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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 대신 손끝으로 몰래 손바닥을 세게 꼬집었다.
  • 등 뒤에서 박준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 “지안아, 위층 프라이빗룸 예약해 뒀어.”
  • 한소민이 내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 나는 그녀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 그리고 돌아서서 박준혁을 바라봤다. 얼굴에는 얌전한 미소를 걸쳤다.
  • “네 말대로 할게.”
  • 룸 문이 밀려 열렸다.
  • 박준혁은 신사라도 되는 것처럼 내 의자를 빼 주었다.
  • 그 손길이 지나치게 익숙했다. 마치 우리가 단 한 번도 멀어진 적 없는 사람들처럼.
  • 그가 강하린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 “너는 저쪽에 앉아.”
  • 그는 내게서 가장 먼 자리를 가리켰다.
  • 말투에는 온기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 강하린의 발걸음이 딱 멈췄다.
  •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셨다.
  •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문 채 아무 말 없이 그쪽으로 걸어갔다.
  • 박준혁이 메뉴를 하나 고를 때마다 강하린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 요리가 하나둘 나오자 박준혁은 끊임없이 내 접시에 음식을 덜어 주었다.
  • 입만 열면 죄다 우리 옛날 얘기였다.
  • “그해 네 생일 기억나? 우리 여기서 디저트만 세 시간은 먹었잖아.”
  • “그때 네가 꼭 티라미수를 배우겠다고 우기다가 주방을 엉망으로 만들어 놨지.”
  • 그의 눈빛에는 옅은 웃음이 맴돌았다.
  • 마치 내가 그의 아내라도 되는 것처럼.
  • 강하린이 물컵을 들어 올리며 대화에 끼어들려 했다.
  • “준혁아, 나도 티라미수 만들 줄 알아. 다음에 해줄까?”
  • 박준혁이 그제야 그녀를 바라봤다.
  • “그거 좋아하는 건 지안이지, 나는 아니거든.”
  • 강하린의 손끝이 그대로 굳었다.
  • 컵 안의 물이 출렁이며 손등 위로 튀었다.
  • 그녀는 허둥지둥 손등을 닦아 냈다.
  • 그리고 더 굳은 미소를 억지로 입가에 걸었다.
  • “나는…”
  • 두 사람 사이에 감도는 공기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속으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 예전의 강하린은 이런 얼굴이 아니었다.
  • 적어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숨죽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 ……하지만 나라고 다를 게 있었을까.
  • 나는 강하린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 “하린아, 너무 개의치 마. 준혁이가 나를 너무 오래 못 봐서 이러는 거야.”
  • 강하린이 내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 냈다.
  •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식사가 이어지는 내내 강하린은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 그저 기계처럼 음식을 입에 넣을 뿐이었다.
  • 중간쯤, 나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복도로 막 나오자 등 뒤에서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따라붙었다.
  • 나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 강하린이 내 앞에 서 있었다.
  • 눈가가 새빨갰고, 방금 전까지 억지로 걸치고 있던 미소도 이미 흔적도 없이 지워져 있었다.
  •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 아무리 눌러도 목소리 끝의 떨림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 “선배, 내가 왜 이렇게 된 건지 알아?”
  •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 마침내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 “그 사람 눈엔 처음부터 내가 아니었어.”
  • 내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
  • 복도의 센서등이 한 번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 그 불빛 아래, 그녀의 얼굴에 남은 눈물 자국이 유난히 선명하게 드러났다.
  • 강하린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 충혈된 눈이 유난히 붉었다.
  • “내가 뭘 입어야 하는지, 어떤 머리를 해야 하는지, 무슨 색을 좋아해야 하는지, 어떤 말투로 말해야 하는지, 심지어 웃을 때 시선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까지…… 전부 그 사람이 하나하나 정해 줬어.”
  • 그녀는 입꼬리를 힘겹게 끌어올렸다.
  • 억지로 웃고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무너질 얼굴이었다.
  • “그 사람이 원한 건 처음부터 내가 아니었으니까.”
  • 나는 숨이 턱 막힌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그녀가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 화면이 켜지는 순간, 나는 그대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잠금화면 배경은 5년 전 내가 가장 자주 찍던 그 강가 풍경이었다.
  • “이거 좀 봐.”
  • 그녀가 채팅 기록을 열어 내 앞으로 내밀었다.
  • 안에는 박준혁이 보낸 지시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 옷차림부터 취향, 사소한 몸짓 하나까지 모두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 맨 아래 메시지는 석 달 전 것이었다.
  • “못 해내면, 너는 가치가 없는 거야.”
  • 나는 그 문장을 바라본 채 손끝을 천천히 말아 쥐었다.
  • 5년 전에도 그는 그렇게 나를 길들였어.
  • 눈치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 강하린의 목소리는 이미 울음에 잠겨 있었다.
  • “나도 처음엔 참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어.”
  • 그녀가 갑자기 왼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 “근데 그 사람은 나를 사람으로도 안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