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었던 여왕의 귀환
Donald Steven
Last update: 1970-01-01
제1화
- 의사가 성큼 다가와 몸을 숙이더니 내 상태를 살폈다.
- "신경 반사가 있습니다! 빨리 펜라이트 가져와요!"
- 곁에 있던 간호사가 다급히 다가와 그를 도왔다.
- '살려줘… 제발, 부탁이야. 나 좀 살려줘!'
- 나는 속으로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 그때, 서태준이 옆방에서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 그는 등 뒤의 수하들에게 턱짓을 하더니, 내게 붙어 있던 의사와 간호사를 확 밀쳐냈다.
- “지금 뭐 하는 거야! 누가 허락도 없이 내 동생 몸에 손을 대!”
- 나는 바닥난 기력을 쥐어짜 내 간신히 손가락을 까딱였다.
- "아, 아가씨 손가락이 방금—"
- 짜악!
- 간호사가 채 말을 끝맺기도 전에, 서태준의 억센 손이 그녀의 뺨을 무자비하게 후려쳤다.
- "닥쳐. 네년이 잘못 본 거다."
- "당장 썩 안 나가? 내 동생 쉬는데 거슬리게 하지 말고 다 꺼져."
- "죄, 죄송합니다! 보스!"
- 두 사람은 겁에 질려 서로 눈치만 보다가, 그의 살벌한 기세에 눌려 허둥지둥 병실을 빠져나갔다.
- 방금 막 타오르던 희망의 불씨가 한순간에 짓밟혔다. 몸은 다시 천근만근 돌덩이처럼 굳어버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 서태준이 문을 닫고 다가와, 얼음장같이 서늘한 손으로 내 뺨을 쓸어내렸다.
- "내 착한 동생아, 헛수고하지 마. 다 소용없는 짓이니까."
- "넌 그냥 이렇게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는 게 어울려. 조직의 피 튀기는 권력 싸움은 네 그 여린 체질엔 안 맞잖아."
- "이렇게 얌전히 누워만 있어야 넌 가장 안전해."
- 이내 그의 목소리가 독기를 품은 듯 싸늘해졌다.
- "분수 파악하고 시키는 대로 해라. 안 그러면, 하나뿐인 핏줄한테 나도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 짙은 어둠이 깔리고, 창밖에서 요란한 불꽃놀이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조직의 창립 기념일이었다.
- 10년. 내가 저 화려한 불꽃을 마지막으로 본 지도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 끔찍한 이 어둠의 끝이 언제일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 그때 서태준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의 오른팔인 조 실장이었다.
- "뭐? 안 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안이 병실에는 아무도 못 들이게 막아!"
- 서태준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으며 병실 밖으로 나갔고, 발소리는 복도 끝으로 점점 멀어졌다.
- 그 순간, 닫혀 있던 병실 문이 소리 없이 살짝 열렸다.
- 낮에 내 상태를 살폈던 그 담당 의사, 차우진이었다!
- 그가 성큼성큼 내 침대 곁으로 다가와 극도로 목소리를 낮췄다.
- "지금 내 말 들려요? 의식 있는 거죠?"
-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릴 새도 없이, 축 늘어진 내 손가락을 잡아 자신의 넓은 손바닥 위에 올렸다.
- "내 말이 들리면,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려요."
- 말로 다 할 수 없는 뜨거운 격정이 가슴속에서 훅 치고 올라왔다!
- 나는 감각조차 무뎌진 손가락을 움직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안간힘을 썼다.
- 그런데 바로 그때, 바깥 복도에서 서태준의 구두 발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 또각, 또각. 그 발자국 소리 하나하나가 내 심장을 무참히 짓밟는 것만 같았다.
- 간신히 돌던 몸속의 온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깊은 얼음물에 처박힌 듯한 공포가 밀려왔다.
-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오늘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 나는 죽을힘을 다해 기력을 끌어모았고, 그의 손바닥 위에 떨리는 손가락으로 간절한 단어 하나를 적어 내렸다.
- '살려줘.'
- 순간, 의사의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이 느껴졌다.
- 철컥. 병실 문손잡이가 돌아가는 그 찰나의 순간, 그는 재빨리 몸을 숙여 내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 "알겠습니다. 겁먹지 마세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기서 빼내 줄 테니까."
-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그는 1층 병실 창문을 가볍게 넘어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 곧이어 서태준이 서늘한 얼굴로 병실에 들어서며 전화기 너머로 지시를 내렸다.
- "그건 조 실장 네가 알아서 깔끔하게 처리해."
- 그는 통화를 끊고 침대 머리맡 탁자에 휴대폰을 거칠게 던지더니, 서늘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 "독한 것. 10년이야… 10년이 지났는데도 조직 원로 영감탱이들이 아직도 널 입에 올리더군. 심지어 병문안을 오겠다고 난리야."
- "네 꼴이 이 모양 이 지경인데, 도대체 네깟 게 뭐라고 내 보스 자리를 위협한다는 건지."
- 나는 속으로 차가운 비웃음을 삼켰다.
- '그래, 지난 10년 동안 네가 내 자리를 빼앗아 보스 노릇을 했지만, 넌 단 한 번도 조직을 장악할 진짜 그릇이 못 됐지.'
- '자기 핏줄한테 독이나 먹이는 비겁한 겁쟁이 새끼가 무슨 자격으로 조직을 삼키겠다고?'
- 문득 선대 보스였던 아버지가 임종 직전, 조직이 대대로 관리해 온 막대한 비자금 계좌를 오직 내게만 넘겼던 기억이 떠올랐다.
- 그 비자금은 우리 조직을 지켜줄 최후의 방패이자, 동시에 조직 전체를 공중분해시킬 수 있는 시한폭탄이었다.
- 내가 다시 깨어나 움직일 수만 있다면, 그 돈으로 당장 서태준을 끌어내리고 내게 속했던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다!
- 그런데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서태준이 간병인들을 대동하고 나타나 내 짐을 싸기 시작한 것이다.
- 그는 조직이 은밀하게 운영하는 VVIP 전용 개인 병원으로 나를 옮기겠다고 통보했다.
- 분명 어젯밤 조 실장의 전화가 그의 얄팍한 밑천을 뒤흔들고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것이 틀림없었다.
- 순간 내 심장이 쿵 하고 발밑까지 내려앉았다.
- 그곳은 서울 시내에서 보안이 가장 삼엄하기로 소문난 사설 병원이었다. 쥐새끼 한 마리 빠져나갈 수 없도록 감시 카메라가 구석구석 깔려 있는 진짜 감옥.
- 그곳으로 한 번 끌려가면, 두 번 다시 도망칠 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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