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교통사고
- 큰 저택에 쾅 하고 문 닫히는 소리만 길게 울렸다.
- 그 순간, 시간이 끝없이 길게 늘어지는 느낌이었지만, 금세 테이프 감기처럼 미친 속도로 흘러갔다.
- 돌아서 2층으로 올라가, 안방 옆 게스트 룸으로 들어갔다.
- 이 방에 꽤 오랜 시간 혼자 머물렀다.
- 욕실 거울엔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무표정한 내 얼굴이 비쳤다.
- 그날 밤, 나는 이상할 정도로 깊게 잠들었다.
- 다음 날, 평소처럼 일어나 경제 뉴스를 훑었다.
- 밴스 그룹 주가는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 그때 갑자기 폰이 울렸다.
- 모르는 번호였지만, 내가 있는 도시와 같아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누구시죠?”
- “이아린 씨 맞으신가요? 여긴 재일 종합병원입니다.”
-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남편분이 안지훈 씨 맞으시죠? 오늘 오후 4시 20분쯤, 순환 고속도로 진입로 근처에서 큰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현재 병원에서 응급치료 중이며, 상태가 매우 위독합니다. 바로 오셔야 합니다.”
- “네, 바로 가겠습니다.”
- 전화를 끊고 몇 초간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먹으로 툭툭 쳤다.
- 지난 수년간 쌓인 정과 뼛속까지 새겨진 기억들이, 예전에 그를 버렸던 여자 때문에 산산이 부서졌다.
- 우습고 한심했고, 허탈하기까지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병원 응급실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 회사 임원 두 명, 그리고 안지훈의 비서 하이석까지...
- 그들의 얼굴엔 충격과 다급함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 “사모님!”
- 하이석이 나를 보자마자 급히 다가왔다.
- “사모님... 대표님이...”
- 하지만 나는 손을 들어 하이석이 하려던 말을 막았다.
- 그리고 빨간불이 켜진 응급실 문만 뚫어지게 바라봤다.
- “의사는 뭐라던가요?”
- “아직 치료 중이라고 합니다. 머리 손상이 심하고, 장기도 여러 군데 파열돼 출혈이 많다고... 가망이 없을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 하이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꾹 다물고 있었다.
- 얼굴엔 상황에 맞는 깊은 비통함과 무력감이 스쳤다.
- 복도 벤치에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포개고 조용히 기다렸다.
- 몇 시간 뒤, 응급실 불이 드디어 꺼졌다.
- 담당 의사가 잔뜩 지친 얼굴로 나와, 마스크를 벗고 우리를 바라봤다.
- “안지훈 씨 보호자분 계신가요?”
- 나는 벌떡 일어섰다.
- “저예요. 제가 안지훈 아내입니다.”
- 의사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엔 무거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 “보호자분,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의사로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바이털은 일단 안정되었지만, 심각한 뇌 손상과 장시간 산소 공급 부족으로 깊은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깨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식물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 ‘식물인간...’
- 이 네 글자가 마치 차가운 돌멩이처럼 복도 한가운데 떨어지자, 주위에 조용한 파장이 일렁였다.
- 하이석과 임원들은 숨을 길게 들이켰고, 누군가는 벌써 훌쩍이기 시작했다.
- 한 걸음 앞으로 나선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 귀에는 선명하게 들렸다.
- “의사 선생님, 얼마가 들든 무슨 방법을 쓰든 상관없으니까, 제발 살려만 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 그리고...”
- 여기까지 말한 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옆에 서 있는 하이석을 향해 돌아섰다.
- “하 비서, 서무열 변호사와 부사장에게 바로 연락해서 상황 보고하고 회사 공식 사이트에 공지 올려요. 후임자가 정해지기 전까지 회사 일은 부사장이 임시 맡는 걸로요. 중요한 결정은 반드시 내 결재를 거치고. 바로 가서, 지금 당장 통보하세요!”
- 멍해 있던 하이석은 금세 정신을 차렸다.
- “네, 사모님. 지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 나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온몸에 호스를 꽂은 안지훈을 중환자실로 밀고 가는 걸 지켜봤다.
- 잿빛이 된 안지훈 얼굴은 핏기조차 없었다.
- 어젯밤, 이혼서류에 서명하라며 오만하게 몰아붙이던 그 남자와는 완전히 딴사람이었다.
- 나는 병상 침대 뒤를 따라 한 발 한 발 중환자실로 걸어갔다.
- 간호사가 문을 열고, 병상 침대가 막 들어가려는 그 순간, 나는 몸을 숙여 안지훈의 귓가에 바짝 붙었다.
- 그러고는 둘만 들을 수 있을 만한, 가늘지만 칼바람처럼 날카롭고 차가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 “봐, 내가 말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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