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약혼자를 대신해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갔다. 그는 곧 나를 구해주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는 돌아서자마자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출소한 날, 그는 나를 별장에 가두고 밤마다 짓밟았다.
그 여자를 위해 내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그는 몰랐을 것이다. 나는 감옥에서 이미 그를 위한 성대한 심판을 준비해 뒀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이, 그의 파멸을 알리는 첫 번째 종소리가 울릴 것이다.
……
“서보라, 얘기 좀 해.”
등 뒤에서 낮게 가라앉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캐리어를 끌던 손이 멈춰 섰다.
천천히 몸을 돌렸다. 검은색 마이바흐 옆에 기대 선 남자.
강한준. 내 전 약혼자이자, 내 손목에 직접 수갑을 채워 감옥으로 보낸 장본인.
그는 값비싼 맞춤 수트를 입고 있었고, 금테 안경 너머의 눈빛은 속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었다.
3년 전 내가 유죄를 선고받을 때, 그가 내게 던졌던 그 마지막 눈빛처럼.
“우리 사이에 더 무슨 할 말이 남았지?” 나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타.” 그는 대답 대신 뒷좌석 문을 열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다 픽 웃었다. “한준 씨, 나 오늘 막 출소했거든. 당신 차를 타고 또 다른 감옥으로 가고 싶진 않은데.”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았다.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위압적인 압박감이 훅 끼쳐 와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가 내 손목을 움켜쥐었다. 뼈가 으스러질 듯한 악력이었다.
“서보라, 잊지 마. 네 아버지 회사가 아직 내 손에 있다는 걸.”
그가 내 귀에 입술을 바짝 대고 낮게 속삭였다. “노년에 길바닥에 나앉게 하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굴어.”
아버지. 내 마음속 가장 연약하고도 치명적인 약점.
“...그래.”
차는 거칠게 질주했고, 결국 산꼭대기 저택 앞에 멈췄다.
원래 우리 신혼집으로 내가 골랐던 곳. 지금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
“오늘부터 넌 여기서 살아.”
강한준이 나를 현관 안으로 밀어 넣었다.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내 허락 없이는 나갈 생각 마.”
“왜?” 나는 그를 빤히 바라봤다. “강한준, 너 산유라랑 결혼했잖아. 그런데 왜 날 또 가두는 건데?”
“왜냐고?”
그가 웃었다. 잔혹함이 잔뜩 배어 있는 웃음이었다. “유라 몸이 안 좋아. 지난 3년 동안 널 걱정하느라 정신적으로 많이 무너졌지. 서보라, 그건 네가 그녀에게 진 빚이야. 여기서 그녀를 위해 기도하며 속죄해.”
그녀를 위해 속죄하라니. 가당치도 않은 소리.
잘생겼지만 서늘한 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문득, 지난 3년의 감옥살이가 오히려 진정한 해방이었을지도 모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부터 그에 대한 사랑은 완전히 식어 사라졌고, 남은 건 세상을 뒤덮을 만큼 거대한 증오뿐이었으니까.
나는 저택 2층 침실에 갇혔다.
창문엔 쇠창살이 달려 있었고, 문은 특수 비밀번호로 잠겨 있었다. 오직 강한준만이 열 수 있었다.
그는 매일 시간을 딱 맞춰 나타났다. 정교한 찬합 상자를 들고서. 안에는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건강식이 들어 있었다.
“유라가 요즘 입맛이 없대. 의사가 안정이 필요하대”
그가 식판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너도 같이 담백하게 먹어.”
나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왜, 입에 안 맞아?” 그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아니면 교도소 밥이 그리운 건가?”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강한준, 이 방에서 유난히 진동하는 냄새, 안 느껴져?”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무의식적으로 코를 킁킁거렸다.
“무슨 냄새?”
“썩은 내.” 내가 차갑게 뱉었다. “네 심장처럼. 속부터 겉까지 까맣게 문드러진 그 썩은 내 말이야.”
“서보라!” 그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내 턱을 움켜쥐었다. 순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통증이 밀려왔다.
“네가 지금 무슨 배짱으로 나한테 대드는 거니?”
그의 눈동자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내가 널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망가뜨릴 방법이 백 가지는 있다는 거, 몰라?”
“알지.” 나는 그를 보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지만, 입가에는 오히려 더 환한 미소가 번졌다.
“네가 그때 선유라 대신 내게 죄를 뒤집어씌웠던 것처럼. 너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거... 아주 잘 알고 말고.”
‘대신 죄를 뒤집어씌우다’라는 말이 독침처럼 그의 심장에 깊숙이 박혔다.
그의 얼굴에서 서슬 퍼런 기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놓고 티가 날 정도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마치 뜨거운 불덩이라도 만진 듯 홱 손을 놓더니, 두 발자국이나 물러섰다.
“너… 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헛소리라고?” 나는 탁자를 짚고 일어나 한 걸음, 한 걸음 그에게 다가갔다.
“그 조작된 횡령 증거들. 거기 서명, 정말 내가 한 게 맞아? 그 은행 계좌, 진짜 내가 만든 거냐고? 강한준, 너 밤중에 잠에서 깰 때 무섭지 않아? 내가 감옥에서 죽어 악귀가 되어 너를 찾아오고, 선유라한테도 목숨값을 받으러 올까 봐...정말 단 한 번도 두렵지 않느냐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