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 휴대전화 화면이 번쩍이고는 이내 어두워졌다가, 다시금 요란하게 빛을 뿜어냈다.
- 쏟아지는 메시지 알림이었다.
- [백아린. 너 아까 그게 무슨 뜻이야? 당장 전화받아.]
- [백아린, 그만 좀 해. 나 진짜 취했다고.]
- [아직도 화난 거야? 내가 사과하면 될 거 아냐, 엉?]
- [백아린?]
- [백아린!!]
- 나는 화면을 가득 채운 문구들을 무심하게 내려다보다가, 단 한 글자의 답장도 없이 미련 없이 차단 버튼을 눌러버렸다.
- 다음 날 아침, 강현그룹 본사로 출근해 보니 탕비실 앞이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임세나 특유의 콧소리 섞인, 달착지근하고 역겨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이 목걸이, 어젯밤에 시완이가 선물해 준 거 있지?"
- "이 디자인은 나 아니면 절대 소화 못 할 거라면서 직접 걸어주더라고."
- "솔직히 난 부담스러워서 안 받으려고 했는데, 시완이가 어찌나 고집을 부리던지…"
- 갓 내린 커피를 들고 그 앞을 지나치던 나는 무심코 시선을 던졌다.
- 영롱하게 빛나는 나비 모양의 최고급 루비 목걸이.
- 내게는 너무나도 낯익은 물건이었다.
- 석 달 전쯤이었나. 강시완과 함께 주얼리 부티크 앞을 지나치다 내 시선이 꽤 오래 머물렀던 바로 그 목걸이.
- 그때 강시완은 내게 이렇게 지껄였었다.
- "저런 튀는 디자인은 네 수수한 분위기랑은 안 맞아."
- 그러고는 내 손목을 낚아채듯 끌고 가버렸다.
- 그런데 지금, 그 잘난 목걸이가 보란 듯이 임세나의 하얀 목덜미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 마침 나를 발견한 임세나의 두 눈이 이채를 띠더니, 다분히 의도적으로 목소리 톤을 한껏 높였다.
- "어머, 아린 언니 출근했네?"
- "언니가 보기엔 어때? 이 목걸이 나한테 잘 어울려?"
- "글쎄 어젯밤에 시완이가 술을 잔뜩 마시고는, 한밤중에 그 난리를 치면서 이걸 사 왔지 뭐야."
- "내가 진짜 괜찮다고 말렸는데도 기어코 내게 선물하고 싶대."
- "진짜 못 말려."
- 탕비실 안의 수많은 시선이 일제히 내게 꽂혔다.
-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내 반응만을 흥미진진하게 살피고 있었다.
- 내가 비참하게 질투하는 꼴을 보려고.
- 이성을 잃고 악을 쓰는 꼴을 구경하려고.
- 그러면 임세나는 언제나 그랬듯 눈물을 글썽이며 가련한 피해자 행세를 하겠지.
- '아린 언니, 고의가 아니었어. 제발 화 풀어…' 따위의 대사를 치면서.
- 나는 잔뜩 기대에 부푼 그 가증스러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픽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 "응, 예쁘네."
- "너한테 딱 어울려."
-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여유롭게 커피잔을 들고 그 자리를 미련 없이 떠났다.
- 철저하게 무시당한 임세나만이 얼빠진 표정으로 덩그러니 남겨졌다.
- 오전 10시. 서류를 챙기려 잠시 탕비실에 들러 물을 따르고 있을 때였다.
- 덜컥, 거칠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강시완이 문을 쾅 닫아버렸다.
- "백아린, 얘기 좀 해."
- 나는 텀블러 뚜껑을 천천히 닫으며 시선조차 주지 않고 대꾸했다.
- "강시완 씨. 무슨 용건이시죠?"
- 강시완의 미간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 "너 나한테 그따위로 선 긋고 부르는 것 좀 그만둘 수 없어?"
- "그만둬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 나는 꼿꼿한 시선으로 강시완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 "당신은 본부장이고 나는 일개 직원인데, 공과 사를 구분해서 강시완 씨라 부르는 게 무슨 문제라도 되나요?"
- "백아린!"
- 강시완은 답답한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목소리를 깔았다.
- "대체 언제까지 억지를 부리면서 사람 피 말리게 할 작정이야?"
- "어젯밤에 미친 듯이 전화를 걸었는데 안 받는 것도 모자라, 아예 수신 차단까지 해?"
- "내가 너한테 매달리는 게 부족해서, 일부러 내 애간장 태우려고 수작 부리는 거냐고."
- 나는 가만히 그를 올려다보았다.
- 그의 얼굴에는 '그만해. 네 투정도 충분히 받아줬잖아'라는 오만한 짜증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털끝만큼도 인지하지 못하는 오만함이었다.
- 저 이기적인 인간의 눈에 내 분노는 그저 밑도 끝도 없는 투정이었고, 내 이별 통보는 유치한 사랑 싸움이었으며, 내 결혼 발표는 자신을 안달 나게 만들려는 얄팍한 협박증에 불과했던 것이다.
- 고귀하신 강시완 본부장님께서 친히 하사하시는 애정에, 하찮은 백아린은 그저 감지덕지하며 엎드려야 마땅하다는 듯이.
- "어젯밤 일은 내가 설명할게."
- 강시완이 짐짓 인심이라도 쓰듯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 "세나한테 간 건 맞아. 걔가 요새 많이 우울해하길래, 그냥 오빠로서 잠깐 옆에 있어 준 것뿐이야."
- "그 목걸이도 걔 주려고 작정하고 산 게 아니라, 마침 샵 앞을 지나가는데 세나가 예쁘다고 하길래 그냥 가볍게 기분 전환하라고…"
- "아린아, 네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 이해해. 그래도 이런 건 속 넓게 넘어가 줄 수 없나?"
- "세나는 나한테 어릴 때부터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애야. 내가 챙겨주는 게 당연한 거라고."
- "명색이 내 여자친구라면, 그 정도는 네가 넉넉하게 이해해 줘야지."
- 거기까지 지껄인 강시완이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멈췄다.
- "좋아, 이렇게 하자. 이번 주말에 너 데리고 바다로 호캉스 갈게. 이걸로 어제 일은 확실하게 보상하는 거다, 어때?"
- '내가 이만큼이나 양보해 줬으니 이제 그만 풀어라'라고 시위하는 듯한 그 가소로운 표정을 마주한 순간, 참을 수 없는 헛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 "강시완 씨."
- 나는 쐐기를 박듯 서늘하게 선언했다.
- "우리, 이미 끝난 사이예요."
- "당신이 누구랑 뒹굴든 나랑 아무 상관 없다고요."
- "그깟 루비 목걸이를 누구 목구멍에 걸어주든 그것도 내 알 바 아니고요."
- "난 다음 달 28일에 권도현이랑 결혼해요. 청첩장도 이미 돌렸다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 "하객으로 오겠다면 환영할게요."
- "물론 안 와도 전혀 상관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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