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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그림자

서로의 그림자

Gotham

Last update: 1970-01-01

제1화

  • 강후진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그날, 그의 첫사랑 유가연이 떠났다.
  • 나는 버티며 3년 동안 간병했다. 강후진이 깨어났고 그의 부모가 나와 결혼하라고 밀어붙였다.
  • 그런데 우리가 반지를 주고받으려는 순간에 유가연이 결혼식에 뛰어들어왔다.
  • “난 동의 못 해! 후진아, 결혼하지 마!”
  • 강후진은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날 버려 유가연과 함께 결혼식장을 떠났다.
  • 나는 표정 없이 베일을 벗고 웨딩 사진 속 얼굴을 손끝으로 쓸어내렸다.
  • “가짜는 가짜지. 후성이라면 나한테 이러지 않았을 거야.”
  • 나중에 들은 얘기다.
  • 강후진은 유가연의 생일 파티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 비행기표를 사서 날 찾으려고 외국에서 석 달을 헤맸다. 오직 나한테 한마디 물으려고 했다.
  • ……결혼식 당일
  • 나는 미리 리허설한 대로 설렘을 꾹 누르고 문에서부터 한 걸음 한 걸음씩 오래 기다린 신랑에게 걸어갔다.
  • 강후진과 서로 손을 잡고 반지를 끼우려 했다.
  • 무대 아래 강후진의 어머니, 최은실이 계셨다.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우리에게 축복을 보내고 있었다.
  • 그런데 갑자기 결혼식장 문이 벌컥 열렸다.
  • “난 동의 못 해!”유가연의 목소리였다.
  • “후진아! 나 후회했어! 결혼하지 마!” 우리 앞으로 달려와서 말했다.
  • 은실 이모는 강후진 앞으로 나서서 크게 쏘아붙였다.“나가려고? 나가면 다시는 강씨 가운으로 들어오지 마.”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후진은 갔다. 나를 버리고 온 가족을 버렸다.
  • 나는 반지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양손 약지에 하나씩 끼웠다.
  • “가짜야. 다 가짜야. 후성이 나한테 이렇게 안 할 거야.”
  • 후성은 강후진의 형이자 나의 평생 사랑이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 나는 마지막까지 후성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 그 무렵 강후진이 한국에 돌아왔다. 후성이랑 너무 닮아서 난 모든 걸 내던지고 강후진 곁을 지켰다. 그를 보고 있으면 마치 후성이 떠나지 않은 것 같았다.
  • 주변의 수군거림이 귓가에 박혔다.
  • “한소원 진짜 불쌍하다. 강후진 그냥 가버렸잖아.”
  • “근데 나 듣기로는 애초에 걔가 끼어들었다며? 이제 원래 여자친구가 돌아왔으니 당연히 물러나야지.”
  • “너희가 뭔데 소원을 입에 올려?”은실 이모는 강후진을 막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날 함부로 깎아내리게 두진 않았다.
  • 그 사람들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 “사모님,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 “그럼 무슨 뜻인데? 우리 소원이 만만하게 봤어?”
  • 은실 이모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눌러오는 압박이 장난 아니었다.
  • 결국 사람들이 건성으로 몇 마디 위로만 하고는 머쓱하게 흩어졌다.
  • 나는 조용히 은실 이모의 팔을 끼었다. “이모, 전 괜찮아요.”
  • 이 세상에 후성 말고 내가 더 매달릴 건 이제 없다.
  • 며칠 뒤, 결혼식장에서 사라졌던 강후진이 돌아왔다. 유가연과 함께.
  • 둘이 손을 잡고 나와 은실 이모 앞에 무릎을 꿇었다.
  • “엄마, 난 소원이랑 결혼 못 해. 내 사랑은 오직 가연일 뿐이야!”
  •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가연이가 계속 날 돌봤어. 내가 어떻게 걔를 버리겠어? 난 가연과 결혼할 거야. 평생 사랑할 거야!” 강후진이 계속 말했다.
  • 은실 이모가 뭔가 설명하려 했지만 내가 막았다.
  • 나는 3년동안 간병한 이 남자를 담담히 바라보며 말했다.
  • “강후진, 네 뜻대로는 절대 안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