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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 USB를 손에 넣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경찰이 집으로 들이닥쳤다.
  • “한서윤 씨,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공공장소에서 타인의 사생활을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 가셔야겠습니다.”
  • 나는 짧게 알겠다고 대답한 뒤 USB를 브래지어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 “좋아요. 조사에 협조할게요.”
  • 경찰서에 도착하니 강민혁 측 변호사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 그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 “한서윤 씨, 강민혁 씨 말씀입니다. 지금 공개 사과를 하고 이혼에 동의하시면 강민혁 씨도 고소를 취하하고 더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 나는 의자에 앉은 채 그를 올려다봤다.
  • “내가 거절하면요?”
  • “그럼 감옥에 갈 준비를 하셔야죠.”
  • 변호사가 비웃듯 웃었다.
  • “회사 앞에서 소란을 피운 일도 있고, 사생활 유포 증거도 충분합니다. 판결이 나오면 최소 6개월은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 나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
  • 그저 내 변호사를 만나겠다고만 말했다.
  • 하지만 강민혁은 이미 손을 써 놓은 상태였다.
  • 부성에서 이름난 변호사들은 누구도 내 사건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 결국 갓 졸업한 신참 여자 변호사 하나가 배정됐다.
  • 말도 제대로 못 할 만큼 풋내기였다.
  • 3일 뒤 법원 소환장이 도착했다.
  • 강민혁은 사생활 침해와 명예훼손 혐의로 나를 정식 고소했다.
  • 손해배상금으로 20억 원을 요구했고, 전 플랫폼에 15일 동안 사과문을 상단 고정하라고 요구했다.
  • 재판 당일, 방청석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전부 내 망신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 강민혁 측 변호사는 법정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 남편의 외도 때문에 내가 정신적으로 뒤틀렸고, 악의적인 보복 심리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었다.
  • 윤여진은 몸을 꽁꽁 가린 채 증인석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
  • 누가 봐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 “저는 정말 한서윤 씨의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았어요. 민혁 씨와 저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예요. 한서윤 씨는 사람들 앞에서 저를 모욕했을 뿐 아니라 개를 풀어 저를 물게 했고, 제 아이까지 지워 버리겠다고 했어요.”
  • 방청석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 내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 “원고가 혼인 중 외도를 저지른 것이 먼저였고, 피고는 단지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 “이의 있습니다!”
  • 상대 측 변호사가 즉시 말을 끊었다.
  • “본 사건은 사생활 침해 사건입니다. 혼인 관계와는 무관합니다. 설령 제 의뢰인에게 도덕적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피고의 불법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 판사가 판사봉을 두드렸다.
  • “이의 인정합니다.”
  • 나는 피고석에 앉아 둘이 짜 맞춘 듯 떠드는 꼴을 바라봤다.
  •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 도덕? 저 입으로 도덕을 논한다고?
  • 휴정 시간이 되자 복도에서 강민혁과 마주쳤다.
  • 그는 윤여진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한서윤, 이제 좀 무섭냐? 나랑 여진이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면 배상금 정도는 좀 깎아 줄 수도 있어.”
  • 윤여진은 그의 품에 기대 내게 요염한 눈짓을 보냈다.
  • “서윤 씨, 그냥 인정하세요. 저희랑 싸워서는 이길 수 없어요.”
  • 나는 두 사람을 천천히 훑어보다가 피식 웃었다.
  • “그래요? 그럼 끝까지 가 보죠.”
  • 재판이 다시 시작되자 분위기는 완전히 상대 쪽으로 기울었다.
  • 내 변호사는 상대를 감당하지 못했고 제출된 증거들 역시 죄다 나에게 불리했다.
  •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 내가 패소할 거라고 확신하는 눈치였다.
  • 집으로 돌아온 나는 금고에서 오래된 휴대전화 하나를 꺼냈다.
  • 예전에 엄마가 사용하던 휴대전화였다. 안에는 수많은 영상이 저장돼 있었다.
  • 전부 강민혁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평생 나만 사랑하겠다고 맹세하던 영상들이었다.
  • 나는 영상을 넘기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 내일 선고가 내려진다는 법원에서 온 통지였다.
  • 곧이어 강민혁의 문자도 도착했다.
  • [내일 무릎 꿇고 사과하지 않으면 감옥 갈 준비해.]
  • 나는 문자를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 사과? 좋지.
  • 마침 어디 가서 한바탕 떠들어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으니까.
  • 다음 날,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법정은 기자들로 가득했다.
  • “피고 한서윤이 원고의 사생활과 명예를 침해한 사실은 명백하며 증거 또한 충분합니다. 피고는 원고에게 정신적 손해배상금 2천만 원을 지급하고 전 플랫폼에 15일간 공개 사과문을 게시할 것을 명합니다.”
  • 강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장을 매만졌다.
  • 입가에는 웃음이 가득 번져 있었다.
  • 윤여진 역시 그의 팔짱을 낀 채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나는 판결을 듣고 아무 말 없이 서명했다.
  • 그러자 기자들이 곧바로 몰려들었다.
  • “한서윤 씨, 판결에 이의가 없으십니까?”
  • “사과 의무를 이행하실 생각입니까?”
  • “후회는 하지 않으십니까?”
  • 나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 “이의 없습니다. 사과도 제대로 할 생각이에요. 오늘 밤 8시, 라이브 방송으로 사과하겠습니다. 많이들 와 주세요.”
  • 말을 마친 나는 기자들을 지나쳐 차에 올랐다.
  • 잠시 뒤 강민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 “그래도 눈치는 있네. 오늘 밤 8시에 네 사과를 못 보면 바로 강제집행 신청할 거야.”
  • “걱정 마.”
  • 나는 창밖으로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 “평생 잊지 못할 사과를 해 줄 테니까.”
  • 전화를 끊은 뒤 곧바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엄마가 남겨 둔 영상들 전부 편집해. 그리고 구독자 백만 명 넘는 방송인 몇 명 섭외해. 오늘 밤 8시에 내 라이브를 동시 송출하게.”
  • 비서는 곧바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새빨간 벨벳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 결혼식 날 입었던 바로 그 드레스였다.
  • 나는 화장대 앞에 앉아 천천히 화장을 시작했다.
  • 잠시 뒤 이지아가 커피를 들고 들어왔다.
  •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 “사모님, 정말 사과하실 건가요?”
  • 나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짙은 립스틱을 발랐다.
  • “응. 사과는 해야지. 온 세상이 다 알게.”
  • 저녁 7시 55분.
  • 내 라이브 계정에 예고가 올라갔다.
  • 순식간에 예약 인원이 50만 명을 돌파했다.
  • 온 인터넷이 재벌가에 버림받은 한서윤이 고개 숙이는 모습을 기다리고 있었다.
  • 나는 카메라 앞에 앉았다. 앞에는 오래된 휴대전화와 은행 거래내역서 뭉치가 놓여 있었다.
  • 8시 정각.
  • 나는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 “안녕하세요. 한서윤입니다. 오늘 법원은 제게 사과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래서 사과하려고 합니다. 그것도 아주 확실하게. 사진과 함께 하나하나 보여 드리면서 말이죠. 강민혁 씨, 윤여진 씨. 똑똑히 보세요.”
  • 순식간에 시청자 수가 2만 명을 돌파했다.
  • 채팅창은 나를 욕하는 댓글로 가득했다.
  • 나는 첫 번째 거래내역서를 집어 들고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
  • “먼저 강민혁 씨께 사과드릴게요. 죄송합니다. 당신이 공금을 빼돌려 내연녀에게 별장을 사 준 사실을 폭로한 건 제 잘못입니다. 그건 당신 개인의 사생활인데 괜히 밝혀서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드렸네요.”
  • 채팅창이 3초 동안 멈췄다.
  • 그리고 곧바로 물음표로 뒤덮였다.
  • [공금 횡령해서 내연녀 별장 사 줬다고?]
  • [부자들은 원래 이렇게 노는 거냐?]
  • 나는 은행 도장이 선명하게 찍힌 거래내역서를 카메라 앞에 들어 보이며 가볍게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