 짓을 정당화하려는 것뿐이겠지.
  •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 말이 틀려? 심리적 장애가 있다는 사람이 남의 해독은 참 잘도 해줬네. 너 진짜 대단하다.”
  • 유준이 짜증 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속이 좁아? 지수는 해독 안 했으면 죽었을지도 몰라. 너 의사라며. 사람 살리는 게 우선이라는 기본 상식도 없어?”
  • 사람을 살려? 그의 말에 구역질 나는 기억들이 떠올랐다.
  • 한지수는 그들 무리의 유일한 홍일점이었다. 그녀는 자극적인 모험을 즐겼다.
  • 나와 유준의 결혼식 날, 한지수는 도로에서 폭주를 뛰었다. 우리 반지를 교환하려던 순간, 그녀의 전화 한 통에 유준과 친구들은 결혼식장을 박차고 나갔다. 결국 나 혼자 그 넓은 식장에 비참하게 남겨졌었다.
  • 정작 그녀는 가벼운 찰과상뿐이었다.
  • 나중에 한지수는 세상에서 가장 무고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미안해요, 이린 언니. 전 그때 정말 제가 죽는 줄 알았거든요. 마지막으로 애들 얼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일부러 결혼식 망치려던 건 아니었어요.정말 미안해요...”
  • 교태 섞인 그 말투가 구역질 났지만, 유준 때문에 억지로 참아야 했다. 내가 기분 나쁜 기색을 비쳐봤자, 유준은 언제나 한지수를 감쌀 핑계를 찾아냈으니까.
  • 나의 자존감은 유준의 지독한 편애 속에서 수없이 깎여 나갔다. 가슴 한구석이 다시 저릿해졌다. 심리적 장애가 오직 아내인 나에게만 해당된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 내가 침묵하자, 유준은 그제야 내 기분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 그는 내 머리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 “여보, 화내지 마. 의사도 내 병은 천천히 치료해야 된댔잖아. 우리한테 시간을 좀 더 주면 안 될까?”
  • 방금 전의 그 차가운 남자와는 딴판이었다. 나는 그를 밀쳐내며 덤덤하게 말했다.
  •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이혼하자. 그 시간 아껴서 지수 옆에나 있어 줘. 걔가 네 병은 잘 고쳐주는 것 같으니까.”
  • “강이린! 지금 무슨 심술이야?” “내가 그냥 사람 구한 거라고 말했잖아!”
  • 반박할 틈도 없이 침대 옆 협탁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번호를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은 그녀뿐이니까.
  • 유준은 마치 본능처럼 휴대폰을 낚아챘다. 단 1초라도 늦을까 봐.
  • “유준아, 나 너무 힘들어… 나 좀 살려줘……”
  •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비웃음이 나왔다. 유준의 표정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그의 얼굴엔 걱정과 애틋함이 가득 차 넘치고 있을 것이다.
  •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어 안달이 났겠지.
  • 나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 “유준아… 나 정말 죽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