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내가 아닌 그녀를 위한 공간
- 준우는 옆방인 손님용 침실에서 잠을 청했다. 매년 추모를 다녀온 뒤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일종의 관례였다.
- 날이 채 밝기도 전, 나는 홀린 듯 그 영수증을 들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의 차 문을 열었다. 내비게이션 검색 기록에는 소방서와 시댁 주소 외에 단 하나의 낯선 목적지가 남아 있었다.
- [별달동]
-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들른 곳. 마지막 기록은 바로 어제 오후였다.
- '별달동'……. 그리고 영수증에 적힌 '스타릿 나이트(별달의 사랑)'…….
-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별달동은 우리 집에서 차로 40분이나 떨어진 고급 아파트 단지였다. 내가 어떻게 그곳까지 운전대를 잡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온몸에 오한이 일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참 울린 뒤에야 잠이 덜 깬 그의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 "나 지금 별달동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야."
- 수화기 너머로 죽은 듯한 정적이 흘렀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간신히 목소리를 찾아냈다. 메마르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당장 집으로 돌아가!"
- "당신이 내려와." 내가 말했다. "아니면, 내가 올라갈까?"
- "너 진짜!"
- 10분 뒤, 준우의 차가 미친 듯이 지하 주차장으로 돌진해 들어오더니 내 옆에 급제동했다. 차에서 내린 그의 얼굴은 철회색으로 질려 있었고, 눈은 핏발이 서 있었다.
- "심지하, 너 대체 어쩌려는 거야!"
- "올라가서 확인해 보고 싶어."
- "볼 거 없어!"
- 그가 내 손목을 낚아챘다. 뼈가 으스러질 듯한 악력이었다.
- "당장 집으로 가자고!"
- "뭐가 그렇게 찔리는데?"
- 나는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엘리베이터 쪽을 가리켰다.
- "저 위에 당신이 그 '스타릿 나이트' 팔찌를 사다 바친 여자가 살고 있는 거잖아, 안 그래?"
- 그의 몸이 굳어졌다. "무슨 헛소리야?"
- "헛소리?" 나는 가방에서 영수증을 꺼내 그의 얼굴에 던져버렸다.
- "그럼 말해봐. 이 수천만 원짜리 팔찌를 대체 어떤 '전우'한테 선물한 건데? 설마 죽은 그 첫사랑 무덤에라도 뿌려준 거야?"
- "너 정말 말이 안 통하는구나!" "심지하, 나 자극하지 마!"
- "자신을 자극하고 있는 건 당신이야, 강준우!"
- 우리는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로를 뜯어먹을 듯 노려봤다. 이윽고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17층에 멈춰 섰다.
- 그가 먼저 튀어 나갔지만, 이미 1702호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강 선생님, 오늘 일찍 오셨네요. 청소는 다 끝났습니다."
- 가사 도우미가 익숙하게 인사를 건네며 밖으로 나갔다. 그 능숙한 대화를 듣는 순간, 내 심장은 무형의 손에 꽉 쥐어 짜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 나는 준우를 밀치고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 거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내가 예전에 잡지를 보며 너무 예쁘다고 말했던 한정판 가방이 진열되어 있었다.
- 현관 신발장 위에는 장바구니에 한참을 담아두고도 비싸서 차마 결제하지 못했던 하이힐이 놓여 있었다.
- 화장대 위에는 내가 딱 한 번 갖고 싶다고 스치듯 말했던 절판된 향수와 최고급 스킨케어 세트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 그리고 벽에 걸린 웨딩드레스 하나. 친구 결혼식에서 보고 "정말 아름답다"고 한마디 했던 바로 그 디자인이었다.
- 내가 원했지만, 그가 '낭비다', '실용적이지 않다', '지금은 아껴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했던 모든 것들이 이 집안에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 그는 나의 갈증과 미련을 이용해, 다른 누군가의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 침실 침대 위에는 열려 있는 주얼리 박스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스타릿 나이트' 팔찌가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 그리고 침대 옆 탁자 위, 크게 인화된 사진 한 장이 보였다.
- 사진 속 여자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눈매가 젊은 시절의 나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 임월.
- 사진 속 여자는 임월이었다. 허연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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