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 다음 날 아침.
- 아직 정신도 채 들기 전, 침실 문이 거칠게 벌컥 열렸다.
- 김정숙이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기세등등하게 들어왔다.
- “한지수, 네가 감히 문을 잠가?”
- 그녀는 다짜고짜 이불을 홱 들춰냈다. 눈빛은 싸늘했고, 표정엔 노골적인 불쾌감이 어려 있었다.
- “방에 처박혀 있으면 병원 안 가도 될 줄 알았니?”
- 나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반사적으로 배를 감싸 쥐었다. 아직도 안쪽이 은근히 쑤셨다.
- “어머님, 여긴 제 방이에요.”
- 잠이 덜 깬 탓인지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 “네 방?”
- 김정숙이 코웃음을 쳤다. 얼굴엔 멸시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 “한지수, 착각하지 마.”
- “이 집도, 여기 있는 것 전부 다 우리 거야.”
- 그녀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비웃었다.
- “네가 먹는 거, 입는 거, 쓰는 거 중에 우리 집 돈 안 들어간 게 하나라도 있어?”
- “이제 와서 집안 위해 좀 보태라니까 버티는 거야?”
- 그 말투가 어젯밤 김도진이 내게 하던 말과 똑같았다.
- 정말이지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 마치 내가 그 집에서 키우는 개라도 되는 것처럼.
- 필요할 때면 군말 없이 뭐든 내놔야 하는 존재인 것처럼.
- “유리는 도진이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고생했어.”
- 김정숙은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 “이제 몸까지 아픈데, 네가 도진이 아내라면 당연히 살려야지.”
- “신장 하나 내놓는다고 죽기라도 하니?”
- 너무도 뻔뻔한 얼굴이었다.
- 나는 그런 그녀를 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 “그래도 아들 아내는 저예요.”
- “지금 그 집 며느리도 저고요.”
- 나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 그녀를 마주봤다.
- “어머님 눈엔 제가 대체 뭐로 보여요?”
- “너?”
- 김정숙은 내 말을 들은 순간 더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 “애도 못 낳는 주제에 네가 유리랑 뭘 비교해?”
- “네가 그 자리만 안 차지하고 있었어도 유리는 진작 들어왔어.”
- “이런 수모를 겪을 일도 없었고.”
- 애도 못 낳는 주제.
- 그 한마디가 뜨겁게 달군 쇠꼬챙이처럼 가슴을 꿰뚫었다.
- 결혼 3년 내내, 나는 한 번도 임신하지 못했다.
- 병원에선 이미 말했다.
- 중증 우울증으로 한 차례 크게 무너졌던 몸이라, 지금은 아이를 버텨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 그래서 나는 그동안 몸을 회복시키는 약을 꾸준히 먹어 왔다.
- 2년이 넘어서야 겨우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 김도진도 알고 있었다.
- 김정숙도 알고 있었다.
- 그런데도 두 사람은 언제나 모든 책임을 내 탓으로 돌렸다.
- 나는 손을 꽉 말아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깊게 파고들었다.
- “전 병원 안 가요.”
-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내뱉었다.
- “제 신장, 누구한테도 안 줘요.”
- 김정숙의 얼굴이 순식간에 홱 일그러졌다.
- “어디서 대들어?”
- 그녀는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뒤에 서 있던 경호원들에게 턱짓했다.
- “오늘은 묶어서라도 데려가.”
- “병원에 끌고 가!”
- 경호원 둘이 곧장 내게 달려들었다. 양쪽에서 팔을 붙잡는 손이 너무 거칠고 셌다. 나는 단숨에 침대 밖으로 끌려 나왔다.
- “놔요!”
- 죽어라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다.
- 김정숙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녀는 가방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더니 탁, 내 얼굴에 내던졌다.
- “오십억.”
- “신장만 내놓으면 이 돈은 네 거야.”
- 그녀는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와 차갑게 쏘아붙였다.
- “그리고 돈 챙겨서 그 집에서 나가.”
- “다신 도진이 곁에 얼씬도 하지 말고.”
- 바닥에 떨어진 수표가 가볍게 미끄러졌다.
- 그 모습이 꼭 지난 3년의 내 결혼을 비웃는 것 같았다.
- 내가 붙잡고 있던 시간과 마음이 얼마나 값싼 취급을 받았는지, 그 종이 한 장이 다 말해 주는 것 같았다.
- 결국 이 집은 이미 다 정해 놓고 있었다.
- 내가 신장만 내놓으면 바로 버릴 생각이었다.
- 그리고 그 자리에 최유리를 들일 생각이었고.
- 정말 완벽한 계산이었다.
- 나는 바닥에 떨어진 수표를 내려다보다가 문득 웃음이 났다.
- 웃다 보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 나는 간신히 경호원의 손을 뿌리치고 몸을 숙여 수표를 집어 들었다.
- 그리고 김정숙이 보는 앞에서 그걸 천천히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 “최유리를 살리라고요?”
- 나는 고개를 들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 “꿈도 꾸지 마세요.”
- 김정숙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 “너… 너 같은 게 감히—”
- 그녀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대로 내 뺨을 후려치려는 순간이었다.
- “그만.”
- 문가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김도진이었다.
- 언제 왔는지 그는 벌써 문 앞에 서 있었다.
- 말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 김정숙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 “도진아, 얘 좀 봐.”
- “지금 완전 제정신이 아니잖아.”
- 하지만 김도진은 어머니를 보지 않았다.
- 그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게만 향해 있었다.
- 마치 감정 없는 물건이라도 보는 것처럼.
- “데려가.”
-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 나를 향한 마지막 인내심마저 떨어져 나간 사람처럼.
- 나는 그를 바라봤다.
- 혹시라도.
- 정말 아주 조금이라도.
- 망설임 같은 게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 하지만 없었다.
- 끝도 없는 냉기뿐이었다.
- 경호원들이 다시 내 팔을 붙잡고 방 밖으로 끌어냈다. 김도진 옆을 스쳐 지나가던 순간, 나는 가까스로 걸음을 멈췄다.
- “김도진.”
- 작은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 “내가 죽으면… 슬프긴 할까?”
- 그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 나를 한 번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 대신 주머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내 앞에 내밀었다.
- 장기 기증 동의서였다.
- 나는 마지막 칸을 똑똑히 봤다.
- 보호자 서명.
- 관계: 배우자.
- 서명자: 김도진.
- 그 순간, 가슴 어딘가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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