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 또 다른 경호원 한 명이 내 신상을 샅샅이 캔 서류를 쥔 채 심각한 표정으로 피팅룸 안으로 들어섰다.
- "유라 아가씨, 서혜나의 결혼 상대에 대한 정보는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 "서혜나, 가짜 결혼으로 날 속인 것도 모자라 내 아이까지 납치해? 당장 불어, 우리 애 어디 있어!"
- 그 순간, 권승혁의 눈동자에 스치던 알량한 죄책감마저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 "누가 누굴 납치해? 내 약혼자는 M-테크 대표야. 그러니 니들이 아무리 뒷조사를 해봤자 정보가 안 나오는 게 당연하지!"
- 채유라의 표정이 흉하게 일그러지더니, 권승혁의 분노를 부추기려는 듯 한 글자 한 글자 악에 받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 "어디서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얼굴 한 번 비친 적 없는 문건우 대표님이 네 약혼자라고?"
- "너 같은 게 어떻게 그런 분 곁에 다가가기라도 하겠어?"
- "오빠 속이려고 허세 부리는 건 그렇다 쳐도, 자기 자신까지 속이면서 비참해지진 마!"
- 채유라가 갈수록 흥분하며 열을 올리자, 권승혁은 짜증스럽게 채유라의 말을 끊어버렸다. "됐어. 일단 혜나한테 우리 아이가 어디 있는지부터 캐내!"
- 채유라가 독기 어린 눈으로 경호원을 향해 턱짓했다.
- "몸수색해! 납치범이랑 연락한 기기 숨겼는지 샅샅이 뒤져!"
- 경호원의 크고 거친 손이 내 몸 이곳저곳을 끈적하게 훑어내렸다.
- 나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며 비명을 질렀다.
- "채유라! 내 약혼자가 이따위 짓을 알고도 널 가만둘 것 같아?!"
- "입 다물어!"
- 경호원은 거칠게 내 상의를 찢어발겨 입을 틀어막았고, 그것도 모자라 억센 손으로 내 뺨을 자비 없이 후려쳤다.
- 절망과 수치심이 뒤섞인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몸을 감싸고 있던 옷가지들이 그들의 거친 손아귀에 갈기갈기 찢겨나갈 판이었다.
- 나는 무의식중에 권승혁을 향해 절박한 구조의 눈빛을 보냈고, 우리가 한때 사랑했던 그 알량한 정을 봐서라도 제발 이런 끔찍한 모욕만은 멈춰달라고 애원했다.
- 그러나 권승혁은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얼굴에는 차마 못 보겠다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끝끝내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 바로 그 순간, 채유라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아가씨! 아이 찾았습니다! 혼자 밖으로 놀러 나갔다가 길을 잃었던 거랍니다!"
- 숨 막히는 정적이 거실을 덮쳤다. 팽팽했던 공기가 순식간에 우스꽝스러울 만큼 어색하게 식어버렸다.
- 나는 그 틈을 타 경호원의 포박을 맹렬히 뿌리치고 찢어진 옷자락을 꽉 여몄다. 그리고 권승혁을 향해 서릿발 같은 눈빛을 쏘아붙였다.
- "이제, 당장 내 앞에서 꺼져!"
- 내가 거칠게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터진 상처에서 흐르던 피가 튀어 채유라의 옷에 묻었다. 그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더니, 이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붉어진 눈시울로 고개를 들었다.
- 채유라는 잔뜩 겁먹은 가련한 피해자처럼 권승혁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 "혜나야, 아무리 내가 널 오해했다지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 그녀는 서럽게 흐느끼면서도 억울함을 꾹 참는 듯한 눈빛을 연기했다.
- 그 가증스러운 모습에 권승혁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은 듯 보였다. 다시 나를 향하는 그의 눈빛에는 지독한 혐오와 분노만이 가득했다.
- "당장 사과해!"
- "까짓거 옷 좀 찢어질 뻔한 게 대수야? 네가 처음부터 제대로 변명만 했어도 유라가 이렇게까지 애태우진 않았을 거 아니야!"
- 권승혁은 짜증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나를 향해 싸늘하게 호통쳤다.
- "3년 전에 네게 결혼하겠다고 한 약속, 지금도 무를 생각 없어."
- 그는 내게 반항할 틈조차 주지 않고 억센 손아귀로 내 팔목을 잡아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 그 악력에 겨우 멎었던 상처가 다시 터져 나가며 붉은 피가 축축하게 배어 나왔다.
- 권승혁의 움직임이 흠칫 굳어지더니, 안색이 눈에 띄게 파리해졌다.
- 이내 서늘한 쇳조각 같은 것이 내 손가락에 우악스럽게 끼워졌다.
- 시선을 내려보니, 거대한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 "프러포즈할 때 못 끼워줬던 거, 지금 챙겨주는 거니까 유라 질투하는 짓거리 작작 해. 고작 아프리카 사파리 투어 좀 다녀온 걸로 이렇게까지 깽판을 쳐야 속이 후련하겠어?"
- 그랬다. 나도 한때는 권승혁과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아프리카로 동물 대이동을 보러 가자고 수없이 조르고 매달렸던 적이 있었다.
- 하지만 그때마다 권승혁은 귀찮다는 듯 건성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 "나 바쁜 거 안 보여? 너랑 그런 데서 허비할 시간 없어."
-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니라, 그저 나에게 마음을 쓸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거다.
- 그런데 채유라와 함께 갔을 때는 어땠나. 그는 채유라가 안전하고 완벽하게 사자를 구경할 수 있도록,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어 방탄유리로 특수 제작된 투명 관람차까지 대절했다.
- 참담한 기억에서 헤어 나왔을 때, 나는 어느새 경호원들의 억센 손에 이끌려 채유라 앞에 꿇려 있었다.
- 채유라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하필이면 내 손가락에 억지로 끼워진 다이아몬드 반지에 정확히 얽혀들었다.
- "아악!"
- 채유라의 찢어지는 비명에 경호원들이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 권승혁이 미친 듯이 달려들어 구둣발로 나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 "끝까지 네 잘못을 인정 못 하겠다면,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유료회차
결제 방식을 선택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