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 다음 날, 장 좀 보고 방에 들어오자마자 이유라가 내 침대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 방 안이 죄다 헤집혀 있었다.
- 게다가 양아버지가 내게 남겨준 군번줄이 그녀 목에 걸려 덜렁거리고 있었다.
- 내가 들어오자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 "언니, 그냥 구경만 했어."
- "이거 예뻐 보여서 잠깐 가지고 놀았어. 괜찮지?"
- 말을 하면서도 군번줄을 휙휙 흔들었다.
- 난 이유라 목에 걸린 군번줄에 시선이 박혔다. 양아버지가 거의 유일하게 내게 남겨준 유품이었다.
- 성큼 다가가 손을 뻗어 빼앗아 오려는데,
- 이유라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쏙 빠졌다.
- "언니, 뭐 하는 거야? 그러지 마…"
- 말하면서 자꾸 뒤로 물러나다가 의자에 발이 걸려, 두툼한 카펫에 그대로 꽝 하고 넘어졌다.
- 비명이 방을 찢었다.
- 마침 문간에 나타난 최로한이 나를 확 밀쳐내고 이유라에게 달려갔다.
- 난 방심한 탓에 허리 뒤를 책상 모서리에 세게 부딪쳤고, 눈앞이 캄 해졌다.
- 주먹이 절로 꽉 쥐어졌다.
- "이세린."
- 우는 이유라를 끌어안은 그의 눈에 분노가 치솟았다.
- "고작 쇳조각 하나 때문에, 네 동생을 때리다니."
- "죽은 사람 유품을 빌미로 불만이랑 화를 푸는 거야? 역겹다. 정말."
- 최로한이 사정도 안 듣고 퍼붓자, 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 난 그대로 주먹을 올려 한 대 갈겼다.
- 그는 허리를 접듯 숙이며, 아픈지 말도 못 했다.
- 이유라는 놀라서 울음소리마저 뚝 그쳤다.
- 난 최로한을 빙 돌아 이유라 목에서 군번줄 목걸이를 확 잡아당겨 떼어냈다.
- 체인이 그녀 목살을 스치며 살짝 긁혀 피가 맺혔다.
- "아! 내 목! 로한아, 나 좀 도와줘!"
- 이유라는 벌겋게 오른 목을 부여잡고 울었다.
- 최로한이 몸을 일으켜 나를 노려봤다. 아파서인지 입술이 일자로 굳었다.
- "너, 이런 짓은 언제부터 배운 거지?"
- 난 군번줄을 손에 꽉 쥔 채, 허리로 번져오는 통증을 참으며 말했다.
- "우리가 몇 년을 알고 지냈는데, 너는 몰랐잖아."
- "유라가 딸기케이크 좋아하고, 하얀 장미 좋아하고,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한다는 건 알면서."
- "난 뭘 좋아하고, 내가 뭘 할 줄 아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까."
- 난 전술 가방을 어깨에 멨다.
- "최로한, 네 유라나 잘 단속해. 다시는 나 건드리지 마."
- "다음엔 목걸이만 잡아당기고 끝나지 않을 거거든."
- 그렇게 말하고 난 둘을 그대로 밀어내 문밖으로 내쫓았다.
- 방 안이 드디어 고요해졌다.
-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 페라리 집안 쪽에서 만남을 요청하는 메시지였다.
- 잠깐 고민하다가, 만나겠다고 답했다.
- 어차피 이탈리아로 갈 거라면, 미리 상대를 알아두는 게 좋지.
- 다음 날, 난 페라리 가문 집사를 만났다.
- 집사는 예순이 훌쩍 넘은 노인이었고, 검은 양복에 허리는 꼿꼿했다.
- 손엔 굳은살이 두텁게 박여 있었다.
- 날 보자 그는 고개를 약간 숙였다.
- "안녕하세요, 이세린 양. 저는 페라리 씨의 집사 에도아르도입니다."
- "전에 통화로 인사드렸죠."
- "안녕하세요, 집사님."
- 집사님이 서류 한 묶음을 내 앞으로 밀었다.
- "이게 혼전계약서입니다. 페라리 씨 말씀이, 원하시는 조건이 있으면 뭐든 말씀하시래요."
- 난 서류를 훑어봤다. 조항들이 내게 꽤 유리했다.
- 심지어 결혼 후에 내가 이혼을 원하면, 페라리 가문이 유로화로 위자료 한 몫과 호화 빌라 한 채를 준다고 명시돼 있었다.
- 난 미간을 올렸다.
- 노아 페라리는 차갑고 무자비해서 누구한테도 봐주지 않는다고 했다.
- 그런데 이런 느슨한 혼전계약이라니.
- "왜죠?"
- 나도 모르게 물었다.
- 집사님이 미묘하게 웃었다.
- "페라리 씨 말씀이, 이탈리아에 오시면 알게 될 거라고 하시네요."
- "알겠어요, 전 문제 없어요."
- 계약서를 다 읽고, 난 바로 맨 끝에 사인했다.
- 집사님이 서류를 챙겼다.
- "이틀 뒤, 페라리 가문의 전용기가 모시러 올 겁니다."
-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 출국 이틀 전, 난 이현호에게서 친엄마가 남긴 유산을 넘겨받았다.
- 그리고 양아버지가 예전에 짜준 훈련 계획표대로 운동을 시작했다.
-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러닝하고, 그다음 격투 훈련. 오후엔 사격장에 가서 총을 다뤘다.
- 일주일이 지나자, 체력이 꽤 돌아왔다.
- 그날 훈련을 마치고 집에 오니, 아버지가 이유라를 위해 생일 파티를 열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 이유라가 내 방에서 나왔다.
- 고급 맞춤 드레스를 입고 거실 한가운데 서 있었고, 정말 예뻤다.
- 반면 난 방금 훈련을 끝내고 와서, 얇은 운동 재킷 하나 걸친 꼴이었다. 그래서 더 광대처럼 대비됐다.
- 이유라랑 친한 몇몇 친구들은 내 땀 냄새를 맡자, 얼굴에 싫증을 대놓고 드러냈다.
- "유라가 며칠 뒤면 이탈리아로 가는데, 언니라는 사람이 생일 파티 따위는 안중에도 없네. 이 냄새로 나타난 거 보니 일부러 그런 거지."
- "뭐 그럴 만도 하지. 원래 서민 동네에서 자랐다며? 우리 같은 상류층 예의는 모르겠지 뭐."
- "내가 보기엔 겁쟁이에 자기 동생 먼 데로 시집보내려고 일부러 그런 거야. 그런 인간이 가족을 챙기긴 하겠니."
- 난 저 멍청한 소리들 상대하기 싫어, 말없이 곧장 계단을 올랐다.
- 근데 내가 무시하고 가만있으니까, 걔들 눈엔 그게 겁먹고 도망치는 걸로 보였나 보다.
- 더 대놓고 도가 지나쳤다.
- "이세린 씨, 왜 숨어? 양심에 찔리니까 이유라를 못 마주보는 거지?"
- "역시 가난한 인간들은 매정해. 네 엄마랑 양아버지가 네가 이렇게 차갑고 독한 거 알면, 분해서 잠도 못 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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