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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 “뭐라고?”
  • 박 회장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갈라졌다.
  • “진혁이가 채유리한테 라이브 방송으로 프러포즈를 했다고? 위치까지 다 노출하고 사람들더러 축하하러 오라고 광고를 해?”
  • 침묵이 흘렀다. 박 회장의 미간이 험악하게 좁혀졌다.
  • “그런데 지금 그 채유리가 하는 애가 납치돼서, 진혁이 그놈이 제 발로 사지에 뛰어들었다고!”
  • 전화기 너머의 소식을 들은 박 회장은 뒷목을 잡으며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차오르는 회의감을 눌러 담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박 회장에게 냉정한 조언을 건네고 싶었다. 차라리 아들들이 정정할 때, 새로운 후계자를 점지하는 게 가문의 평화를 위해 빠를지도 모른다고.
  • 키 190이면 뭐 하나. 뇌 용량은 제로에 수렴하는 저 멍청이를, 억지로 후계자 자리에 앉혀놔 봤자 가문에는 독만 될 뿐이다.
  • “걱정 마세요, 할머니.제가 해결하겠습니다.”
  • 박 회장과 맺은 비밀 계약 조항 중 하나는 바로 강진혁의 신변 보호였다. 그 의무만큼은 내 머릿속에 철저히 각인되어 있었다.
  • 사실 강진혁이 이런 악수를 둔 건 어제 내가 벌인 일에 자극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 자신의 스캔들이 단 10분 만에 증발해 버린 것에 대한 치기 어린 반항이자 무모한 도발.
  • 그는 라이브 방송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 얼굴에 먹칠을 할 수 있다고 믿었겠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사실을 망각했다. 그는 단 한 번도 ‘개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것을.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곧 강 씨 가문의 얼굴이자 거대한 자본을 움직이는 방아쇠라는 사실을 말이다.
  • 위치 추적을 통해 경찰이 좌표를 확보했지만, 하필이면 울창한 산림지대였다. 수색 범위가 넓은 데다 자칫하면 범인을 자극해 인질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 현장의 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 기록에 따르면 채유리를 납치한 자는 잃을 게 없는 전과자였다. 연고도, 미련도 없는 망나니. 놈은 지독하게 영악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강 씨 저택으로 요구 사항을 전달해 왔다.
  • “강진혁 목숨줄 붙여놓고 싶으면 뻘짓 하지 마.”
  • “몸값은 현금으로 10억. 딱 한 명만 보내.”
  • “대신, 여자여야 해.”
  • 놈은 확신을 주려는 듯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사진 속 강진혁은 겁에 질린 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 처참한 꼴을 보자마자 헛웃음이 났다. 저 정도 연기력이면 경영 수업 대신 당장 배우 데뷔부터 시켰어야 했다.
  • 여경 중 누가 투입될지 논의가 길어지던 그때, 내가 나섰다.
  • “제가 가겠습니다.”
  • 객기가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었다. 어머니를 따라 윤 씨 집안에 들어온 날부터 나는 단 한 방울의 리소스도 낭비하지 않았다. 주짓수, 복싱, 무에타이….
  • 나를 보호하고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술이라면 닥치는 대로 몸에 새겼다. 해외에 체류하던 3년 동안은 민간 용병 캠프의 실전 훈련까지 마친 상태였다.
  • 위험과 기회는 늘 동전의 양면과 같아.
  • 그리고 나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생각이 없었다. 이번 일로 내가 얻어낼 것은 박 회장의 절대적인 신뢰, 그리고 이 판의 주도권이다.
  • 현장에 도착하니 납치범의 수법은 예상보다 더 악랄했다. 놈은 강진혁을 마른 우물 입구에 아슬아슬하게 매달아 놓았다. 채유리의 비명 섞인 절규가 숲을 울렸다. 나는 손에 든 돈 가방을 가볍게 두드렸다.
  • “돈 여기 있어. 사람 풀어.”
  • 마스크도 쓰지 않은 범인은 나를 보자 의외라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 “와, 진짜 독한 년이 기어 왔네?”
  • 이내 놈의 눈에 비릿한 흥미가 서렸다.
  • “설마 네가 그 약혼녀냐? 저놈은 제 목숨 걸고 애인 구하러 왔는데, 넌? 넌 뭘 위해서 여기까지 왔어?”
  • “…….”
  • “방금 전까지 둘이 나누던 그 절절한 사랑 고백을 못 들려준 게 아쉽네. 뭐, 상관없어. 내가 2부 커튼콜을 준비했으니까.”
  • 놈이강진혁의 머리 위로 물 한 바가지를 끼얹으며 비웃었다.
  • “야, 네 약혼녀 왔다. 돈도 가져왔는데, 안타깝게도 이 돈으론 딱 한 명만 살려준대. 자, 선택해 봐.”
  • 가슴이 서늘해졌다. 제발 강진혁이 저능아처럼 굴지 않기를 빌었건만, 역시나 기대는 배신당했다.
  • “윤이수, 내 명령이야. 당장 채유리 데리고 여기서 나가.”
  • 기다렸다는 듯 채유리의 비명이 이어졌다.
  • “안돼, 못 가! 윤이수, 내 말 들어! 당장 진혁 씨 데리고 나가라고!”
  • 납치범은 배를 잡고 낄낄거리더니, 아예 칼까지 내려놓고 옆에 있던 견과류를 까먹기 시작했다. 놈이 나를 보며 빈정거렸다.
  • “윤 아가씨, 재밌지? 자, 이제 네 차례야. 누구 고를래? 널 배신한 예비 신랑? 아니면 죽고 못 사는 그 상간녀?”
  • ‘자극적’이라는 단어가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놈의 급소를 정확히 걷어찼다. 이 바닥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짓이 바로 방심이다. 불행히도 놈은 내게 그 교훈을 얻을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지는 놈의 사지를 순식간에 제압해 묶었다. 동시에 매복해 있던 경찰과 경호팀이 현장을 덮쳤다. 아수라장이 된 와중에 강진혁이 우물 위로 기어 올라오려다 범인이 설치해 둔 돌 함정을 건드리고 말았다.
  • 나는 찰나의 순간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리고 주저 없이 몸을 던졌다. 쏟아지는 낙석을 등으로 받아내며 강진혁을 우물 밖으로 끌어 올렸다.
  • 뜨거운 피가 셔츠를 적시는 감각이 생생했지만,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는 승리자의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 ‘역시, 오길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