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 내 뱃속에 있는 생명은 분명 제 핏줄이건만, 그의 입에서 나온 아이의 존재는, 마치 언제든 내다 버려도 상관없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 나는 화끈거리는 뺨을 감싸 쥐고 입가에 맺힌 피비린내를 핥아내며, 소름 끼치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백태오."
- "방금 그 손찌검, 똑똑히 기억해 둘게."
- 백태오의 행동이 멈칫했다.
- 내 눈에 깃든 서늘한 살기가 어지간히 짙었던 모양인지, 그의 눈동자가 찰나의 흔들림을 보였다.
- 하지만 그는 이내 본래의 그 오만방자한 태도로 돌아왔다.
- "기억해 두면 어쩔 건데? 내 뺨이라도 갈기겠다는 소리야?"
- "임하린, 네 주제를 잊지 마."
- "뺨 한 대가 대수야? 내가 당장 네 목숨을 내놓으라고 해도 넌 순순히 바쳐야 해!"
- "명령이다! 당장 유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
- 백태오의 품에 안겨 있던 백유라가 눈꼬리를 슬쩍 치켜뜨며 나를 흘겨보았다. 그녀의 입가에는 비열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 예전의 나라면 꾹 참고 넘어갔겠지. 백태오를 사랑했으니까, 이 계집도 그의 소중한 가족이라고 여겼으니까.
- 하지만 지금, 나는 이미 저 쓰레기 같은 놈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렸다.
- 고작 저런 년이 뭐라고.
- 나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뒤,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 "저런 년한테 꿇을 무릎은 없어!"
- 백태오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 "뭐라고? 네가 감히 내 명령을 거역하겠다는 거야?"
- "내가 뭘 잘못했는데 사과를 해?"
- 나는 얼음장 같은 시선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 "더러운 짓거리를 한 것도 너희고, 뻔뻔하게 구는 것도 너희잖아.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할 쪽은 너희라고."
- "이게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지!"
- 백태오가 다시 손을 치켜들며 내게 달려들려던 찰나였다.
- "오빠…"
- 그때, 백유라가 다급히 백태오의 허리춤을 끌어안으며 말렸다.
- 세상에서 가장 속 깊은 천사라도 되는 양, 처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 "언니 때리지 마…. 언니 지금 홑몸도 아닌데, 아기가 다치기라도 하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
- 허공에서 멈칫한 백태오가 안타까움이 뚝뚝 묻어나는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 "유라 넌 참… 바보같이 착해 빠져서는."
- "이 여자가 너를 이렇게 무시하는데도 감싸주고 싶어?"
- 백유라는 기운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테이블 위에 놓인 양주병을 가리켰다.
- "언니도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어서 그런 거겠지. 나도 굳이 무릎까지 꿇릴 생각은 없어…"
- 그녀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가련한 사슴 같은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 "대신, 언니가 저 술을 다 마셔준다면… 이번 일은 덮고 넘어갈게."
- 웅성거리는 소리가 파도처럼 연회장을 휩쓸었다.
- 임산부에게 독하디독한 보드카를 병째로 들이부으라고?
- 이건 사과를 받겠다는 게 아니라, 대놓고 살인을 저지르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 더군다나 백태오는 내가 심각한 알코올 알레르기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예전에 그의 술을 대신 받아 마셨다가 응급실에 실려 간 것만 수차례였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 저 보드카 한 병을 다 비웠다간, 나와 아이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다.
- 나는 핏발 선 눈으로 백태오를 쳐다보았다.
- 하지만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차가운 눈으로 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 "유라가 넓은 아량으로 기회를 줬으니 군말 말고 받아들여."
- "다 마셔. 그럼 오늘 일은 깔끔하게 덮어줄 테니까."
- 심장이 억센 손아귀에 쥐어 짜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 저 인간에게 나와 아이의 목숨 따위는, 백유라의 가벼운 말 한마디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
- "정말 이걸 다 마시라는 거야?"
- "안 죽어."
- 백태오가 짜증스럽게 말을 잘랐다.
- "예전에도 잘만 마셔놓고 유난 떨지 마. 고작 한 병이잖아."
- "빼지 말고 당장 마셔. 유라 기다리게 하지 말고."
- 내가 꼼짝도 하지 않자, 그는 곁에 선 보디가드들에게 턱짓했다.
- "억지로라도 들이부어."
- 체구가 우람한 보디가드 둘이 다가와 보드카의 병마개를 비틀어 땄다.
- 코를 찌르는 지독한 알코올 냄새가 확 풍겨왔다.
- "하린아, 미안하게 됐다."
- 놈들이 양쪽에서 내 팔을 거칠게 틀어쥐었다.
- "손 떼!"
- 나는 잇새로 서늘하게 경고했다.
- 동시에 나를 붙잡고 있던 경호원의 무릎 관절을 거세게 걷어찼다.
- 놈의 균형이 무너진 틈을 타 양주병을 낚아챘다.
- 쨍그랑-!
- 날카로운 파열음이 연회장을 찢었다.
-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보드카가 대리석 바닥에 박살 나며 산산조각 났다.
- "꺄아악!"
- 백유라가 비명을 지르며 백태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 구두와 바짓단이 흠뻑 젖은 백태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 어린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임하린! 네가 감히 반항을 해?"
- 나는 입가에 묻은 핏자국을 소매로 닦아내며, 눈보라처럼 차가운 시선을 쏘아보냈다.
- "백태오. 귀 열고 똑똑히 들어."
- "나 임하린은, 널 위해 피 흘리며 싸웠던 경호원이야."
- "네 술 시중이나 드는 화류계 계집도 아니고, 화풀이 샌드백도 아니며, 너희 같은 쓰레기들한테 짓밟힐 노예는 더더욱 아니라고."
- 나는 가슴팍에 달려 있던 백송그룹 수석 보디가드 배지를 거칠게 떼어내, 그의 면상을 향해 보란 듯이 냅다 던져버렸다.
- "이 시간부로, 백송의 개 노릇은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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