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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 [한연희 시점.]
  • 나는 싸늘하게 한 번 웃은 뒤 도민지의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쥐고는 바닥에 짓눌렀다.
  • “도민지, 너 그러고도 인간이야? 양심이란 게 남아있긴 해?”
  • 내가 계속 움직이기도 전에, 거센 힘이 날 확 밀쳐냈다.
  • “민지 건드리면 가만 안 둬!”
  • 강재호가 애틋한 얼굴로 도민지를 부축하고는, 나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 “한연희, 오늘 벌써 두 번째야!”
  • 강재호가 내 목덜미에 손을 올리고는 천천히 아래로 쓸어내렸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 “내가 너를 ‘자기야’라고 한 번 불렀다고 해서, 함부로 선 넘는 것까지 봐준다는 뜻은 아니야...”
  • 찰싹!
  • 나는 강재호의 손을 확 뿌리친 뒤 그대로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 “강재호, 잊었어? 우리 이미 파혼했어!”
  • 화가 난 어조로 말을 이었다.
  • “그리고 나 지금 새 남자친구도 있어.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를 ‘자기야’라고 부르는데?”
  • 강재호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 그때 주변에서 피식하는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 “찌질이 주제 새 남친이 생겼다고? 예전에 네가 강재호한테 어떻게 빌붙었는지 다들 모르는 줄 알아?”
  • 강재호의 친구가 어느새 내 옆까지 와서 AI 합성 사진을 집어 들고 코웃음 쳤다.
  • “강재호 대신 계약 따오겠다고 협력사 접대 술자리에 나가서, 위출혈 날 때까지 술 퍼마신 거, 모를 줄 알아?”
  • 도민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비웃었다.
  • “한연희, 위출혈 어땠어? 많이 아프지?”
  • 나는 그들의 조롱 따위 무시한 채 휴대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화면엔 경찰 번호를 눌렀다.
  • “위출혈은 너희들과 상관없어. 다만 감방이 어떤 건지는 알게 될 거야. 난 내가 한 말은 어떻게든 지켜. 그러니까 각오해.”
  • “네가 감히?”
  • 도민지가 바로 내 앞으로 다가와 내 폰을 낚아채려 했다.
  • 방심한 틈에 나는 도민지 어깨에 떠밀려 유리 가장자리에 부딪혔다.
  •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누가 내 어깨를 세게 밀쳤다.
  • “아악!”
  • 순간 유리가 산산이 깨지면서 건물 전체에 비명이 들끓었다.
  •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 힘이 한껏 실려 있는 손이 내 팔을 꽉 붙잡았다.
  • 나는 가장자리에 매달린 채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봤다. 강재호였다.
  • 그의 표정엔 겁먹은 모습과 뒤늦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 하지만 내 시선을 느끼자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만 살짝 지었다.
  • “잡았다.”
  • 그 한마디 말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회사 옥상에서, 유산을 두고 난리 치던 친척들에게 창가까지 몰렸던 그날이 떠올랐다.
  • 그때 강재호는 깜깜한 방의 한 줄기 빛처럼 내 손을 붙잡고 말했다.
  • “잡았다.”
  • 그날 이후 난 강재호의 큰 그림자 아래 여린 꽃처럼 보호받으며 살았다.
  • 갑작스런 사고에 할 말을 잃은 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손을 더 꽉 잡았다.
  • 당연히 바로 나를 끌어올릴 줄 알았지만 그는 미소를 머금은 채 물었다.
  • “민지가 해외 연수를 가야 해, 그래서 평판에 흠집이 나면 안 되는 거 알지?”
  •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했지만, 한 글자 한 글자 모두 독 묻은 칼처럼 내 살갗을 베는 듯했다,
  • “민지한테 경찰 언급하면서 물고 늘어지지 마, 알았지? 안 그러면, 끝까지 너를 붙잡아 있을지 장담 못 해...”
  • 여기서 강재호의 말을 안 받아들이면... 나는 ‘실수’로 죽는 꼴이 될 수밖에 없었다.
  •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거칠게 날 끌어올린 강재호는 시큰둥한 얼굴로 손의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 “재호야...”
  • 강재호의 모습을 본 도민지는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뒀던 집착을 그대로 드러냈다. 어찌나 감동받았는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았다.
  • 나는 멍한 얼굴로 강재호를 바라봤다.
  • 조금 전, 티끌만 한 변수가 있었어도 나는 이 높은 고층에서 떨어져 죽었을 것이다,
  • 그런데 강재호는 이런 긴박한 순간에도 내 목숨 따위 안중에도 없이 협박부터 했다!
  • 강재호와 도민지는 서로를 바라보며 연민이 가득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마치 내가 갈라놓은 비련의 연인이라도 되는 듯...
  • 하지만 강재호와 내 약혼은, 분명 그가 무릎 꿇다시피 애원해서 성사된 거였다.
  • 강씨 가문에서 나를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강재호는 가문의 규율까지 대놓고 어겼다. 그것 때문에 하마터면 다리까지 부러질 뻔했지만 그때의 모든 일들은 강재호는 말끔히 잊은 듯했다.
  • 이 사람이 내가 지난 5년이라는 청춘을 바쳐 사랑한 남자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 당장이라도 침대로 달려가 끌어안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운 듯한 두 사람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 한심한 건 결국 나였다. 내 스스로가 너무 바보 같아 할 말이 없었다.
  • 강재호는 달래듯 내 손을 꽉 잡았다.
  • “그래, 이렇게 말 잘 들어야 우리 착한 연희 답지...”
  • 하지만 강재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단칼에 그의 말을 끊었다.
  • “그래, 신고 안 할게. 하지만 내가 안 한다고 해서 남들도 안 한다는 보장은 없어. 쇼핑몰에 CCTV가 얼마나 많은데, 네가 한 짓, 사각지대 없이 선명하게 찍혔어.”
  • “네 그 돼지 같은 머리통 좀 잘 굴려 봐, 강재호. 도민지가 날 민 걸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봤는데 처벌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 안색이 잔뜩 어두워진 강재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눈빛에는 위험한 독기가 다분히 배어 있었다.
  • “네가 이렇게 독한 줄 내가 전에는 왜 몰랐을까? 그동안 가면 쓰는 거 안 힘들었어? 정말 재주 하나는 끝내주는구나!”
  • 나는 조금 전 사고로 탈구된 손을 꽉 움켜쥐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힐 정도로 아팠다,
  • 발목도 삐끗하며 골절된 것 같았다. 너무 아파 도저히 일어설 수 없어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 그래도 절대 굴복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 “가면 쓴 건 너야! 너희 둘이 내연 관계였다는 걸 진작 알았으면, 절대 이 결혼 안 했어!”
  • “너희 같은 천박한 것들은 결국 응당한 벌을 받게 할 거야!”
  • 사람들 앞에서 쓰고 있던 가면이 벗겨지자, 강재호는 코웃음을 치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 “그래?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좋게 말할 때 안 듣는다면 나도 더는 봐줄 수 없지.”
  • 강재호 눈빛엔 잔혹함과 냉기, 그리고 살기가 가득했다.
  • 몸을 돌려 도민지를 다정하게 끌어안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 “민지야, 예전에 스트립쇼 보고 싶다고 했지? 한연희더러 네 앞에서 춤추라고 할까, 응?”
  • 도민지가 입을 삐죽였다.
  • “쟤가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춤을 추겠어?”
  • 강재호가 도민지의 코를 톡 건드렸다.
  • “바보, 그냥 우리가 직접 벗기면 되잖아? 우리 공주님 기분 풀릴 때까지, 안 그래?”
  • “그건 너무 거칠잖아.”
  • 도민지가 손가락으로 강재호의 가슴팍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말했다.
  • “차 갖고 와서 더 재밌는 게임 하는 거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