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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버린 약혼자는 나의 결혼식에서 무릎 꿇는다

나를 버린 약혼자는 나의 결혼식에서 무릎 꿇는다

blue apple

Last update: 1970-01-01

제1화

  • 나는 JS 그룹의 외동딸, 임설아다.
  • 아버지 임세준 회장이 거두어 키운 고아, 차진우와 비밀 연애를 시작한 지 어느덧 3년. 우리의 관계를 공표하던 날, 가문의 반대는 예상보다 훨씬 극심했다.
  • 그는 아버지의 허락을 얻기 위해 저택의 차가운 문 앞에서 사흘 밤낮을 무릎 꿇고 버텼다.
  • “해외에서 1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고 그룹의 핵심 자리에 서겠습니다. 그때 제게 설아와의 혼인을 허락해 주십시오!”
  • 떠나기 전, 그는 맞춤 제작한 플래티넘 다이아몬드 반지와 혼전 계약서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 “돌아오면, 반드시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올려줄게.”
  • 그 약속 하나만 믿고 모든 정략결혼 제안을 거절하며 5년을 기다렸다. 하지만 성공해서 돌아온 진우가 가문 어른들 앞에서 내뱉은 말은 청혼이 아닌 파혼이었다.
  • “제 조건은 민하나 비서와 결혼하는 것입니다. 설아 씨, 예전에 드린 혼인 계약서는 돌려주세요. 저희를 축복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그의 뒤에 선 비서 민하나는 살짝 부풀어 오른 배를 어루만지며 가련한 표정을 지었다.
  •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사교계에서 JS 그룹의 임설아는 ‘건드리면 끝장나는’ 독한 여자로 유명했으니까.
  • 모두가 내가 당장이라도 테이블을 뒤엎을 거라 예상하던 그때, 나는 담담히 눈을 들어 평온하게 대꾸했다.
  • “좋네. 두 사람, 아주 잘 어울려.”
  •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정적이 흐랐다. 모두의 눈에 경악과 탐색의 시선이 서렸지만, 나는 여유롭게 한정판 클러치 백에서 혼전 계약서를 꺼냈다.
  • ……
  • 18년 전, 아버지가 오지 답사 중 고아원에서 버려진 차진우를 데려왔을 때부터 그는 내 전담 수행비서이자 친구였다.
  • 내 성인식 날, 아버지가 고른 18명의 재벌가 후계자들 사이에서 내가 망설임 없이 가리킨 건 내 뒤에 서 있던 차진우였다. 그때의 그는 나를 얻기 위해 사흘 밤낮을 빌며 진심을 증명했었다.
  • 딸의 눈물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아버지는 차진우에게 ‘신시장 개척’이라는 가혹한 시험대를 던져주었고, 그는 보란 듯이 성공해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 이 계약서는 휴지조각일 뿐이다.
  • 내가 계약서를 건네려 손을 뻗자, 그는 질겁하며 민하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 “임설아, 파혼은 내 잘못이니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어. 하지만 하나는 상관없는 사람이야. 제발 괴롭히지 마.” “하나는 너처럼 풍족하게 자라지 못했어. 배경도 없고, 나처럼 밑바닥부터 올라온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고.”
  • 경계심 가득한 그 눈빛을 보니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에게 나는 이제 지켜야 할 연인이 아니라, 처단해야 할 적이 된 모양이다.
  • “차진우, 설아가 널 5년이나 기다렸는데 고작 이런 여자 때문에?” 참다못한 아버지가 서늘하게 읊조렸다.
  • 그러자 민하나는 아랫배를 감싸 안으며 고집스러우면서도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진우 씨, 일어나세요. 저 때문에 자존심 굽히며 빌지 마세요.” “당신은 JS 그룹에 조 단위 이익을 가져다준 공신인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죠? 제가 평범한 출신이라 무시하는 건가요? 제가 떠날게요, 진우 씨 괴롭히지 마세요.”
  • 민하나가 눈시울을 붉히며 떠날 채비를 하자, 차진우는 황급히 그녀를 붙잡으며 나를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 “오지에서 시장을 개척하다 죽을 고비를 넘길 때 내 곁을 지킨 건 하나였어. 내가 고생한 만큼 그 사람도 피눈물을 흘렸다고. 넌 사랑한다고 말만 했지, 내가 가장 힘들 때 어디 있었는데?” “곱게 자란 넌 상상도 못 하겠지. 하나는 내 곁에서 5년을 함께했고, 심지어 날 지키려다 팔에 흉터까지 남았어.” “내 아이를 가졌어. 난 책임져야 해!”
  •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옆에 있던 오빠이자 JS 그룹 전무인 임태준이 주먹을 꽉 쥐며 튀어 나가려 했다.
  • “이 배은망덕한 놈이! 설아가 너를 위해 뭘 했는지 알아?!”
  • 나는 오빠의 팔을 잡아 말을 막았다. 민하나의 눈가에 맺힌 가짜 눈물을 뒤로하고, 내 손목에 새겨진 끔찍한 흉터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 지난 5년, 그가 해외에서 겪은 모든 위기와 상처를 나는 전부 알고 있었다. 부담을 주기 싫어 비밀리에 내 인맥과 자원을 동원해 치워준 장애물들이 수십 개였다.
  • 그런데 나를 얻기 위해 독기를 품었던 남자가, 결국 제 비서와 눈이 맞아 돌아올 줄이야.
  • 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려 했지만, 내가 먼저 혼전 계약서를 높이 들었다.
  • “아버지, 차진우 상무가 그룹을 위해 큰 공을 세운 건 사실이에요.” “민하나 씨와 서로 사랑한다니 축복해 주는 게 맞겠죠.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두 사람의 약혼을 확정 짓겠습니다. 결혼식은 언제로 생각 중인가요?”
  • 차진우는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사흘 뒤로 하지. 나와 하나가 처음 만난 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