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 변호사에게 합의서를 맡기고 난 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겨우 잠이 들었다. 하지만,
-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어제까지만 해도 차분했던 우리 집이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뒤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 벽마다 차도준과 서희주의 사진이 가득했다.
- 정장 차림의 다정한 사진, 여행지에서 찍은 스냅 노골적인 비키니 차림, 심지어 두 사람이 뒤엉켜 관계를 맺는 사진까지.
- 별장 전체가 그들의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 어제밤 겨우 가라앉혔던 심장이 다시 쿵쾅거리며 터질 듯이 조여왔다.
- 분명 그에게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고 다짐했건만, 눈앞의 광경을 마주하니 억울함과 슬픔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 차도준과 결혼한 지 6년. 우리 부부의 사진은 단 한 장뿐이다.
- 그것마저 결혼식 당일, 내가 애원하고 또 애원해서야 겨우 찍을 수 있었던 사진이었다. 당시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내뱉었었다.
- “지안아, 너도 알잖아, 나 사진 찍는 거 질색인 거.”
- 그런데 지금 그는 다른 여자와 수십 장의 사진을 찍고,
- 심지어 나와 함께 쓰는침실까지 그 사진들을 채워넣었다. 특히 침대 머리맡에 걸린 커다란 사진 속에서 그들은 노골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었다.
- 서희주가 나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 “지안아, 우리 사진 여기 걸어놨는데, 설마 화나는 건 아니지?”
-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차도준이 말을 가로막았다.
- “걔가 화를 왜 내? 하루 종일 죽은 사람처럼 입도 뻥긋 안 하는 애가”
- 나는 멍하니 차도준을 바라보았다.
- 자신의 망언을 뒤늦게 깨달은 그가 내 담담한 눈빛과 마주치자, 그의 얼굴 위로 찰나의 균열이 일었다. 분명 그는 내가 울거나 화를 내며 매달리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는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 나는 아무 대꾸 없이 그를 지나쳐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했다. 그때, 내 움직임을 쫓던 서희주가 일부러 내 앞에서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 “도준 씨, 아.....! 내 발목 꺾인 것 같아.”
- 차도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그가 그토록 초조하고 애타는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보았다.
- 그는 망설임 없이 서희주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들고는 급히 밖으로 나갔다.
- 그들이 떠난 뒤, 나는 텅 빈 별장에 남아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져갈 것은 많지 않았다. 오랜 세월 쌓아온 내 인생의 흔적들이라고는 고작 작은 가방 하나에 다 들어갔다.
- 그때였다.별장의 대문이 굉음과 함께 부서질 듯 열렸다. 들이닥친 차도준은 내 침대 머리채를 잡아채 그대로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핏발이 선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 “서희주 가슴을 도려내려고 사람을 사? 네가 감히?”
- 나는 억울함을 호소할 틈도 없이 병실에 끌려갔다. 병실에서 들어서자마자 서희주가 차도준의 품에 얼굴을 파묻은 채 쉼 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소름 끼칠 정도로 완벽한 연기였다.
- “저 여자야! 저 여자가 질투심에 눈이 멀어서 나를 납치하고 해쳤어!!”
- 그녀는 차도준의 팔을 옥죄며 울먹였다.
- “도준 씨, 내 가슴에 흉터가 남을 거래. 범인들이 내 가슴을 다 잘라버리겠다고 했단 말이야. 너무 무서워….”
-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 내 가장 깊은 아픈 상처를 차도준이 서희주에게 발설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끔찍했다. 나를 향한 내 비통한 시선에 차도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의 눈동자가 아주 짧은 순간 미세하게 흔들렸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남자가 엉엉 울며 입을 열었다.
- “전부 지안... 아니, 이 여자가 시키는 대로 한 겁니다! 돈을 주면서 서희주 씨 가슴을 도려내라고 했어요. 시간이 없으면 흉터라도 잔뜩 남기라고 협박까지 했고요.”
- 남자의 횡설수설에 차도준의 표정은 살인귀처럼 굳어갔다. 나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만 조사해 보면 안다. 내가 어젯밤 단 한 발자국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외부와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는 걸.
- 하지만 차도준은 조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서희주를 품에 안고, 나를 향해 뼛속까지 시린 혐오감을 내뱉었다.
- “지안아, 대체 몇 년을 곁에 두고도 네가 정신을 못 차리는군.”
- “역시 넌 네 분수를 끝까지 모르는구나.”
- 그가 손을 휘젓자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짐승처럼 달려들어 나를 끌고 나갔다. 문밖으로 내동댕이쳐지기 직전, 차도준의 서늘한 목소리가 내 등에 비수처럼 꽂혔다.
- “다들 똑똑히 봐. 남의 가슴을 도려내려던 년이, 제 가슴은 과연 어떤 꼴인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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