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 영상 속 배경은 시끌벅적했다. 술집 룸 같았다.
- 서유은은 크롭탑을 입고, 손에 위스키 병을 흔들고 있었다.
- 얼굴은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었고, 알레르기 기색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 주변엔 남자 몇 명이 앉아 떠들썩하게 부추기고 있었다.
- “유은 누나, 오늘 도윤 결혼식을 여는 날이잖아. 진짜 전화 할 거야?”
- 서유은이 요염하게 피식 웃더니, 병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 “뭘 못 하겠어?”
- “난 이 병 걸고 내기할게.”
- “나 전화 한 통만 해서 몸 안 좋다고 하면,”
- “도윤 오빠는 반지 교환 중이어도 김지수 버리고 바로 올걸?”
- 주변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 “헛소리 좀 그만 하지. 그게 결혼식인데, 인생 에서 중요한 일이잖아.”
- “그러게, 김지수랑 도윤이 7년 사귀었는데, 그걸 이길 수 있다고?”
- 서유은이 카메라를 향해 턱을 도발적으로 치켜올렸다.
- “7년이면 뭐 어쩌라고?”
- “도윤 오빠한테는 의리가 여자보다 먼저거든.”
- “게다가, 난 도윤 오빠 유일한 여사친이잖아.”
- 그녀는 ‘여사친’이라는 말을 유난히 힘주어 뱉었다. 뉘앙스가 노골적이고 독했다.
- “두고 봐. 오늘 그 결혼식, 못 올려.”
- 말을 끝내자, 그녀는 폰을 꺼내 박도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 영상은 여기서 뚝 끊겼다.
- 곧이어, 그 아래에는 음성 파일 하나가 더 첨부돼 있었다.
- 방금 차 안에서 박도윤이랑 서유은이 나눈 대화였다.
- 블랙박스나 서유은 폰이 실수로 녹음한 모양이었다.
- 박도윤의 목소리에 분노가 잔뜩 묻어 있었다.
- “김지수 진짜 미쳤네. 감히 이승우랑 엮였다고?”
- 서유은이 울먹이며 말했다.
- “다 내 잘못이야. 오빠한테 전화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 “근데 그때 진짜 너무 아팠단 말이야...죽는 줄 알았어…”
- 박도윤가 목소리를 낮춰 부드럽게 말했다.
- “바보야, 뭐래.”
- “널 안 구하고, 그냥 죽는 거 보고 있으라고? 나 못하겠지”
- “김지수는 진짜 유난이야. 이런 일도 꼬투리 잡고 그러니까.”
- “화만 풀리면, 알아서 돌아올 거야.”
- “걘 나 없인 못 살아.”
- 서유은이 눈물 섞인 웃음을 흘렸다.
- “그럼… 오빠, 오늘 밤 우리 집 와서 같이 있어줄래? 혼자 있으려니까 무서워.”
-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 박도윤이 낮게 말했다. “그래. 다 네 마음대로 할게.”
- “어차피 그 집에 들어가도 차가운 표정만 볼걸. 생각만 해도 짜증 나.”
- 폰이 내 손에서 미끄러져 카펫 위로 떨어졌다.
- 둔탁한 소리가 났다.
-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기분이었다. 소름 끼칠 만큼 차가웠다.
- 알레르기가 아니었구나.
- 이건 치밀하게 준비된 모욕이었다.
- 서유은이 박도윤의 마음속에서 얼만큼 중요한지 확인하기 위한 내기였다.
- 그리고 나는, 그 웃긴 판돈이었다.
- 박도윤과 함께한 지난 7년은 그냥 ‘유난’이었다.
- 나는 그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일 뿐이었다.
- 눈물이 저도 모르게 흘러내렸다.
- 이승우가 문틀에 기대서 내게 휴지 한 장을 내밀었다.
- “좀 닦아요. 꼴사나우니까.”
- 나는 휴지를 받아 눈가에 저절로 흘러내린 눈물을 훔쳤다.
- “이 영상, 어떻게 받았어요?”
- “그 단톡방에 내 사람이 있어요.”
- 이승우가 몸을 숙여 폰을 주워 들고, 위에 붙은 먼지를 불어냈다.
- “어때요? 이 신혼 선물, 마음에 들어요?”
- 나는 거울 속 창백한 얼굴의 여자를 바라봤다.
- 문득 웃음이 났다.
- 웃다가 눈물까지 났다.
- “마음에 들어요.”
- “ 완전”
- 나는 몸을 돌려 이승우를 바라봤다.
- “이승우 씨, 저랑 거래 할까요?”
- 이승우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 “거래요? 말해보시죠.”
- “박도윤 그 인간, 명예도 인생도 다 망가뜨리고 싶어요.”
- “서유은은 살아 있어도 지옥 같게 만들어 버릴 거에요.”
- “승우 씨 도와주시면, 원하는 건 뭐든 줄게요.”
- 이승우가 한 걸음 다가왔다. 나는 뒤로 밀려 세면대 앞까지 물러섰다.
- 그는 양손을 내 양옆에 짚어, 나를 그의 품에 가뒀다.
- “지수 씨한테서 제가 받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죠?”
- “돈? 권력? 아니면 지수 씨의 몸?”
- 그는 내 머리카락 한 올을 손가락에 감아 심드렁하게 만지작거렸다.
- “그래도, 내 아내가 원한다니까,”
- “당연히 들어줘야죠.”
- 그는 내 귓가에 바짝 다가왔다. 목소리가 낮고 위험했다.
- “이 영상은 그냥 에피타이저예요.”
- “진짜 메인은 아직 남았거든요.”
- 그가 폰에서 다른 파일을 열어 재생 버튼을 눌렀다.
- CCTV 영상이었다.
- 화면 속 박도윤이 서유은을 술집 소파 위로 내리눌렀다.
- 둘은 떨어질 줄도 모른 채 서로에게 매달리듯 키스하고 있었다.
- 박도윤의 손은 벌써 서유은 옷 안으로 파고들어 있었다.
- 그리고 입으로는 구역질 날 만큼 역겨운 말을 내뱉고 있었다.
- “유은아, 사실 나 예전부터 이러고 싶었어…”
- “김지수 그 까칠한 여자랑 있는 게, 솔직히 재미 없거든.”
유료회차
결제 방식을 선택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