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다정함엔 내가 없었다
xiaojiuyue
Last update: 1970-01-01
제1화 죽은 연인의 그림자
- 결혼기념일, 남편의 SNS 프로필이 '3일 공개'로 제한되었다.
- 그의 직장 동료 아내는 이 사실을 모른 채, 우리의 공통 지인 게시글에 댓글을 남겼다. [준우 씨, 또 그 '첫사랑' 보러 갔나 보네? 8년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말 지극정성이다.]
-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첫사랑?
- 남편 강준우는 내게 매년 오늘,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했던 전우를 추모하러 간다고 했었다. 그건 부대의 전통이라고도 했다.
- 가시 돋친 댓글을 보며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게요, 참 의리 있는 사람이죠." 나는 부계정으로 접속해 무심하게 댓글을 달았다.
- 휴대폰을 내려놓고, 서둘러 치렀던 우리들의 결혼식을 떠올려 보았다. '목숨을 구해준 은혜는 평생 갚아도 모자라.' 지난 8년간 내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말이다.
- ......
- 준우가 케이크 상자를 들고 귀가했다. 그의 눈가엔 피로가 서려 있었지만, 나를 향한 미소만큼은 여전히 다정했다.
- "지하야, 결혼기념일 축하해."
- 그는 식탁 위에 케이크를 내려놓고 코트를 벗으며 나를 안으려 다가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옆으로 틀어 그를 피했다.
- "왜 그래?" 준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어디 몸 안 좋아?"
- 나를 바라보는 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걱정이 가득했다. 만약 그 댓글을 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난 7년이 그랬듯 그의 품에 안겨 '전우'를 추모하느라 고생했다며 그를 위로했을 것이다.
- "아니,"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냥 몸이 좀 찬 것 같아서."
- 그는 안심한 듯 욕실로 향했다. "오늘 허연우 씨 보러 갔던 거야?"
- 머리를 말리던 그의 손길이 뚝 멈췄다. 날카로운 시선이 내 얼굴에 꽂혔다. "누구한테 들었어?"
- "당신 동료 아내가 지인 SNS에 댓글 남겼더라고." 나는 휴대폰 화면을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 준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심지하, 너 또 내 주변 사람들 SNS 뒤지고 다녀?"
-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취조하듯 몰아세웠다.
- "뒤진 게 아니라 그냥 뜬 거야." 나는 휴대폰을 거두었다. "허연우가 누구야? 당신 첫사랑이야?"
- "헛소리 좀 하지 마!" 그의 목소리가 단번에 높아졌다. 분노가 섞인 말투였다. "연우는 내 전우야! 나 대신 희생된 전우라고!"
- "전우?" 내가 실소를 터뜨렸다. "어떤 전우길래 직장 동료 아내가 '첫사랑'이라고 부르는데?"
- "그 사람들이 상황도 모르고 함부로 떠드는 거지!" 그는 답답하다는 듯 셔츠 깃을 거칠게 풀었다. "심지하, 너만은 날 이해해 줄 줄 알았어.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게 매년 인사를 가는 게 그렇게 잘못된 일이야?"
- "아니, 잘못 아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아니야. 당신 의리 있는 거, 나도 잘 알지."
- 그가 다가와 내 어깨를 감싸려 했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
- 나는 부드럽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 "준우 씨, 우리 결혼한 지 8년 됐어." "알아." "나 아이 갖고 싶어."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더는 미룰 수 없어."
- 그의 얼굴에서 온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를 차가운 거부감이 채웠다. "심지하, 이 문제는 이미 얘기 끝났잖아."
- "그래, 당신은 매번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했지." 내 목소리도 덩달아 차갑게 식었다. "언제까지? 내가 아이를 못 낳을 때까지?"
- "꼭 말을 그렇게 해야 해?" 그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내 목숨은 연우가 대신 살려준 거야! 내 마음속에서 이 죄책감을 완전히 털어내기 전까지, 내가 어떻게 마음 편히 새 생명을 만들 수 있겠어?"
- 그는 이기심을 '죄책감'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며, 죽은 사람의 이름을 빌려 내가 엄마가 될 권리를 박탈하고 있었다.
- "그러니까 우리 아이는, 항상 그 죽은 사람 뒷전이라는 거네?"
- "심지하!" 그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말 좀 예쁘게 못 해? 죽은 사람이라니! 내 은인이라고 했잖아!"
- 분노로 붉어진 그의 얼굴을 보니 문득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8년이다. 나는 지난 8년간 그가 써 내려간 '보은'이라는 시나리오 속에서, 그의 의리를 증명해 주는 살아있는 소품으로 살았던 것이다.
- "알았어, 그만할게."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목을 타고 올라오는 울음을 삼켰다. "내가 잘못했어. 꺼내지 말아야 할 말을 했네."
- 내가 물러서자 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알았으면 됐어. 피곤하니까 먼저 잘게."
- 나는 손바닥에 쥔 종이 조각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의 코트 주머니에서 나온 주얼리 샵 영수증이었다.
- [품명: '스타릿 나이트' 다이아몬드 팔찌] [금액: 1,500만 원] [날짜: 오늘]
- 그는 망자를 추모하러 간 날, 거액의 팔찌를 샀다. 물론, 내 것은 아니었다.
- 우리가 결혼한 지 8년, 그가 내게 준 가장 비싼 선물은 100만 원짜리 결혼반지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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