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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 페라리 가문 생각으로 밤새 뒤척였다.
  • 그 집안, 깨끗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 정략결혼 상대로 지목된 노아 페라리도 그들이 점찍은 후계자고.
  • 난 그 사람 나이가 몇인지도 몰랐다.
  • 소문은 좀 들었지만, 집안 내부 사정은 영 깜깜이다.
  • 어쨌든 이탈리아로 멀리 시집가야 하는 건 나니까 준비는 해야 했다.
  • 다음 날, 차 몰고 교외 사격장으로 갔다.
  • 양아버지는 퇴역 군인이었다. 살아 계실 때 내게 사격이랑 격투를 3년이나 가르쳤다.
  • 여자는 스스로 지키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늘 그러셨다.
  • 전생의 나는 최로한 때문에 이 모든 걸 내다버렸다.
  • 매일 꽃꽂이를 배우고, 와인을 공부하고, 그가 좋아하는 디저트 연습만 했다.
  • 돌아온 건 8년짜리 냉대, 그리고 그의 장례식장에서 쏟아진 모든 사람들의 손가락질이었다.
  • 이제 다시 몸에 익힐 때다.
  • 보안경 끼고 권총을 들었다.
  • 탕, 탕. 한 발씩 뽑을 때마다 과녁 한가운데 구멍이 점점 촘촘해졌다.
  • 등 뒤에서 누가 불시에 내 손목을 움켜잡았다. 이어서 최로한의 목소리가 꽂혔다.
  • "네 동생을 그렇게까지 미워하지? 이탈리아로 보내 죽으라고?"
  • 욱신한 통증에 얼굴이 확 질렸다. 최로한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 "최로한, 말했지. 우리 집안일에 끼어들지 마. 네가 관여할 일 아니야."
  • 그가 성큼 다가와 내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눈은 벌겋게 핏발이 섰다.
  • "이유라는 몸도 약하고 심장에 문제까지 있잖아. 그렇게 멀리 시집보내면, 그건 사실상 죽으라는 거야. 이세린, 언제부터 이렇게 이기적이었어!"
  • "유라 어제 밤새 겁에 질려 한숨도 못 잤던 거 알아? 지금도 고열이야. 그런데 넌 사격 놀이나 하고 있다 이거지?"
  • 분노를 꾹 눌러 이를 갈았다.
  • "손 놓으라고 했어."
  • "이세린, 유라를 몰아내면 내가 널 데려갈 거라고 착각하지 마. 난 가족 목숨도 안 챙기는 이기적인 여자랑은 절대 결혼 안 해!"
  • "네 양아버지가 살아 계셨다 해도, 널 인간도 아니라고 욕했을 거야!"
  • 그 순간, 그의 눈에 번진 증오가 날 전생으로 그대로 끌어당겼다.
  • 우린 늘 유라 때문에 서로를 몰아붙였고, 일부러 급소만 골라 찔렀다.
  • 난 최로한을 힘껏 밀쳐내고 권총을 집어 들었다.
  • 그의 발끝 옆 바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 탄환이 바닥에 박히며 둔탁한 소리가 번졌다.
  • "최로한, 네가 내 양아버지를 입에 올릴 자격은 없어."
  • 열여섯에 그는 내 양아버지에게 날 잘 돌보겠다고 약속했다.
  • 그런데 이유라 때문인지, 최로한은 그 약속 따윈 진작 잊어버렸다.
  • 귓가를 울린 총성이 그를 번쩍 깨웠다.
  • 그는 반동에 쓸려 생긴 내 어깨의 붉은 자국을 힐끔 보더니, 복잡한 눈빛으로 손을 내밀었다.
  • "미안해, 이세린……"
  • 난 몸을 비켜 그의 손길을 피했다. 싸늘하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 "아직 결정난 것도 아닌데, 유라가 꼭 가게 될 거라고 누가 장담하지? 너, 너무 서두르는 거 아냐?"
  • 그런데 최로한이 씁쓸히 웃었다.
  • "넌 이씨 집안의 친딸이고, 유라는… 그냥 입양된 아이잖아."
  • "이세린, 부탁이다. 내가 예전에 네 목숨 구해준 거… 그거 한 번만 생각해 줘. 이유라를 그 정략결혼에 못 가게 해줘."
  • 난 이미 내가 가기로 마음먹었는데도, 그의 말에 울컥하고 억울함이 치밀었다.
  • 네가 나한테 준 그 목숨 빚으로 유라의 자유를 바꿔 줄게, 최로한. 그럼 만족하겠지.
  • 그날 밤, 최로한이 정교한 마트료시카 장식 하나를 보내왔다.
  • 예전처럼, 나를 화나게 할 때마다 하던 그 방식대로.
  • 이번엔 받지 않았다. 그대로 되돌려 보냈다.
  • 전생의 나는 최로한이 곁에 남아준 게 우리 사이의 깊은 사랑 때문이라고 믿었다.
  • 결혼하고 서로를 갉아먹은 8년 끝에야 깨달았다. 그가 평생 품었던 사람은 이유라였다는 걸.
  • 그렇다면 더 이상, 그와는 어떤 끈도 남기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