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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편의 라이벌과 결혼했다

나는 남편의 라이벌과 결혼했다

stephenwriter

Last update: 1970-01-01

제1화

  • 결혼 3주년 기념일, 내가 맞이한 건 이준호가 아니라 치밀하게 짜인 사기극이었다.
  • 그는 그 여자를 데리고 내 앞에 나타났다. 눈빛은 싸늘하고 낯설었다. 그는 말했다. “당신 누구지? 우리 아는 사이야?”
  • 교통사고 한 번에, 그는 나만 골라서 잊었다.
  • 웃긴 건, 그의 품에 기대 선 여자가 번쩍거리는 혼인증명서를 꺼내 들고 내게 말했다. 자기들이야말로 법적인 부부란다.
  • 내 손에 있던 그건 뭐였냐고? 3년 전, 나를 속이려고 이준호가 꾸며낸 위조 증명서였다.
  • 3년의 결혼, 한바탕 코미디.
  • 나는 울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약지의 반지를 빼고 돌아섰다.
  • 하지만 그는 몰랐다. 나는 곧장 시청으로 들어가, 휠체어에 앉아 있고 그가 “쓸모없는 놈”이라고 비웃던 그 남자와 결혼했다.
  • ......
  • 오늘은 우리 결혼 3주년 기념일. 벽시계는 벌써 밤 열두 시를 가리켰고, 이준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전화를 걸려고 화면을 켰는데, 오후에 보던 뉴스 알림이 그대로 떠 있었다.
  • “애스터 그룹 대표 이준호, 오늘 오전 교통사고… 다행히 큰 부상은 없어.”
  • 그 순간 가슴이 쪼그라들듯 움켜쥐어졌다. 바로 그의 번호를 눌렀다. 한참을 울리다가 겨우 받았다. “준호 씨, 괜찮아? 뉴스에서…”
  • “당신 누구지?”
  • 수화기 너머, 얼음장 같은 낯선 목소리.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준호 씨, 나야. 정아름.”
  • “난 당신 몰라.”
  • 뚝. 차갑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
  •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머리가 하얘졌다. 잠시 후 정신을 수습하고 방으로 뛰어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병원으로 갈 준비를 했다.
  • 막 나서려는데, 저택 현관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나는 급히 걸음을 재촉해 현관으로 갔다.
  • 문이 열렸다. 들어온 건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그의 옆엔 화장을 곱게 한 여자, 차서연이 서 있었다. 그녀의 손이 이준호의 팔을 다정하게 끼고 있었다.
  • 내 시선은 두 사람이 엉켜 있는 그 지점에 박혔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심장을 와락 움켜쥐는 것 같았다. 숨이 막혔다.
  • “이준호…”
  • 내 목소리는 떨렸다. 이준호는 날 완전한 낯선 사람 보듯 바라봤다. “의사가 그러더군. 사고로 뇌를 다쳤고, 몇몇 사람과 일들을 잊었다고.”
  • 전화보다 더 차가운 음성. “이 사람은 누구지?”
  • 그는 차서연을 보더니 나를 가리켰다. 얼굴엔 의문만 가득했다.
  • 차서연이 부드럽게 웃었다. 하지만 눈빛엔 승자의 비아냥이 번뜩였다. “준호 씨, 이 사람은 정아름 씨예요. 예전에… 당신이 지원해줬던 부하 직원 하나.”
  • 부하?
  • 나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이준호를 봤다. 그가 한마디만이라도 반박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 그는 무심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내게 보내는 눈빛엔 심지어 평가하듯 가늠하는 기색까지 비쳤다.
  • “정아름. 그동안 집 봐줘서 고마워.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 나가 줘.”
  • 그의 말, 한 글자 한 글자가 바늘처럼 심장에 박혔다.
  • 3년을 사랑한 그 남자를 바라봤다.
  • 잘생긴 얼굴엔 파문 하나 없었다. 마치 우리 사이의 모든 게 그 사고와 함께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처럼.
  • 손발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분노와 배신감이 밀물처럼 들이닥쳤다.
  • 나는 거의 고함치듯 내질렀다. “이준호, 똑바로 봐. 내가 네 아내야!”
  • “아내?”
  • 차서연은 세상 우스운 소리라도 들은 듯 과장되게 웃어댔다. 그녀는 가방에서 혼인증명서 하나를 꺼내 과시하듯 내 눈앞에서 흔들었다. “아름 씨, 잘 봐. 이게 진짜 이준호 씨의 혼인증명서야.”
  • 등록일자가 바로 오늘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말도 안 돼… 우린 3년 전에 벌써 혼인신고 했어!”
  • 나는 침실로 달려가 서랍에서 우리의 혼인증명서를 꺼냈다. 차서연이 내 손에서 증명서를 빼앗아 들었다. 휙 넘겨 보더니 피식 비웃었다. “이걸 진짜라고 믿은 건 아니겠지?”
  • 그녀의 말이 번개처럼 가슴을 갈랐다. “3년 전, 이준호가 너랑 시청에 간 건 그냥 쇼였어.”
  • “네 손에 든 그 혼인증명서는 그가 사람 시켜 만든 위조야. 널 구슬려서, 그 엔지니어 머리와 시간을 자기 회사에 바치게 하려던 꼼수였지.”
  • “그걸 진짜로 믿었어?”
  • “이 3년 동안, 넌 그가 이 집에 숨겨 둔 애인일 뿐이었고, 마음만 먹으면 버릴 수 있는 장난감이었어.”
  •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 네 차례야. 꺼져.”
  • 가짜…
  • 애인…
  • 장난감…
  • 단어 하나하나가 큰 망치처럼 내 자존심을 내려쳤다. 산산이 부서졌다.
  • 3년의 결혼, 3년의 헌신. 알고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사기.
  • 나는 바보였다. 멋대로 가지고 놀아도 모르는, 한심한 웃음거리.
  • 절망과 수치가 한꺼번에 들이닥쳐 나를 삼켰다.
  • 이준호와 차서연은 내 맞은편에 서서, 얼굴에 노골적인 경멸과 비웃음을 숨기지도 않았다. 발밑에서 죽어라 발버둥 치는 개미 구경이라도 하듯.
  • 그들은 내가 무너져 울기를, 비명을 지르기를, 자존심을 버리고 빌기를 기다렸다.
  •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 감정이 극점에 닿는 순간, 오히려 모든 게 고요해졌다.
  • 가슴은 이미 죽었다. 그러면 더는 아프지 않지.
  • 나는 그들을 바라봤다. 말라붙은 연못처럼 고요한 눈으로. 그리고 손을 들어, 아주 천천히, 한 바퀴 한 바퀴, 약지의 반지를 빼냈다.
  • 3년 전, 이준호가 내 손가락에 끼워 주며 말했었다. 영원한 약속이라고.
  • 지금 와서 보니, 더없이 잔혹한 풍자였을 뿐.
  • 나는 그 반지를 차가운 식탁 위로 던졌다. 이미 식어버린 음식들 틈에서 딸깍 소리를 내며 굴렀다. 우리 사랑도 이미 그렇게 식어 있었지 뭐야.
  • “이준호.” 나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둘 다, 신혼 축하해.”
  • 그 말만 남기고, 그들을 다시 보지 않았다. 3년 동안 나를 가둔 화려한 감옥을 등지고 걸어 나왔다.
  • 등 뒤로 차서연의 비웃는 콧소리가 날아왔다. “오, 뼈는 있네. 두고 보자고. 이준호 없으면 네가 어떻게 사나.”
  •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 저택 문을 나서자, 겨울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차가웠다.
  • 하지만 집으로 가지 않았다. 휴대폰을 꺼내 한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준비됐어요. 우리, 결혼해요.”
  • 수화기 너머로 낮고 깊은 남자 목소리가 들어왔다. “그래요, 기다릴게요.”
  • 전화를 끊고 택시를 세웠다. “시청으로 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