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 수화기 너머로 3초간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 이내, 나직하고 짙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주소."
- "SK 시그니처 호텔."
- "10분 안에 가지. 기다려."
- 통화가 끊겼다.
- 연회장 전체에 찬물이 끼얹어진 듯 지독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 하객들 모두가 미친 사람을 보듯 경악 어린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성윤재가 누구인가.
- RM 코퍼레이션의 무기 밀매선을 쥐고 흔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살벌한 포식자 아니던가.
- 백태오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다가 이내 붉으락푸르락하게 달아올랐다.
- 당장이라도 나를 씹어 먹을 듯 살벌한 눈빛이 날 향해 꽂혔다.
- "임하린. 너 아주 간덩이가 부었구나."
- "고작 내 질투 한 번 유발해 보겠다고 감히 그딴 거짓말을 지껄여?"
- 그는 내 말을 티끌만큼도 믿지 않았다.
- 놈의 오만한 머릿속에 나는 평생 목숨까지 다 바쳐 자길 짝사랑할 호구일 뿐이니까. 그런 내가 돌아서서 철천지원수인 성윤재와 결혼을 한다니, 콧방귀도 안 나올 소리겠지.
- "네 배 속에 들어앉은 건 내 핏줄이야!"
- "성윤재가 미쳤다고 내가 쓰다 버린 쓰레기를 주워가?"
- 예전에는 저 오만함이 카리스마인 줄 알았건만, 이제 보니 그저 구제 불능의 멍청함일 뿐이었다.
- 나는 휴대폰을 챙겨 넣으며 싸늘한 눈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 "믿든 말든 그건 네 사정이고."
- "이제 그만, 비켜."
- 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 "잡아!"
- 백태오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보디가드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거대한 장막을 치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나와 사선을 넘나들며 목숨을 나눴던 부하들이었다.
- 지금은 하나같이 안면을 싹 바꾼 채 나를 적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 "하린아, 애들 곤란하게 만들지 마라."
- 경호팀장인 한태수가 굳은 표정으로 나직하게 경고했다.
- 나는 본능적으로 배를 감싸 안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 "비켜."
- 나는 다시 한번 똑똑히 경고했다.
- "다치기 싫으면."
- "배까지 부른 몸으로 대체 몇 놈이나 상대하겠다고?"
- 어느새 등 뒤로 다가온 백태오가 비아냥거렸다.
- "억지 그만 부리고 얌전히 무릎 꿇고 빌어. 그럼 이번 일은 덮어줄 테니까."
- 바로 그때, 옆에 있던 백유라가 갑자기 힘이 풀린 듯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 가슴을 부여잡은 그녀의 미간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 "오빠… 나, 가슴이 너무 아파…."
- "유라야, 왜 그래!"
- 백태오는 사색이 되어 몸을 낮추고는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 "어디가 아픈 거야?"
- 백유라는 기력이 쇠한 척 나를 가리켰다. 한없이 가련해 보이는 눈동자 속에는 짙은 조소가 숨어 있었다.
- "아까 언니가 쏜 총소리에… 너무 놀랐나 봐…"
-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나 이러다 잘못되는 거 아니야…?"
- 저 가증스러운 연기력이라니, 여우주연상이라도 안겨줘야 할 판이다.
- 화장실에서 더러운 짓을 벌이며 교성을 지를 땐 언제고, 고작 총소리 한 번에 죽는소리를 해?
- 백태오가 번쩍 고개를 들어 나를 노려보았다. 안광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매서웠다.
- "임하린! 기어이 네가 다 망쳐 놨지!"
- 그가 몸을 일으키더니 단숨에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 짝-!
- 날카로운 파열음이 귓전을 때렸다.
- 매서운 손아귀가 내 뺨을 무자비하게 후려친 것이다.
- 고개가 휙 돌아갔다. 귓가에서 이명이 울렸고 뺨은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 그는 거칠게 내 멱살을 틀어쥐더니, 그대로 나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 "경고하는데, 유라 털끝 하나라도 잘못되면 네 배 속의 핏덩이부터 당장 찢어 발겨버릴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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