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 학교 경비팀이 오고 나서야 겨우 상황이 정리됐다.
- 경비원 둘이 나를 바닥에서 일으켜 세웠다. 한서아는 아직 울고 있었고, 강태준은 다른 경비원 둘에게 붙잡혀 있었다.
- 구경하던 학생들은 쫓겨났지만, 몇 명은 여전히 폰 들고 촬영하고 있었다.
- 경비팀장은 찌푸린 얼굴로 내 얼굴 한번, 한서아의 얼굴을 한번 훑었다.
- “일단 다들 사무실로 오세요.”
- 나는 학교 경비실 안쪽 작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 팀장이 앉으라고 했지만 나는 앉지 않았다. 책상 앞에 선 채였다.
- 한서아는 들어오면서도 눈물을 훔쳤다. 강태준은 뒤를 따라 들어오자마자 나를 노려봤다.
- 경비팀장이 책상을 탁 두드렸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저 사람들이 제가 한서아 씨를 성폭행했다고 몰아가는데,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에요!”
- “나 여자인데, 내가 어떻게 그녀를 성폭행해요?”
-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굳었다.
- 강태준이라는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굳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정신을 차렸다.
- 소리쳤다. “책임 피하려고 별 수를 다 쓰네? 그런 말도 안 되는 핑계까지 대? 부끄럽지도 않아??”
- 나는 올라오는 화를 참고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 지갑에서 신분증들을 꺼내 하나씩 책상 위에 탁탁 내려놨다.
- “운전면허증, 학생증. 여기 다 있어요. 직접 확인하세요.”
- 신분증들이 하얀 불빛 아래서 번들거렸다.
- 성별 칸에는 분명히 여성이라고 적혀 있었다.
- 사무실 안이 몇 초 동안 조용해졌다.
- 한서아의 울음소리도 잦아들었다.
- 그녀는 책상 위 신분증들을 뚫어지게 보더니 얼굴빛이 확 달라졌다.
- 경비팀장은 신분증을 그녀 앞으로 밀었다.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서하윤 씨, 여성 맞습니다.”
- 한서아는 운전면허증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 그러다 고개를 들고 이를 꽉 갈며 말했다.
- “이거 위조예요.”
- 목소리는 떨렸지만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줘 말했다.
- “저 사람 집 돈 많잖아요. 여권이든 운전면허증이든 건강보험카드든, 뭐든 마음만 먹으면 위조할 수 있잖아요.”
- 경비팀장이 찡그렸다. “하지만 이 신분증들이—”
- “제 뱃속 아이가 저 사람 아이 맞아요!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니까 미리 이런 가짜 증거까지 준비한 거라고요!”
- 갑자기 목소리가 확 커지더니 눈물이 또 쏟아졌다.
- 배를 움켜쥔 채 온몸을 심하게 떨었다.
- “내 배에 그 사람 아이가 있어요! 벌써 3개월이라고요! 너는 책임져야 해요!”
- 나는 그녀를 몇 초 동안 가만히 바라봤다.
- 그 순간, 진심으로 이 사람이 제정신이 아닌 건가 싶었다. 대화가 통할 리가 없었다.
- 혹시 진짜 미친 거 아냐?
- 그녀가 정상이 맞나, 나도 모르게 의심이 들었다.
- “나 여자라고. 내가 어떻게 너를 임신시켜?”
- 그녀가 잠깐 멈칫했다.
- “어쨌든 너야!”
- 그녀가 울부짖었다.
- “그날 밤 내가 똑똑히 봤어! 너 맞아! 내가 사람을 헷갈릴 리가 없어!”
- 옆에서 강태준이 거들었다.
- “맞아! 내 동생이 사람을 착각할 리가 없어! 이놈한테 속지 마!”
- 나는 더 이상 이 사람들과 말싸움을 이어갈 생각은 없었다.
- “제 신분증은 복사해서 보관하셔도 됩니다.” 나는 경비팀장에게 말했다. “조사 협조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전 훈련이 있어서, 여기서 더 시간 낭비할 수 없습니다.”
- 진짜 이 미친 사람들과는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
-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신분증들을 다시 챙겨 지갑에 넣었다.
- 한서아가 성큼 한 발 내디뎠다. “너 못 가!”
- “내가 왜 못 가?” 내가 그녀를 봤다.
- “넌 아직 나한테 책임 안 졌잖아!”
- “책임?” 내가 말했다. “내가 어떻게 널 임신시켰는데? 네가 말해봐. 내가 대체 어떻게 너를 임신시켰냐고.”
- 그녀는 입만 뻥긋하고 말을 못 했다.
- 나는 그녀를 비집고 지나가 사무실 문을 확 열고 나왔다.
- 뒤에서 그녀의 울부짖음이 날아왔다. “너 절대 가만 안 둬! 넌 무조건 책임져!”
- 복도에 그녀 목소리만 꽉 찼다. 날카롭고 귀를 긁었다.
- 하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 계단을 내려가는데, 밤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상처가 따갑게 아려왔다.
- 나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고 체육관 쪽으로 걸었다.
- 그녀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 제정신이 아니고, 사람을 잘못 봤으면서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꼴.
- 어차피 내 성별은 이미 증명했다. 이제 와서 그녀가 뭘 더 할 수 있겠어?
- 훈련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더는 생각도 안 했다.
- 근데 그날 밤, 더 심각한 일이 터질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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