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느긋했다. 위에서 깔보듯 거만했다.
- 난 고개를 들고 기름때로 얼룩진 유리를 통해 한호철의 잘난 미소를 봤다.
- 몸에 딱 맞는 하얀 턱시도를 입고, 왕자라도 된 듯 새초롬하게 서 있었다.
- 근데 날 보는 눈빛은 하수구 쥐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 한호철이 창문을 살짝 밀어 틈을 만들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 "정보아, 꼴 좋네."
- "앞홀에서 나랑 지은 축하 파티 하는 소리 들었지, 혹시 질투 나서 미치려나?"
- 어디서 온 자신감인지.
- 나는 차갑게 그를 노려봤다.
- "여기까지 와서, 네가 주워온 쓰레기 자랑하려고?"
- 한호철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었다.
- "입은 여전히 독해."
- "그래도 오늘 마지막 기회를 주려고."
- 그가 주머니에서 카드키를 꺼내 창틈으로 휙 던졌다.
- 카드키가 기름 범벅인 바닥에 턱 떨어졌다.
- "이 카드 들고, 꼭대기층 스위트에서 얌전히 날 기다려."
- "그럼 내가 정 아저씨한테 사정해서, 정 씨 집안의 가정부로라도 계속 있게 해줄게."
- "적어도, 굶어 죽진 않겠지."
- 나는 그 카드키를 보며 속이 확 뒤집혔다.
- "한호철, 너 진짜 역겨워."
- "정지은이랑 약혼해 놓고, 나더러 너의 숨겨둔 여자가 되란 말이야?"
- "정지은이 알게 되는 건 안 무서워?"
- 한호철이 코웃음을 쳤다.
- "지은이는 알아. 남자가 바깥에서 가볍게 노는 거, 걔는 다 이해하거든."
- "게다가 너 같이 천박한 애가 침대에서라도 날 모실 수 있다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
- 그때였다.
- "호철 오빠, 누구랑 얘기해?"
- 애교 섞인 목소리가 창밖에서 불쑥 들렸다.
- 정지은이 반짝이는 다이아가 박힌 맞춤 드레스를 입고, 진짜 공주처럼 서 있었다.
- 그녀는 자연스럽게 한호철의 팔을 끼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 "어, 언니가 왜 뒷주방에 있어?"
- "바닥 이렇게 더러운데. 언니, 얼른 일어나!"
- 정지은은 입을 가리고 일부러 놀란 척 나를 봤다.
- 한호철은 금세 다정한 표정을 지으며 정지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신경 쓰지 마. 지가 굳이 뒷주방 와서 설거지한대."
- "가자. 연회 곧 하이라이트야."
- 하지만 정지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 그녀가 손목에서 초록빛 옥팔찌를 하나 뺐다.
- "언니, 이 옥팔찌 언니가 정가에 금방 돌아왔을 때 기어코 나 주겠다고 했던 거 기억나?"
- "시골에서 키워 준 할머니 유품이라면서 말이야."
- "근데 이 색이 너무 탁해서, 내가 차면 급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
- "게다가 오빠가 방금 수억이 되는 다이아 목걸이 선물했지 뭐야. 그러니 이 싸구려는 다시 돌려줄게."
- 내 눈이 번쩍였다.
- 할머니가 내게 남긴 유일한 유품이었다.
- "그거 당장 돌려줘!"
- 나는 창문 쪽으로 확 달려들어 손을 뻗었다.
- 하지만 정지은은 일부러 손목을 탁 틀었다.
- "어머, 손이 미끄러졌네."
- 쨍!
- 초록빛 옥팔찌가 단단한 창틀에 부딪히며 순식간에 몇 토막으로 박살났다.
- 맑고 날카로운 파열음이 심장에 비수처럼 꽂혔다.
- "안 돼!"
- 나는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창밖으로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그 조각들을 주웠다.
- 유리 조각이 내 팔을 그어 피가 줄줄 흘렀다.
- 정지은은 위에서 내려다보며 눈에 독기와 통쾌함을 가득 담았다.
- "어머, 언니, 진짜 미안."
- "고작 팔찌 하나잖아. 꼭 개처럼 바닥에 엎드려 주워야 해?"
- 한호철은 정지은의 허리를 끌어안고 얼굴 가득 역겨움을 드러냈다.
- "지은아, 가자. 궁상맞은 냄새 옮겠다."
- 둘은 서로 팔을 두른 채 떠났다.
-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옥 조각들을 손에 꽉 쥐었다.
- 날카로운 파편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 핏방울이 손가락 사이로 뚝뚝 바닥에 떨어졌다.
- 어두운 뒷주방에, 창밖에서 차 헤드라이트가 번쩍 스치며 안을 훑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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