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2화

  • 강재현은 손가락을 휴대폰 화면 위에 멈춰 둔 채, 얼굴이 굳어 있었다.
  • 난 아기를 안고 소파에 기대앉아, 여유롭게 그를 바라봤다, 눈길 하나 주지 않고.
  • 벨소리는 독촉하듯 계속 울려댔다. 고요한 거실에 유난히 날카롭게 울렸다.
  • 강재현이 통화 버튼을 거칠게 눌렀다. 목소리엔 눌러 담은 분노가 철철 흘렀다. “누구야?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 상대가 뭐라고 떠드는지 모르는 사이, 그의 미간은 점점 더 깊게 찌푸려졌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자꾸 내 쪽을 흘끗거렸다.
  • 전화를 끊자마자 그는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내던졌다. 유리 상판에서 쨍 하는 소리가 났다.
  • “한지아, 아기 내놔.”
  • 그가 성큼성큼 다가와, 내 품의 아기를 빼앗으려 손을 뻗었다.
  • 아기가 그 동작에 놀라 번쩍 눈을 떴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 난 황급히 아기의 등을 토닥였다. 그 순간, 박민우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큰 몸이 벽처럼 서 있었다.
  • “강재현 씨, 그만하시죠. 아이 놀라잖아요.”
  • 박민우의 목소리가 낮고 단호하게 가라앉았다.
  • 가로막히자 강재현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분노가 얼굴에 가득했다.
  • “네가 뭔데? 감히 강씨 가문 일에 끼어들어!”
  • 박민우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앞으로 나섰다. “난 누나랑 아기 지키는 사람입니다. 둘을 해치려는 사람하고는, 나도 가만 안 둡니다.”
  • 팽팽히 맞서는 둘을 보면서, 난 차분하게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냈다.
  • “강재현, 화부터 내지 말고 이거부터 봐.” 내 목소리는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
  • 강재현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서류를 집어 들고 첫 장을 펼쳤다. 그 순간, 얼굴이 확 굳었다.
  • 작년에 그가 스폰하던 인플루언서의 임신 검사 결과지였다. 날짜와 서명까지 또렷하게 찍혀 있었다.
  • 장을 넘길수록 그의 표정이 점점 더 굳어졌다. 손에 든 서류를 제대로 쥐지 못하고, 손가락이 떨렸다.
  • 그 안에는 지난 3년 가까이 여러 여자의 임신 검사 결과가 줄줄이 정리돼 있었다.
  • 호텔 출입 기록도 전부 정리돼 있었고, 애인들에게 명품을 사주며 송금한 내역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
  • “이건… 대체 어디서 구한 거야?”강재현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까의 기세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 난 피식 웃으며, 속으로 비웃으며 손끝으로 아기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 “너, 그동안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 “밖에서 제멋대로 놀면서, 네 애 가졌다는 여자들이 집까지 찾아와서 난리 치고 갔을 때, 왜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까?”
  • “우리 사이에서 누가 더러운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내 말은 정확히 그의 급소를 찔렀다.
  • 강재현은 입을 열었다 닫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그는 내 품의 아기를 봤다가, 다시 테이블 위의 서류를 내려다봤다. 얼굴에 걸려 있던 오만이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 잠시 후, 그는 소파 위에 있던 외투를 거칠게 움켜쥐고 나를 노려봤다.
  • “한지아, 두고 봐. 이걸로 끝 아닐 줄 알아.”
  • 그 말을 남기고 나갔다. 문을 쾅 닫는 소리에 벽에 걸린 액자가 덜컹거릴 정도였다.
  • 박민우가 몸을 돌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누나, 괜찮아?”
  • 난 고개를 저으며, 품에서 다시 곤히 잠든 아기를 내려다봤다. 눈가에 은은한 온기가 번졌다, 마음 속 깊이 안도와 따스함이 퍼지며.
  • “난 괜찮아. 네가 있잖아, 난 하나도 안 무서워.”
  • 한편, 강재현은 차를 몰고 목적지도 없이 거리를 헤매며, 마음속 혼란과 분노가 뒤섞였다.
  • 어느새 차는 한 고급 아파트 앞에 멈춰 있었다. 그의 애인 중 한 명이 사는 곳이었다.
  • 그 여자가 애교 섞인 웃음을 지으며 그의 품에 달려들었지만, 그의 머릿속엔 한지아의 차가운 눈빛만 떠올랐다.
  • 그는 품 안의 여자를 거칠게 밀어냈다. “건드리지 마.” 짜증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났다.
  • 여자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서운한 표정으로 물었다.“강재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 강재현은 대답 대신 말없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가 천천히 피어올랐다. 연기 속에서 그의 얼굴은 더 음침하고 어두워 보였다.
  •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한때 자신을 빠져들게 했던 그 달콤한 온기가,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는 사실이 그를 더 허무하게 만들었다.
  • 강재현이 문을 쾅 닫고 나간 뒤, 거실에 다시 고요가 내려앉았다.
  • 난 품에서 곤히 잠든 아기를 내려다보다가, 이마에 살짝 입을 맞췄다.
  • 박민우는 거실 테이블 위에 흩어진 서류를 조용히 정리했다. 아기가 깰까 봐, 손놀림은 무척 조심스러웠다.
  • “누나, 우리 이사할까?” 그가 낮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