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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 난 이승우를 밀어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 “제가 가서 처리할게요.”
  • “됐어요.”
  • 이승우는 나를 막아선 뒤, 몸을 돌려 침대에서 내려왔다.
  • 단추를 하나하나 여미고 소매까지 꼼꼼히 정리했다.
  • “위층에서 구경만 하면 돼요.”
  • 그가 창가로 가서 커튼을 확 걷었다.
  • 나는 그늘진 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 박도윤이 별장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쇠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고.
  • 그는 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었다. 익숙한 아우디 한 대가 옆에 세워져 있었다.
  • 조수석 창문이 반쯤 내려갔다.
  • 서유은이 고개를 내밀고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 “도윤 오빠, 그냥 그만하자. 지수 지금 완전 화난 것 같은데…”
  • “안 돼!”
  • 박도윤이 뒤돌아 서유은한테 소리치더니, 다시 별장을 향해 고함쳤다.
  • “김지수! 너 안에 있는 거 알아!”
  • “너랑 이승우 도대체 무슨 사이야? 왜 그 사람 집에 왔냐?”
  • “그 인간이 어떤 놈인지 알아? 사람 잡아먹고 뼈 한 조각 남기지 않을 놈이야!”
  •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 이승우가 슬리퍼를 끌고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걸어나왔다.
  • 뒤에는 체격 좋은 경호원 두 명이 따랐다.
  • 박도윤은 이승우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멱살을 잡으려 했다.
  • 하지만 경호원들이 바로 가로막고 양팔을 꺾어 그를 보닛 위에 꽉 눌렀다.
  • “이승우! 김지수한테 뭐 했어?!”
  • 박도윤은 차가운 보닛에 볼을 붙인 채 버둥거렸다.
  • 이승우가 위압적으로 내려다봤다.
  • “박도윤, 한밤중에 남의 집에 무단침입이면 신고감이거든.”
  • “헛소리 하지마! 지수 데려와!”
  • “지수는 피곤해서 잠들었어.”
  • 이승우의 툭 내뱉은 한마디에 박도윤이 바로 폭발했다.
  • “잠을? 잠들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 “너희… 너희 뭐 한 거야?”
  • 이승우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 “남녀 단둘, 첫날밤이었는데… 뭐 했겠냐?”
  • “박도윤, 너야말로 제 정신이냐?”
  • “결혼식장에서 도망친 건 너였잖아. 신부를 거기다 버려두고.”
  • “이제 와서 무슨 순애보 코스프레야?”
  • 박도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난 사람을 구하러 간 거잖아! 유은이…”
  • “그녀가 왜?”
  • 이승우는 그의 말을 끊고, 조수석에 앉은 서유은 쪽으로 시선을 흘겼다.
  • “술 알레르기?”
  • “지금 보니 멀쩡해 보이는데? 널 따라 여기까지 바람 현장 잡으러 올 정도면.”
  • 서유은은 목을 움츠리고 이승우의 시선을 피했다.
  • 박도윤이 이를 갈았다.
  • “그래도 넌 틈타서 그런 거잖아! 지수는 날 사랑해. 그냥 나한테 화가 난 것뿐이야!”
  • “지수야! 나와! 네가 듣고 있는 거 알아!”
  • “지금 나랑 같이 가면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갈게!”
  • “내일 바로 다시 혼인신고하고, 결혼식도 다시 올리자!”
  • 나는 2층 창가에 서서 그 말을 듣는데, 그저 우습기만 했다.
  • 넘어가?
  • 잘못한 건 지가 맞으면서, 마치 나를 용서해 주는 척을 하네. 역겹게.
  • 이승우도 더는 못 참겠다는 얼굴이었다.
  • 그가 손을 휘적였다.
  • 경호원들이 박도윤을 놓았다.
  • 박도윤은 기회가 생긴 줄 알고 막 안으로 들이닥치려 했다.
  • 하지만 이승우가 그의 가슴팍을 거침없이 걷어찼다.
  • 박도윤은 비틀거리며 몇 걸음 물러나다가 주저앉았다.
  • 서유은이 비명을 지르며 차문을 벌컥 열고 내려와 그를 부축했다.
  • “도윤 오빠! 괜찮아?”
  • 그녀는 이승우를 흘겨보더니 금세 눈물을 그렁그렁했다.
  • “이승우 씨, 어떻게 사람을 때리세요?”
  • “우린 그냥 지수를 데리러 온 거예요.”
  • “아무리 지수가 박도윤이랑 싸웠다고 해도, 자기 망치면서 이승우 씨 따라가면 안 되죠.”
  • 그 말에 담긴 뜻은 더럽기 짝이 없었다.
  • 이승우가 싸늘하게 노려봤다.
  • “네가 뭔데?”
  • “여기가 네가 낄 자리야?”
  • 서유은은 말문이 막혀 얼굴이 새빨개졌다.
  • 박도윤은 가슴을 움켜쥔 채 일어나 이승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그래.”
  • “이승우, 두고 봐.”
  • “김지수, 너 후회하지 마!”
  • 그가 서유은을 끌고 차에 올랐다.
  • 차는 곧바로 시동이 걸리더니 방향을 틀어 떠나갔다.
  • 나는 테일램프가 밤 속으로 사라지는 걸 지켜봤다.
  • 가슴에 남아 있던 마지막 정까지 툭 끊어졌다.
  • 이승우가 방으로 돌아왔다.
  • 바깥의 찬 기운이 아직 온몸에 남아 있었다.
  • “다 봤어요?”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 봤어요.”
  • “속상했어요?”
  • “역겨울 뿐이에요.”
  • 이승우가 낮게 웃으며 휴대폰을 내 쪽으로 툭 던졌다.
  • “이거 좀 봐요. 더 역겨울걸.”
  • 나는 폰을 받았다.
  • 단체 채팅창이었다.
  • 박도윤이랑 서유은, 그리고 그들끼리만 어울리는 무리의 단체 채팅방.
  • 나는 그 방에 없었다.
  • 그 안에 영상이 하나 있었다.
  • 보낸 시간은 결혼식 시작 10분 전.
  • 썸네일 속에는 서유은이 술병을 들고 비틀거리며, 해맑게 웃는 얼굴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