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 임세나의 눈빛 속에는 숨길 수 없는 우월감이 일렁이고 있었다.
- 뼈저리게 익숙한 눈빛이었다.
- 지난 5년, 저 순진무구한 얼굴을 무기 삼아 나를 조금씩 벼랑 끝으로 몰아넣지 않았던가.
- 툭하면 시완의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지껄여 댔다.
- "시완아, 아린 언니가 나 별로 안 좋아하나 봐…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 그러면 강시완은 어김없이 나를 향해 화살을 돌렸다.
- "세나가 저렇게 착한데, 넌 왜 사사건건 애를 쥐고 흔들어?"
- 내 생일날에는 실수를 가장해 케이크를 엎어버리고는 서럽게 울며 사과하는 식이었다.
-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강시완의 짜증 섞인 타박뿐이었다.
- "됐어. 세나가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닌데. 내가 새로 하나 사줄게."
- 물론 그 새 케이크는 영영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 심장 발작으로 숨조차 쉬기 힘들었던 날, 임세나는 보란 듯이 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시완아, 나 오늘 우울해. 같이 있어 주면 안 돼?]
- 강시완은 헐떡이는 나를 병원에 버려둔 채 차갑게 돌아섰다.
- "백아린, 넌 유난히 엄살이 심하더라. 나 먼저 세나한테 가볼게."
- 그날 밤, 나는 홀로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향해야만 했다.
- 같은 시각, 강시완은 임세나의 오피스텔에서 다정하게 야식을 끓여주고 있었고.
- 눈앞의 임세나를 마주한 내 마음속엔 이제 얄팍한 분노조차 남지 않았다. 그저 형언할 수 없는 구역질이 들끓을 뿐.
- "임세나. 네 말이 맞아."
- 나는 서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사람 잘못 만나 결혼하는 것만큼 끔찍한 일도 없지."
- "그래서 이번엔 두 눈 똑바로 뜨고, 내게 완벽하게 어울리는 사람을 고른 거야."
- "그리고 너랑 강시완은 말이야…"
- 나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사색이 되어 서 있는 강시완을 힐끗 쳐다보았다.
- "앞으로도 그렇게 평생 들러붙어 살아. 죽을 때까지 절대 헤어지지 말고."
- "집 열쇠는 사람 시켜서 보낼게."
- "그 집 가구들은 그냥 네가 다 써. 내가 주는 이사 선물 쯤으로 쳐두지 뭐."
- 순간, 임세나의 낯빛이 파리하게 질렸다.
- 내가 어느 집을 말하는 건지 눈치챈 기색이었다.
- 강시완이 내게 사주었던 바로 그 오피스텔.
- 내가 3년을 머무는 동안, 그녀는 수시로 내 영역을 침범하며 안방마님 행세를 즐겼다.
- 그녀가 들이닥칠 때마다 강시완은 뻔뻔하게 내게 요구했다.
- "세나 일 때문에 피곤하대. 좀 편히 쉬게 둬."
- 그러면 나는 도망치듯 집 밖으로 쫓겨나 하염없이 거리를 서성여야 했다.
- 오롯한 내 공간에서조차 다른 여자에게 자리를 비켜주면서.
- 과거의 나는 그 모든 굴욕을 미련하게 참고 또 참았다.
- 하지만 오늘부로, 그 지긋지긋한 호구 짓도 영원히 끝이다.
- 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연회장 출구로 향했다.
- 등 뒤에서 강시완의 악에 받친 고함이 터져 나왔다.
- "백아린! 당장 거기 안 서!"
- 내 발걸음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나는 망설임 없이 안으로 올라탔다.
- 지잉-.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 메시지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 [권도현: 웨딩 촬영 콘셉트는 다 골랐어? 시안 세 개 보내뒀는데, 마음에 안 들면 처음부터 다시 작업하라고 시킬게.]
- 화면을 내려다보는 내 입가에 나도 모르게 산뜻한 미소가 번졌다.
- 육중한 엘리베이터 문이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 좁아지는 틈새 너머로 일그러진 강시완의 낯짝이 시야에서 차단되었다.
- 밤 11시. 샤워를 막 끝내고 나왔을 때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 발신자는 강시완이었다.
- 전화를 받자마자, 짙은 알코올 냄새가 훅 끼쳐오는 듯한 눅눅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 "백아린. 나 취했어."
- "늘 가던 데 알지. 데리러 와."
-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뻔뻔한 명령조. 지난 5년 동안 무수히 반복되었던 지긋지긋한 레퍼토리였다.
- 놈은 술에 취할 때면 어김없이 나를 호출하곤 했다.
- 그러면 나는 한밤중에 침대에서 기어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달려가, 인사불성이 된 놈을 차에 구겨 넣고 오피스텔까지 모셔다드려야 했다.
- 토사물이 묻은 얼굴을 닦아주고, 정성스레 이불까지 덮어주면서.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멀쩡하게 깨어난 그는, 내게 영혼 없는 한마디를 툭 던지는 게 다였다.
- "백아린, 어젯밤엔 수고했어."
- 딱, 돈 안 드는 전용 호구 보모를 부리는 취급이었다.
- "백아린. 왜 대답이 없어?"
- 수화기 너머 강시완의 목소리에 슬슬 짜증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 "빨리 튀어 오라고. 블루노트 바로."
- 나는 휴대전화를 쥔 채, 딱 2초간의 짧은 침묵을 지켰다.
- "안 가."
- 차갑게 내뱉은 나는 가차 없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 다시 포근한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는 내 마음은 소름 끼치도록 고요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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