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 “꺼줘요.”
- 내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나는 이를 악문 채 겨우 그 한마디를 짜냈다.
- 이승우는 영상을 일시정지했다.
- 화면은 두 사람이 뒤엉켜 붙어 있는 장면에서 멈췄다.
- “고작 이 정도 뿐인데 벌써 못 보겠어요?”
- 이승우는 폰을 거두며 차분히 말했다.
- “복수하려면 마음부터 단단히 먹어야죠.”
- “지수 씨의 지난 7년은 개나 줘버린 셈이지만, 그래도 자신이 개가 될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찬물로 얼굴을 세차게 끼얹었다.
- 차가운 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자 복잡하던 머릿속이 조금은 맑아졌다.
- “알아요.”
- “내일 가서 짐 정리하고, 이혼 계약서도 보낼 거에요.”
- 이승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 “같이 갈게요.”
- “아니요, 필요 없어요.”
- 나는 단호하게 잘라 거절했다.
- “이건 저랑 박도윤 사이의 일이라. 스스로 끝내고 싶어요.”
- 이승우는 몇 초 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더는 고집하지 않았다.
- “알겠어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줘요.”
- 그날 밤, 나는 눈을 뜬 채 새벽까지 버텼다.
- 다음 날 아침, 나는 택시를 타고 박도윤과 같이 산 별장으로 돌아갔다.
- 문을 여는 순간, 술 냄새가 가득 밀려왔다.
- 거실은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 소파 위엔 박도윤의 코트가 대충 던져져 있었고, 바닥엔 하이힐이 두 짝 굴러다니고 있었다.
- 서유은의 하이힐이었다.
- 안방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 나는 다가가서 문을 밀었다.
- 침대 위엔 두 사람.
- 박도윤은 한쪽에 누워 있었고, 서유은은 그에게 착 붙어 있었다.
- 둘 다 얇은 이불 한 장만 걸친 채, 파자마를 입고 있어도, 누가 봐도 정상적인 사이는 아니다.
- 나는 문가에 서서 폰을 꺼내 침대 위 둘을 향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 찰칵.
- 고요한 방에 셔터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 박도윤이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 나를 보더니 잠깐 멍했고, 곧장 벌떡 일어났다.
- “지수야? 언제 왔어?”
- 그는 반사적으로 옆의 서유은을 밀쳐냈다.
- 서유은은 밀치는 바람에 깨어나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 나를 보자 까악 소리를 지르며 이불을 끌어올려 몸을 감쌌다.
- “지수야… 오해하지 마.”
- “어젯밤 도윤 오빠가 취해서, 내가 데려다줬고, 너무 늦어서 여기서 하룻밤 잤어.”
- “우리 아무 일도 없었어.”
- 이 레퍼토리, 그녀가 수도 없이 써먹던 말이다.
- 예전의 믿었다.
- 지금은... 그냥 역겨울 뿐.
- 나는 인쇄해 온 이혼 계약서를 침대 위에 툭 던졌다.
- “사인해.”
- 박도윤은 서류를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바닥으로 쓸어내렸다.
- “김지수, 그만 좀 하지?”
- “내가 말했잖아, 어젯밤은 유은이를 챙기느라 그랬다고.”
- “새벽같이 들이닥쳐서 뭘 확인하러 온 거야? 나를 뭐로 보는데?”
- 그가 침대에서 뛰어내려 내 손을 잡으려 했다.
- 나는 한 걸음 물러나 그의 손길을 피했다.
- “건드리지 마. 더러우니까.”
- 박도윤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 얼굴빛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 “더럽다고?”
- “넌 이승우랑 밤새우고도 안 더러워?”
- “김지수, 난 너한테 어젯밤 어디 있었는지도 안 물었는데, 네가 먼저 나를 혐오해?”
- 그가 싸늘하게 비웃으며, 바닥의 이혼 계약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이혼? 꿈도 꾸지 마.”
- “이혼만 하면 이승우랑 떳떳하게 만나려는 거지?”
- “내가 딱, 그렇게 두고 볼 것 같아?”
- “내가 사인만 안 하면, 넌 영원히 내 아내야.”
- 나는 그의 뻔뻔한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 예전의 그 반듯하고 맑았던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변했 걸까?
- “박도윤, 우리 끝이야.”
- “네가 결혼식장에서 나를 버리고 간 그 순간부터, 우린 끝이었어.”
- “사인 안 해도 상관없어.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 나는 드레스룸으로 성큼성큼 돌아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 박도윤이 따라 들어와 내 손목을 꽉 붙잡았다.
- “김지수! 말 좀 똑바로 해!”
- “끝이라는 게 뭐야? 7년인데 그렇게 쉽게 끝내?”
- “다시 결혼식 해 줄거라고 했잖아, 뭘 더 원하는 건데?”
- “내가 무릎이라도 꿇어야 속이 시원할 거야?”
- 나는 그의 손을 탁 뿌리쳤다.
- “다시 결혼식을 하든 말든 관심 없어.”
- “너 빌어도 소용없어.”
- “그냥 내 눈앞에서 사라지기만 하면 돼.”
- 나는 옷을 대충 캐리어에 쑤셔 넣었다.
- 서유은은 문 앞에 기대어 팔빵을 끼고 구경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 “지수야, 너 너무하다 진짜.”
- “도윤 오빠가 이렇게까지 달랬는데, 한 번만 봐주지 그래.”
- “그리고, 도윤 오빠 없이 너 어디로 가겠다는 거야?”
- “이승우도 그냥 잠깐 노는 거야. 진짜로 믿는 거 아니지?”
- 나는 캐리어 지퍼를 단단히 잠그고. 허리를 곧게 펴 서유은 앞으로 걸어갔다.
- 팍!
- 팍 올리는 손바닥 소리와 함께, 서유은은 멍해져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 “너, 감히 날 때려?”
- “그래, 때린다. 왜.”
- 나는 손을 털었다. 손바닥이 얼얼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짜릿한 기분이 스쳤다.
- “이건 어제 결혼식값이야.”
- 그리고 곧바로 반대손으로 한 대 더 갈겼다.
- “이건 나한테 돌려주는 거야.”
- “서유은, 제3자인 거 뻔히 알면서 이러는 거야? 눈치 좀 챙기라.”
- 서유은이 비명을 지르며 박도윤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 “도윤 오빠! 얘 좀 봐!”
- 박도윤은 안쓰럽다는 듯 서유은을 끌어안고, 나를 노려봤다.
- “김지수! 너 미쳤냐?!”
- “당장 꺼져!”
- “꺼지라고!”
- 나는 캐리어를 끌고, 뒤도 안 돌아보고 그 집을 나왔다.
- 뒤에서 서유은의 우는 소리와 박도윤의 달래는 소리가 따라왔다.
- 나는 문을 나와 마당 한가운데 서자 참았던 눈물이 결국 떨어졌다.
- 미련 때문이 아니었다.
- 잘 못된 사람을 사랑해서 허비한 그 몇 년 때문이었다.
- 막 대문을 나서자,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 차창이 스르르 내려가며, 사람 말문이 막힐 정도로 잘생긴 이승우의 얼굴이 드러났다.
- “타요.”
- “좋은 곳으로 데려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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