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가족 따위 제가 버리겠습니다
amber LI
Last update: 1970-01-01
제1화
- 정씨 집안에 다시 받아들여진 그날,
- 가짜 여동생은 내 약혼자랑 침대 위에서 아주 뜨겁게 뒤엉켜 있었다.
- 그런데 피를 나눈 친가족들이란 사람들이 오히려 나를 몰아붙이네?
- “지은이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래. 좀 봐줘. 어차피 약혼은 그대로잖아?”
- 어디에서 개가 짖나...
- 나는 이 기묘한 식구들을 한 번 쭉 훑으며 시린 웃음을 터뜨렸다.
-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 곧 신호음이 끊기고,
- “여보세요?”
- 건너편에서 나른한 남자 목소리가 울렸다.
- “작은 아버님, 결혼하게 될 조카가 지금 딴 여자랑 놀아나는 중인데. 혹시 라이브로 틀어드릴까요?”
- 갑자기 핏줄이 불끈 선 커다란 손이 내 폰을 번개처럼 낚아챘다.
- 그가 폰을 대리석 바닥에 있는 힘껏 내던졌다.
- 화면이 순식간에 쩍쩍 갈라지며 통화가 뚝 끊겼다.
- 나의 친오빠 정지훈은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미친 짐승처럼 나한테 돌진했다.
- 그는 내 옷깃을 거칠게 움켜쥐고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 “정보아! 지금 뭐 하는 짓이야!”
- “지은이 심각한 우울증 있는 거 알지? 끝까지 몰아붙여서 죽게 해야 속이 시원하겠어!”
- 뜨거운 침이 내 얼굴에 튀었다.
- 나는 그 일그러진 얼굴을 싸늘히 노려봤다.
- “우울증 치료를 굳이 내 약혼자랑 침대에서 해야 돼?”
- 그 순간, 정지훈은 망설임 하나 없이 내 뺨을 후려쳤다.
- 짝!
- 얼굴 반쪽이 얼얼하게 마비됐고, 입가에서 피비린내가 스며올랐다.
- “입 함부로 놀리지 마!”
- “지은이가 불안할 때 호철이 형이 좀 달래준 게 뭐 어때서?”
- “시골에서 컸다면서 생각이 왜 이렇게 더러워?”
- 큰 침대 위에서 한호철이 셔츠 마지막 단추를 느긋하게 채웠다.
- 그는 나를 내려다보며 노골적으로 짜증 섞인 눈길을 보냈다.
- “정보아, 넌 나를 정말 실망시키는구나.”
- “정가로 돌아왔으면 최소한 예의는 배울 줄 알았거든.”
- “근데 여전하네. 거칠고, 소리부터 지르는게.”
- “난 지은이를 그냥 친한 여사친으로 생각해.”
- “친구끼리 껴안고, 같은 침대에서 잠깐 잘 수도 있지. 그게 뭐 대순가?”
- 나는 어이없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 “하, 친구?”
- “요즘은 친구들끼리 옷 다 벗고 이불 속에서 우정을 다지나봐?”
- 정지은은 실크 이불을 몸에 둘둘 말고 침대 구석에 웅크렸다.
- 눈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눈물은 끊어진 구슬처럼 줄줄 떨어졌다.
- “언니, 미안해… 다 내 탓이야.”
- “어제 공포영화를 봤더니 너무 무서워서 잠이 안 왔어.”
- “호철 오빠가 나 불쌍하다고 잠깐 와서 같이 있어 준 것뿐이야.”
- “우리 진짜 아무것도 안 했어. 제발 호철 오빠 오해하지 마.”
- “언니가 정말 날 못 받아들이겠다면, 내일 당장 여기에서 나갈게.”
- “정가 큰딸 자리도, 호철 오빠도 다 언니한테 돌려줄거야!”
- 말을 끝내자마자, 그녀가 이불을 홱 젖히더니 벽 쪽으로 머리를 들이받을 기세였다.
- “아니면 내 목숨으로라도 언니한테 갚아...!”
- 그때, 박순영은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 정지은을 꽉 껴안았다.
- “그러지마, 지은아! 우리 딸, 엄마가 넌 절대 못 보내!”
- 도대체 누가 친딸인지.
- 정 회장은 고개를 돌려 서늘한 눈빛을 나에게 꽂았다.
- “정보아, 네가 이 집에 돌아오더니 정말 난장판을 만드는구나!”
- “지은이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자극을 못 받아.”
-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
- 나는 입가의 피를 훔치고 곧게 섰다.
- “내연녀한테 내가 무릎을 꿇으라고?”
- “꿈 깨시지.”
- 정지훈이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며 내 무릎 뒤를 걷어찼다.
- 다리가 탁 풀리면서 바닥에 쿵 하고 부딪혔다.
- 뼈가 쨍 하는 소리를 냈다.
- 정지훈은 내 뒤목을 거칠게 눌러 머리를 바닥으로 찍어 누르며 윽박질렀다.
- “그냥 사과하라니까! 그러게 사람 말을 왜 못 알아들어!”
- “네 몸에 정가 피 흐른다고 여기서 휘두를 수 있는 줄 알아?”
- “똑똑히 들어. 내 여동생은 딱 하나, 지은이뿐이야!”
- “넌 그냥 아무도 원치 않는 쓰레기라고!”
- 한호철이 다가와 구두 끝으로 내 턱을 치켜올렸다.
- “정보아, 네가 얌전히 잘못만 인정하면 우리 약혼은 그대로 갈 수 있어.”
- “내가 너랑 결혼해 줄게. 정가 큰딸로서의 체면도 세워 주고.”
- “하지만 전제는, 네가 지은이를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야.”
- 나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어 한호철의 눈을 똑바로 노려봤다.
- “꺼져.”
- 한호철의 얼굴이 싸늘해지더니 발을 홱 거둬들였다.
- “분수도 모르네.”
- 정지은은 엄마 품에 기대면서도 입끝을 아주 미세하게 올렸다.
- “호철 오빠, 너무 언니 탓하지 마. 언니는 시골에서 자랐다보니... 그래서 날 질투하는 것도 난 다 이해해.”
- “내 용돈 절반을 언니한테 줄게. 대신 더 안 싸우면 안 돼?”
- 박순영은 감동했다는 듯 눈물을 훔쳤다.
- “보아야, 지은이가 얼마나 네 생각을 하는지 좀 봐!”
- “그리고 네 꼴도 좀 보고, 길바닥에서 싸우는 계집애 같아서야 어디 한가네 큰아들 며느리감이 되겠니!”
- 정 회장은 짜증스럽게 손을 내저었다.
- “저년은 그냥 지하실에 가둬. 내가 허락하기 전엔 밥 한 톨도 주지 말고!”
- “언제 제대로 잘못을 인정하는지 보자. 그때 꺼내.”
- 정지훈은 죽은 개 끌 듯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질질 끌고 나갔다.
- 두피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번졌다.
- 나는 발버둥치지 않았다. 그저 방 안의 한 사람, 한 사람을 똑똑히 눈에 새겼다.
- 지하실 철문이 묵직하게 쾅 울리며 닫혔다.
- 사방이 순식간에 죽은 듯한 어둠으로 가라앉았다.
- 나는 축축하고 차가운 벽에 기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 문 밖에서 아주 미세한 발소리가 스치듯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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