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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 이번엔 치료를 거부하지 않았다.
  • 약을 가져오면 바로 먹고, 의사가 뭐라면 그냥 다 들었다.
  • 결혼한 뒤 2년 내내 강재우는 아이를 갖자고 닦달했다. 아이를 좋아한다나 뭐라나.
  • 난 원래 생리 불순이라 의사도 수도 없이 찾아가고 약도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다. 겨우겨우 임신했는데.
  • 그때부터 이미 불면증이 시작돼서 밤마다 한숨도 못 잤다.
  • 의사는 아이한테 좋지 않다고 먼저 감정부터 다스리라고 했다.
  • 그런데 난 그럴 수 없었다.
  • 아이만 생기면 강재우가 예전처럼 돌아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 결국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 엄마의 마지막 얼굴조차 못 봤다.
  • 하늘이 대놓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대로는 못 산다고.
  • 며칠 약을 먹으니 가슴을 막던 답답함이 좀 가셨다.
  • 더는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리지 않았다. 폰 꺼내서 아는 변호사한테 전화를 걸었다.
  • “이혼 합의서 하나 써줘요. 재산 분할은 법대로 진행하고요.”
  • 입원 마지막 이틀 동안, 나는 강재우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 그가 웬일로 바로 받았다. 나도 좀 놀랐다.
  • 영상통화로 넘어왔고, 배경은 우리 집 안방이었다. 그는 가운 차림에 머리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다.
  • 내 뒤의 병실이랑 환자복을 보더니 눈썹을 치켜올리고, 말투가 아주 비꼬였다.
  • “쇼 좀 그만해. 날 굴복시키려고 진짜 병원에까지 들어갔다고? 진짜 병 옮는 건 무섭지도 않아?”
  • 그가 옆으로 살짝 비키자, 뒤의 옷장 문이 덜 닫혀 있었고, 그 사이로 박하은의 상반신 알몸이 드러났다.
  • 옆에서 드레싱 갈아주던 간호사 아가씨가 못 봐주겠다 싶었는지 입을 열었다.
  • “선생님, 아내 분께서 임신 후 유ㅅ…”
  • 강재우는 뒷부분을 못 듣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말투가 순식간에 바뀌었고 급해서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 “뭐? 너 정말 임신했어? 언제 일이야?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 “거기 있어. 내가 하던 프로젝트 멈추고 바로 갈게. 절대 움직이지 마.”
  • 저 다급한 꼴을 보니, 전에 내가 꾀병 부린다던 사람이 그가 아닌 것 같았다.
  • 난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영상 끊었다.
  • 30분 뒤,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
  • 들어온 건 강재우가 아니라 박하은이었다.
  • 손에는 샤넬 쇼핑백을 들고 품에는 붉은 장미꽃 다발을 품은 채,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 "지아야, 재우 씨가 회사 급한 일 때문에 못 온대. 그래서 내가 먼저 너를 찾아온 거야."
  • 더 이상 연기할 필요도 없다 여긴 듯, 그녀는 곧 당당하게 명품 가방을 자랑했다.
  • "아, 이건 재우 씨가 나에게 준 기념일 선물. 생각해보니 넌 이런 선물 받아본 적도 없겠네. 갖고 싶으면 그냥 가져가도 돼. 난 없어도 상관없거든."
  • 그녀는 꽃을 침대 곁 탁자에 내려놓은 뒤, 일부러 고개를 젖혀 목에 남은 키스 자국을 드러냈다. 방금 뜨겁게 사랑을 나눴음을 대놓고 과시하는 모습이었다.
  • 난 눈을 감고 치밀어오르는 화를 꾹 눌렀다.
  • 그때, 박하은이 불쑥 다가와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우리 둘만 들으라고.
  • “그런데 윤지아, 너도 참 답이 없어. 강재우가 자립적이고 눈치 빠른 여자를 좋아하는 거 알면서, 왜 자꾸 일을 만들어?”
  • 그녀의 시선이 내 아랫배에 꽂혔다. 말투엔 조롱이 가득했다.
  • “아이 없어진 게 차라리 잘됐지. 너처럼 눈엣가시로 크면 어쩔 뻔했어.”
  •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 난 팔을 번쩍 들어 그녀의 뺨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 짜악-!
  • 그녀는 얼얼해진 볼을 감싸쥐고 금세 눈물을 뚝 떨어뜨렸다. 목소리는 한 옥타브 높아져서 억울함으로 꽉 차 있었다.
  • “윤지아, 재우 씨가 시간 안 내준다고 서운한 거 알아. 근데 그도 이 집을 위해서 그러는 거잖아.”
  • “그가 너한테 엄격한 건 다 너 잘되라고야. 네가 성장해서 나중에 그의 부담을 좀 덜어주면 서로에게 좋은 일이잖아?”
  • 그녀가 한 걸음 다가왔다. 눈물이 턱끝에 매달려 떨어질 듯 말 듯.
  • “지금 막 아이를 잃었으니 네 마음 이해해. 그렇다고 나한테 분풀이하면 안 되지.”
  • “이제 나도 네 투정 지친다. 재우 씨는 매일 그렇게 바쁜데, 너도 철 좀 들어야지 안 그래?”
  • “꺼져.”
  • 내 목소리는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 박하은이 갑자기 수액 안 꽂힌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난 반사적으로 뿌리치려 했다.
  • 그랬더니 내 힘을 이용해 뒤로 벌렁 넘어지며 침대 협탁에 세게 부딪혔다.
  • 순식간에 협탁 위의 물컵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 장미 다발도 바닥에 떨어져 꽃잎이 사방에 흩어졌다.
  •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범벅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 “윤지아, 난 널 걱정해서 보러 온 거야. 네가 유산해서 마음이 안 좋은 건 알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나한테 이래?”
  • 그때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