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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 강지호는 그걸 보자마자 곧바로 배수아를 제 등 뒤로 확 감싸더니, 날 향해 악을 썼다.
  • “푶하린! 너 미쳤어? 왜 사람한테 함부로 손버릇이야!?”
  • 뭐?
  • 그년 패느라 네놈 따위 완전히 잊고 있었네.
  • 인심 쓰는 셈 치고, 팔을 크게 휘둘러 이 파렴치한 놈의 뺨도 똑같이 후려갈겼다.
  • 강지호가 두 눈을 부릅뜨고 경악한 채 나를 쏘아붙였다.
  • “다들 모른 척 넘어가면 그만이라고? 이게 지금 모른 척 넘어갈 일이야? 명백한 악성 루머라고!”
  •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킨 채 그와 눈을 마주쳤다.
  • “그리고 너. 넌 내 약혼자야. 오늘은 우리 약혼 파티고. 내가 이런 더러운 유언비어로 매도당하고 있는데, 넌 날 감싸기는커녕 거짓말을 묵인하고 오히려 피해자 행세를 하는 저년만 감싸고돌아!?”
  • “우리가 만난 지 10년이야. 내가 연애하는 동안 돈에 눈이 멀어 다른 남자와 몸을 섞었을 리가 없다는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그 정도도 몰라?”
  • “당장 경찰 부를 거야! 진실이 뭔지 바닥까지 파헤쳐서, 내 명예 짓밟은 이 쓰레기 같은 짓거리들 전부 법적 처벌 받게 만들 거니까!”
  • 말을 마치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신고 버튼을 누르려 했다.
  • 하지만 내 손가락이 화면에 닿기도 전에, 강지호가 홱 채가듯 내 폰을 빼앗아 바닥으로 내던졌다. 액정 화면이 순식간에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박살 났다.
  • 그제야 자신이 저지른 짓의 도가 지나쳤음을 깨달은 것인지, 강지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굳었던 태도를 애써 누그러뜨렸다.
  • 그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달래듯 낮게 뇌였다.
  • “하린아, 진정해. 제발 이러지 마.”
  • “오늘은 우리 약혼 파티야. 여기서 경찰까지 부르면 일이 너무 커져서 모양 빠지잖아. 이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지.”
  • “네 마음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진정하고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가자, 응?”
  • 내가 지금 난리라도 피우고 있다는 거야?
  • 나는 실망으로 가득 찬 눈으로 강지호를 올려다보았다. 가슴속에서 바늘 수천 개가 빽빽하게 쑤셔 박히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 분명 루머를 지어내고 날 짓밟은 건 배수아 저년인데, 그년의 손을 들어준 건 바로 강지호 저 인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을 만든 가해자는 따로 있는데, 어째서 내가 소란이나 피우는 미치광이 취급을 받아야 하냔 말이다.
  • 지금 내 앞에서 일그러진 저 가증스러운 얼굴이, 내가 해외로 떠나기 전 나를 세상의 전부인 마냥 사랑해 주던 그 남자의 얼굴과 도저히 겹쳐지지 않았다.
  • 우린 초등학교 때부터 옆집에 나란히 살며 자랐고, 내가 열여섯 살 생일을 맞던 날 그가 쑥스럽게 고백해 오면서 연애가 시작됐다.
  • 남들처럼 평생 다정하게 서로의 곁을 지킬 거라 믿었다.
  • 내가 의대 유학길에 오르며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여사친’이라는 명분을 달고 배수아 그년이 비집고 들어오기 전까지는.
  • 그날 이후 강지호와 나눈 대화엔 늘 배수아의 이름이 끼어들었다. 배수아는 그렇게 서서히 우리의 일상을 좀먹어 갔다.
  • “오늘 수아랑 테니스 쳤는데, 진짜 못 치더라. 내가 옆에서 붙잡고 하루 종일 가르쳐서 겨우 폼 잡았잖아.”
  • “아, 자기야 미안. 어제 수아랑 취할 때까지 마시느라 영상통화를 못 했네. 근데 걔 술자리 게임할 때 진짜 웃기지 않냐?”
  • “자기야, 네가 아픈 건 아는데 수아가 교통사고가 났대. 너보다 심각해서 병원부터 가봐야겠어.”
  • 타국에서 외로움과 학업에 치일 때마다 내가 바란 건 그저 따뜻한 위로 한 마디였다.
  • 내 남친은 기꺼이 내 손을 잡아주는 대신, 다른 여자의 안부를 내 귀에 쑤셔 박았다.
  • 실망, 허탈, 그리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 감정의 파도가 가슴을 짓눌렀다.
  • 참다못해 전화로 이별을 통보한 적도 있었다.
  • 하지만 강지호는 배수아를 단 한 번도 여자로 본 적 없고, 그저 친구일 뿐이라고 해명하며 나를 옭아맸다.
  • 끈질기게 나를 달래던 그는 결국 직접 비행기 표까지 끊어 날아왔고, 그제야 겨우 내 마음을 돌려놓았었다.
  • 그때의 나는 그 말이 진심인 줄로만 알았다.
  • 이제 보니 그저 철저히 속았을 뿐이었다.
  • 온전히 내 몫이어야 했을 애정과 보호는 이미 오래전에 다른 여자에게 넘어가 있었다.
  • 내가 너무나 바보 같았다.
  • 허탈함에 눈물이 뺨을 타고 떨어졌다. 밀착한 채 나를 내려다보는 저 역겨운 남녀의 모습을 더는 참아줄 수가 없었다.
  • 나는 옆 테이블에 놓여 있던 무거운 와인병을 와락 움켜쥐었다. 그리고 저 썩어 빠진 두 사람을 향해 사정없이 던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