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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버린 내 목숨, 더 찬란하게 피어나리

네가 버린 내 목숨, 더 찬란하게 피어나리

tow lemon

Last update: 1970-01-01

제1화

  • 문이 벌컥 열렸을 때, 나는 한창 웨딩드레스를 피팅하는 중이었다.
  • 등 뒤에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 "화난 건 알겠는데, 혜나야. 장난도 적당히 해."
  • 내가 잠시 굳어 있는 사이, 권승혁의 쉴 새 없는 입놀림이 이어졌다.
  • "신랑도 없이 웨딩드레스는 입어봐서 뭐 하게? 대체 누구랑 결혼 하겠다는 건데? 그리고, 내가 맞춰둔 그 드레스는 어디 가고 이런 구질구질한 걸 걸치고 있어?"
  • 나는 드레스 지퍼를 끝까지 올린 뒤, 고개를 돌려 3년 만에 나타난 권승혁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 쏟아지는 주황빛 햇살 아래, 권승혁의 눈동자에는 놀랍게도 다정함마저 묻어 있었다.
  • "권승혁. 나 결혼하는 거 맞아. 하지만 내 신랑은 네가 아니야."
  • "기억을 잃었나 본데, 우린 이미 3년 전에 끝났어. 게다가 그 당시 네가 한 짓을 생각하면, 내가 너한테 감정이라도 남아있을 거라 생각한 거야?"
  • 권승혁의 비스듬히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딱딱하게 굳어지며, 서늘한 미간 위로 짙은 짜증이 배어났다.
  • "3년 전 일이라니, 서혜나. 너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 "내가 유라랑 아프리카 사파리 투어 좀 다녀온 게 그렇게 큰 죄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네가 유라를 그렇게 괴롭히면 안 되는 거잖아!"
  • 나는 헛웃음이 났다. 권승혁이 그토록 많은 일들을 까맣게 지워버렸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 때마침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채유라가 보낸 메시지였다.
  • [승혁 오빠 혹시 그쪽으로 갔어?!]
  • [오빠는 죽은 척하면서까지 나랑 3년이나 같이 살았어. 지금 당장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오빠 곁에 있을 사람은 나뿐이라고!]
  • 권승혁은 내가 휴대전화에 시선을 뺏긴 것이 거슬렸는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누그러진 음성으로 말했다.
  • "네가 정 이 드레스가 마음에 든다면, 뭐 이걸로 입든가."
  • "하지만 유라가 워낙 화려한 걸 좋아해서 말이야. 나중에 유라한테 비교당해서 초라해 보인다고 내 귀에 대고 징징대지나 마."
  • 나는 뒷걸음질을 치며 권승혁의 말을 차갑게 끊어냈다.
  • "채유라 말대로 네가 정말 기억상실증에 걸린 거라 해도, 내가 널 용서할 일은 영원히 없을 거야."
  • 권승혁의 표정이 굳어버렸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그의 시선이 내 배 위로 뚝 떨어졌다.
  • "그럼 우리 아이는? 아이는 어쩌고 이래?"
  • 내 배 속에 품었던 그 아이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나는 참지 못하고 권승혁의 뺨을 세차게 올려붙였다.
  • "네가 무슨 낯짝으로 아이를 입에 올려?!"
  • 3년 전, 채유라는 운전기사를 매수해 자작 교통사고를 내고는 그 모든 죄를 내게 뒤집어씌웠다.
  • 나는 권승혁이 최소한 내 해명을 들어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권승혁은 '똑같이 당해봐야 정신을 차릴 거'라며 나를 달리는 화물 트럭 앞으로 가차 없이 내던졌다.
  • 뼈가 바스러지는 충격과 함께 몸이 허공으로 튕겨 나갔고,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고꾸라진 나는 두 다리 사이로 뜨거운 피가 왈칵 쏟아져 내리는 것을 두 눈을 뜨고 지켜봐야만 했다.
  •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직후였다. 나는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배를 감싸 안으며, 제발 우리 아이만은 살려달라고 권승혁을 향해 처절하게 매달렸다.
  • 그러나 권승혁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 피투성이가 된 내 손을 싸늘하게 뿌리치며 권승혁이 내뱉은 말은 기가 막히게도 이거였다.
  • "감옥에서 얌전히 죗값 치르고 나와. 그럼 너랑 결혼해 줄 테니까."
  • 권승혁을 향한 미련이 재가 되어 사라졌건만, 그 지옥 같던 순간을 떠올리면 여전히 심장이 생살을 찢어내는 것처럼 참혹하게 아려왔다.
  • 뺨이 돌아간 권승혁은 경악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 "서혜나, 네가 감히 내게 손을 대?"
  •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한번 피팅룸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다짜고짜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온 채유라가 다짜고짜 내 뺨을 매섭게 후려쳤다.
  • "이 미친년! 네가 내 아이를 납치한 거 맞지?!"
  • 눈앞이 번쩍할 만큼 독한 따귀에 머릿속이 새하얘졌고, 입안 여린 살이 터지면서 비릿한 피 맛이 확 퍼져나갔다.
  • 하지만 나는 비틀거리면서도 곧장 똑바로 서서,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채유라에게 똑같이 뺨을 쳐올렸다
  • "증거도 없이 생사람 잡지 마! 머리가 어떻게 된 거면 당장 병원에나 가보든가!"
  • 채유라는 벌겋게 달아오른 뺨을 감싸 쥐고는, 한없이 가련하고 연약한 척 권승혁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 "오빠가 기억을 잃어서, 아직도 이 여자를 여자친구로 생각한다는 거 나도 다 이해해."
  • "저 여자가 오빠 곁에 알짱거리는 것까진 참을 수 있어. 하지만 어떻게 우리 아이한테까지 이런 끔찍한 짓을 할 수가 있어!"
  • "우리 불쌍한 아기, 지금쯤 서혜나 손에 넘어가서 얼마나 끔찍한 짓을 당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 채유라의 새빨간 거짓말을 듣고 있던 권승혁의 눈빛은 무섭게 타올랐고, 씩씩거리며 내게로 달려들어 당장이라도 주먹을 내리꽂을 기세였다.
  • 미리 대비하고 있던 나는 뻗어오는 권승혁의 팔을 쳐내고 황급히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
  • 그러나 등 뒤에서 살기 어린 호령이 떨어졌다.
  • "당장 들어와!"
  • 대기하고 있던 검은 정장의 경호원들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거구의 사내들은 내 어깨와 팔을 꺾고는, 바닥에 강제로 꿇어앉혀 짓눌러버렸다.
  • 무자비한 손찌검이 다시금 내 뺨을 강타했다. 눈앞이 새까맣게 멀어지고 터진 입술 새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 "권승혁! 네가 내게 이따위 짓을 하고도, 내 남편이 널 무사히 살려둘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