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과 억지로 보낸 하룻밤 사건
daylight
Last update: 1970-01-01
제1화
-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호텔의 푹신한 킹사이즈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 머리 위 샹들리에 불빛이 흐릿하게 번져 보여 눈앞이 아찔했다.
-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팔다리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온몸이 축 늘어져 꼼짝도 할 수 없었다.
- 귓가에 남편 이도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투는 조심스러웠지만, 어딘가 찔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 “서아야, 깼어? 아직도 어지러워?”
- 고개를 돌리자 그가 침대 옆에 걸터앉아 물컵을 들고 있었다.
- “내가 왜 여기 있어?”
- 입을 떼자 거칠게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마지막 기억은 회사 회식 자리였다. 이도현은 내 잔이 빌 때마다 술을 채워 넣으며, 곧 승진할 테니 미리 축하하자고 했다.
- 그가 시선을 피한 채 컵을 내 입가로 가져왔다.
- “네가 너무 취해서 호텔로 데려와 쉬게 한 거야.”
- 나는 물을 받지 않았다. 대신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 공기 속에는 낯선 전나무 향이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이도현이 평소 쓰던 시원한 바다 향도 아니었고, 호텔 객실에서 흔히 날 법한 냄새도 아니었다.
-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 “이도현.”
- 나는 한 글자씩 힘줘 물었다.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 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 잠시 입술만 달싹이던 그는, 마침내 결심이라도 한 사람처럼 갑자기 내 손을 꽉 움켜잡았다. 뼈가 부서질 것처럼 세게.
- “서아야, 부탁이야. 딱 한 번만, 이번 한 번만 나 돔 도와줘.”
-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은 기이할 만큼 들떠 있었다.
- “강 회장님… 우리 그룹 회장님 말이야. 널 마음에 들어 하셨어.”
- “그 사람이랑 하룻밤만 보내면, 마케팅 본부장 자리는 내 거야. 서아야, 딱 하룻밤만. 이번 한 번만 넘기면 우리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거야.”
-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 눈앞의 남자를 멍하니 바라봤다.
- 3년을 사랑한 남자였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는 내가 알던 이도현이 아니었다.
- 그 얼굴엔 권력을 향한 탐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수단이고 뭐고 가릴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 등골이 서늘해졌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 “이도현, 너 미쳤어? 나를 뭘로 보는 거야?”
- 있는 힘껏 그를 밀어냈다. 당장이라도 이 더러운 방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 술에 뭔가 탔구나.
-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 이도현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얼굴에 짜증이 스쳤지만, 곧 애원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 “서아야, 이번 한 번만! 앞으로 진짜 잘할게. 두 배가 아니라 열 배로 잘할게. 제발.”
- “꺼져!”
- 목이 찢어져라 소리친 바로 그때였다.
- 딸칵.
- 문이 밖에서 카드키로 열렸다.
- 이도현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허둥지둥 몸을 일으키더니, 아부하는 웃음을 얼굴 가득 띄웠다.
- “회장님, 오셨습니까?”
- 나는 온몸이 굳은 채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남자가 휠체어에 앉은 채 비서의 손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왔다.
- 그는 몸에 딱 맞는 검은 수트를 입고 있었다. 얼굴은 빛과 그림자에 반쯤 가려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방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듯했다.
- 이 남자가 바로 이도현이 수도 없이 입에 올리던 강 회장이었다.
- 5년 전, 경영권 다툼에 휘말려 누군가의 계략에 당했고, 그 일로 두 다리를 잃었다. 그 뒤로 성격이 완전히 뒤틀렸고, 사람을 다루는 방식도 훨씬 잔혹해졌다는 남자.
- 비서는 그를 침대 곁까지 밀어 준 뒤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 문이 닫히자, 방 안에는 우리 셋만 남았다.
- 이도현은 허리를 깊이 숙인 채 연신 굽실거렸다. 굽실거리는 꼴이 꼭 주인 앞에서 꼬리치는 개 같았다.
- “회장님, 사람… 데려왔습니다. 그... 제 계약은…”
- 하지만 강 회장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 그는 직접 휠체어를 움직여 천천히 침대 앞으로 다가왔다.
- 나는 긴장한 채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두려움에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 그가 마침내 멈춰 섰다.
-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그 시선이 내 얼굴 위에 꽂혔다.
- 깊고 차가웠다.
- 얼어붙은 심연 같았다.
- 그 눈빛 속에는 내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본능적으로 시선을 피하고 싶어졌다.
- “나가.”
- 마침내 강 회장이 입을 열었다.
- 쉰 목소리였다. 마치 금속이 거칠게 긁히는 것처럼 낮고 서늘했다.
- 이도현은 잠시 얼빠진 얼굴을 했다가, 곧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예, 예. 바로 나가겠습니다. 괜히 거슬리면 안 된 걸 잘 알고 있습니다.”
- 문을 나서기 직전, 그가 뒤돌아 나를 한 번 바라봤다.
- 그 눈빛은 복잡했다. 미안함도 있었고, 아주 잠깐이나마 망설이는 기색도 있었다.
- 하지만 결국 더 선명했던 건, 모든 걸 걸겠다는 단호함이었다.
- 문이 닫히자, 방 안은 완전한 정적에 잠겼다.
- 내 심장 소리만 귓가를 울렸다.
- 쿵. 쿵.
- 고막을 때릴 만큼 선명했다.
- 강 회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그 시선에 붙잡힌 순간,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굳어 있었다. 그가 다음 순간 입을 열지, 손을 뻗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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