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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첫날밤, 남편이 지하실의 가짜 이름을 불렀다

신혼 첫날밤, 남편이 지하실의 가짜 이름을 불렀다

Lucky king

Last update: 1970-01-01

제1화

  • 스무 살이 되던 해, 나는 석 달 동안 납치당했다.
  •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지독한 지하 감옥. 가면을 쓴 남자는 나를 애완동물처럼 길렀고, 조금이라도 거슬리게 굴면 가차 없이 가죽 벨트를 휘둘렀다.
  • 구출된 이후, 내게 남은 건 심각한 스톡홀름 증후군과 폐소공포증뿐이었다.
  • 짙은 어둠만 마주하면 비명을 지르며 발작했고, 때로는 스스로를 해치기까지 했다.
  • 정신병원에 처박혀 서서히 썩어가던 무렵, 김정우가 나타났다.
  • 서울의 가장 젊은 권력자인 그는 그림처럼 부드럽고 온화한 사람이었다.
  • 온몸을 뒤덮은 끔찍한 담뱃불 자국도, 이따금 발작하는 미친 짓거리도 그는 결코 혐오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없이 다정한 손길로 산산조각 난 나를 조금씩 맞추어 주었다.
  • 우리가 결혼하던 날 밤, 온 도시가 나를 부러워했다. 다들 내가 전생에 나라라도 구한 줄 알았다. 그런데 바로 그 신혼 첫날밤, 정전이 일어났다.
  • 예고 없이 덮쳐온 어둠에 질려, 나는 정우의 품에 파고든 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 그는 내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무서워하지 마, 지아야. 내가 있잖아."
  • 순간, 전신의 피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 그건 내가 그 지옥 같은 감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꾸며낸 이름이었다.
  • 그 악마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내 이름.
  • ...
  • '찌직-' 하는 소리와 함께, 방 안을 가득 채우던 빛이 순식간에 짙은 어둠 속으로 먹혀들었다.
  •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반응했다.
  • 목을 짓눌린 어린 새처럼, 비명조차 목구멍에 꽉 막힌 채 극심한 경련만이 온몸을 휩쓸었다.
  • 식은땀이 삽시간에 얇은 슬립을 흠뻑 적셨다.
  • 나는 옆에 있던 남자를 죽어라 붙들었다. 손톱이 그의 살점을 파고들 정도로 처절하게.
  • "괜찮아."
  • 정우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다정했다. 마치 강력한 진정제처럼 팽팽하게 곤두선 내 신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 그가 나를 품에 깊숙이 끌어안았다. 커다란 손바닥이 일정한 박자로 등을 토닥였고, 귓바퀴 위로 뜨거운 숨결이 훅 끼쳤다.
  • "무서워하지 마, 지아야. 내가 있잖아."
  • 그 짧은 한마디가 얼음물에 담금질한 비수처럼, 갓 아물어가던 심장을 무참히 꿰뚫었다.
  • 피가 거꾸로 솟구치고 사지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 내렸다.
  •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오직 그의 묵직한 심장 박동과 내 귓가를 맴도는 그 이름, '지아'라는 끔찍한 메아리만이 남았을 뿐.
  •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를 밀쳐냈다. 허둥지둥 침대 구석으로 기어가 박힌 채, 어둠 속에 잠긴 흐릿한 실루엣을 경악에 찬 눈으로 노려보았다.
  • 그 이름은 내 영혼에 지져진 낙인과도 같았다. 떠올릴 때마다 살갗이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이 뒤따랐으니까.
  • 그 지독한 지하 감옥. 가면을 쓴 악마가 가죽 벨트로 나를 무자비하게 내리치며 윽박지르듯 캐물었을 때 뱉은 이름이었다.
  • 가족들까지 위험해질까 봐 차마 진짜 이름은 입에 올릴 수 없어서, 아무렇게나 지어낸 '지아'.
  • 그 이름은 오직 나와 그 악마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 그런데 김정우가 대체 어떻게 그 이름을 알고 있단 말인가?
  • "서원아, 왜 그래?"
  • 어둠 속에서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는 당혹감과 상처받은 기색이 역력했다.
  • 이내 비상 전력이 가동되었다. 은은한 벽등이 켜지며 숨 막히던 어둠을 몰아냈다.
  • 나는 마침내 그의 얼굴을 똑똑히 마주했다.
  • 여전히 그림처럼 다정하고 온화한 얼굴. 눈매에는 걱정이 가득 서려 있어, 그 어떤 균열이나 허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 그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레 다가왔다.
  • "많이 놀랐어? 미안해. 내가 미리 차단기를 확인했어야 했는데."
  • 나는 숨죽인 채 그를 빤히 바라봤다. 저 완벽한 얼굴 뒤에 숨겨진, 그 끔찍한 가면의 흔적을 찾아내려 애썼다.
  • 하지만 실패했다.
  • 지금 이 모습이 연기인지 아닌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 “당신... 방금 나를 뭐라고 불렀어요?”
  • 내 목소리는 처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그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