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속의 이별
puff
Last update: 1970-01-01
제1화
- 나는 해외로 떠난 지 3년 만에 귀국했다.
- 원래는 한지호를 깜짝 놀라켜 주려고 했었다. 그런데 공항에 도착해서 휴대폰을 켜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건, 그가 첫사랑, 신민아와 결혼한다는 대서특필 소식이었다.
- 그와 동시에.
- 익명의 번호로 몰카 영상 한 편이 도착했다.
- 화면 속에서 한지호의 친구가 빈정대는 목소리로 물었다.
- “지호야, 근데... 나은비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만약 걔가, 그때 네가 직접 그녀를 다른 남자와 잤게 만들었다는 걸 알면... 널 증오하게 될 거야. 정말 안 무서워?”
- 한지호는 곁에 있는 신민아를 품에 끌어안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 “그래서 어쩌라고? 난 명목상 나은비 삼촌이야. 걔가 나를 좋아하는 것부터가 역겨워. 그 정도는 감당해야지. 게다가 그건... 민아를 괴롭힌 대가일 뿐이야.”
- 들뜨고 또 들떴던 내 마음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 입가에만... 씁쓸한 웃음이 스쳤다.
- 결국 내가 한지호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시간은 그에게 그저 오물처럼 역겨운 기억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 나는 앙상하게 마른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헛웃음이 새어 나오더니 어느새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되어 터져 나왔다.
- ‘차라리 잘됐다. 어차피 난 곧 죽으니까.’
- “한지호, 이번엔 네가 평생 나를 못 찾게 해 줄거야.”
-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문을 밀치고 나가려던 찰나, 한 남자가 내 앞을 가로막아 섰다.
- 그 순간 내 발걸음은 돌처럼 굳어버렸다. 심장을 파고드는 두려움과 혐오감에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 이유는 내 눈앞에 서 있는 이가 바로 3년 전, 나와 관계를 가졌던 그놈이었기 때문이다.
- 그해 한지호는 나를 만취하게 만든 뒤 이 남자의 침대에 던져 넣었다.
- 나는 인사불성이 되어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고, 그는 나를 짐승처럼 마구 짓밟았다.
- 김태건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내렸다. 내 눈에 그 웃음은 지옥에서 온 악마의 형상 그 자체였다.
-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 끔찍한 남자가... 지금 한지호의 별장에 태연히 머무는 건지.
-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지만 누군가 앞을 가로막았다.
- “나은비, 인사도 없이 어디 가려고?”
- 신민아가 가증스러운 듯 입을 가리며 말을 이었다.
- “아, 내가 말을 안 했구나. 이 사람은 내 사촌 동생 김태건이야. 네가 출국하던 날, 지호가 속상해하는 날 달래주겠다고 이 별장의 집사로 붙여줬어.”
-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입술이 부르르 떨리고 눈시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 ‘한지호, 너는 대체 어디까지 잔인해질 셈일까?’
- 나를 짓밟으라고 이 남자에게 던져준 것도 모자라 첫사랑을 위한다는 핑계로 나를 망가뜨린 가해자를 내가 십수 년을 살아온 이 별장에 주인처럼 들여놓다니.
- 그는 정말 단 한 순간도 나를 사람으로 취급한 적이 없었다.
-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에 이마를 잔뜩 찌푸리자 속이 뒤집히는 역겨움이 밀려왔다.
- 그때 신민아가 불쑥 내 손을 붙잡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 “은비야... 다 내 잘못이야. 원망해도 돼. 그러니까... 제발 지호한테는 화내지 말아 줘, 응?”
-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자신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 ‘찰싹’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볼이 금세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3년 전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수법이다.
- 고개를 번쩍 드니 예상대로 한지호가 혼비백산하여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 이번에도 그의 선택은 고민할 여지 없이 신민아였다.
- 하지만 쓰러질 듯 마른 내 몰골을 본 순간, 그의 눈빛이 찰나의 순간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습관처럼 날카로운 비난을 쏟아냈다.
- “나은비! 내가 돈을 안 줬어, 뭘 안 해줬어? 해외 나가서 3년 동안 대체 뭘 하고 다녔길래 꼴이 이 모양이 된 거야!”
- 억울함에 항변이라도 하려 입을 뗐지만 신민아가 먼저 선수를 쳤다. 그녀는 억울한 표정으로 한지호의 손을 붙잡고는 나를 가련하게 쳐다보며 연기를 이어갔다.
- “은비야, 이래도 화가 안 풀린다면 마음이 풀릴 때까지 내가 계속 빌게. 제발...”
- 신민아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자 한지호는 곧장 그녀를 품에 끌어안아 감싸며 나를 향해 억눌러 왔던 분노를 터뜨렸다.
- “넌 해외에 3년이나 나가 살았으면서 왜 하나도 안 변한 거야? 그 오만하고 거만한 성질머리는 여전하고! 그렇게 사람을 몰아붙이는 게 좋으면 거기 그대로 서 있어. 이 집 문턱은 넘을 생각도 하지 마!”
- 한지호는 그 말만 남긴 채 신민아를 품에 안고 그대로 별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신민아는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도발적인 눈빛을 슬쩍 던졌다.
- 또다. 지긋지긋한 반복...
- 한지호는 이번에도 내 사정 따위는 묻지도 않은 채 내 죄부터 단정 지어버렸다.
- 3년 전에도 그랬다. 신민아가 내가 자신을 밀어 물에 빠뜨렸다고 누명을 씌웠을 때 그는 그녀의 분풀이를 해주겠다며 사람을 시켜 나를 짓밟았다.
-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녀를 위해 나를 얼어붙은 눈바닥 위에 무릎 꿇리고 있었다.
- 살을 파고드는 차가움이 내 신경 하나하나를 콕콕 찔러왔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차가운 눈 위로 떨어졌지만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금세 사라졌다.
- 나는 몸을 갉아 먹는 암세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고통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심장은... 그보다 훨씬 더 아플 수 있었다.
- ‘한지호... 나 이제, 더는 널 사랑하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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