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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 다음 날 아침, 나는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이동 광고 차량 50대 예약해. 차체에는 윤여진 사진을 넣고, 현수막도 50개 만들어. 문구는 이렇게 써. ‘강민혁 씨의 내연녀 윤여진 씨의 임신을 축하드립니다. 본처 한서윤이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정오 열두 시에 넥서스 글로벌 그룹 본사 앞에 집합해요.’”
  • 비서는 3초 정도 멍하니 있다가 곧바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 정오 열두 시.
  • 넥서스 글로벌 그룹 본사 앞은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 사람들로 북적이는 와중에 빨간 광고 차량 50대가 일제히 도착했다.
  • 스피커에서는 내가 녹음한 축하 메시지가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 빨간 현수막이 펼쳐지자 거리 전체에서 선명하게 보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 나는 가장 높은 광고 차량 위에 올라 확성기를 들었다.
  • 강민혁이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을 때는 머리카락까지 흐트러져 있었다.
  • “한서윤! 당장 내려와! 너 미쳤어?”
  • 나는 확성기를 들고 웃었고 내 목소리가 광장 전체로 울려 퍼졌다.
  • “민혁 씨, 그게 무슨 말이야? 아이가 생겼다는데 아내인 내가 기뻐해 주는 게 당연하잖아.”
  • 주변에서 터져 나온 웃음소리에 강민혁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보안요원들에게 소리쳤다.
  • “뭐 하고 서 있어! 당장 끌어내려! 차도 전부 부숴!”
  • 보안요원 십여 명이 막 달려오려는 순간.
  • 나는 가방에서 현금 이백만 원이 든 돈다발을 꺼내 하늘로 뿌렸다.
  • “오늘 민혁 씨한테 큰 경사가 났잖아요, 다들 받아 가요!”
  • 현금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졌다.
  • 보안요원들과 행인들은 순식간에 돈을 줍기 시작했다.
  • 그 순간 누가 강민혁 말을 들을까.
  • 다급해진 강민혁은 직접 차 위로 올라오려 했다.
  • 그가 차체 가장자리에 손을 올리는 순간, 나는 그의 손등을 그대로 밟아 버렸다.
  • 가느다란 하이힐 굽이 그대로 살을 파고들었다.
  • “아악!”
  • 강민혁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고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 나는 확성기를 들고 그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 “민혁 씨,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 너무 기뻐서 다리에 힘이 풀렸어? 오늘 저녁에 여진 씨 데리고 들어와... 내 밥이나 해 줘.”
  •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지시했다.
  • 차량은 그대로 현장을 떠났다.
  • 집에 도착했을 때는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이미 난리가 나 있었다.
  • 넥서스 글로벌 그룹 대표 외도#
  • 대표 부인 회사 난입 소동#
  • 재벌 총수 내연녀 임신#
  • 실시간 검색어가 죄다 난리였다.
  • 내가 물을 한 모금 마시자마자 윤여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 전화기 너머로 그녀는 숨이 넘어갈 듯 울고 있었다.
  • “서윤 씨, 어떻게 저희한테 이러실 수 있어요? 지금 회사 사람들이 전부 저를 욕하고 있어요. 저를 미워하신다면 저한테만 하세요. 민혁 씨도, 아이도 상처 주지 말아 주세요.”
  • 나는 짧게 대답한 뒤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 “그래요? 그럼 제가 어떻게 해 주길 바라는데요?”
  • “제가 지금 당장 서윤 씨 집 앞에 가서 무릎 꿇고 사과할게요. 그러니까 저희를 좀 놔주세요.”
  • 그 가식적인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 “그래요, 집에서 기다릴게요.”
  • 전화를 끊자 나는 이지아를 불러 마당에 있는 개를 풀어 놓으라고 했다. 그 개는 아버지가 예전에 키우던 독일 셰퍼드였다. 평소에는 뒷마당에만 있었고 내 말만 들었다.
  • 이지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 “사모님, 괜찮으시겠어요? 무슨 일 생기는 거 아니에요?”
  • 나는 귤을 까며 느긋하게 말했다.
  • “걱정 마. 그 녀석은 착한 사람은 안 물어. 남의 걸 빼앗는 년들만 물지.”
  • 30분쯤 지나 초인종이 울렸다.
  • CCTV 화면을 보니 윤여진이 흰 원피스를 입고 문 앞에 서 있었다.
  • 뒤에는 기자들까지 잔뜩 몰고 왔다.
  • ‘불쌍한 척 쇼를 하러 왔네.’
  • 나는 가정부에게 문을 열어 주라고 했다.
  • 문이 열리자마자 윤여진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 “서윤 씨, 제가 잘못했어요. 저를 용서해 주시면 안 될까요?”
  • 말이 끝나자마자 셰퍼드가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었다.
  • 윤여진은 비명을 지르며 뒤돌아 도망쳤다.
  • 흰 원피스는 나뭇가지에 걸려 아래에서 허리까지 길게 찢어졌다. 그녀는 옷을 챙길 생각도 못 한 채 맨다리를 드러내고 달아났다.
  •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쉴 새 없이 터졌고 나는 2층 창가에 서서 그 광경을 즐겁게 지켜봤다.
  • 윤여진은 뒤를 한 번 돌아보더니 더 빠르게 달아났다.
  • 나는 피식 웃으며 방으로 돌아왔다.
  • 그때 휴대전화 알림 하나가 떴다.
  • 재벌 총수 내연녀 노출 사고#
  • 강민혁 내연녀 알몸 질주#
  • 기사를 눌러 보니 사진도 아주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 나는 그 기사에 좋아요를 눌렀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 강민혁의 재무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 그 인간 비리만 하나 터뜨려도 골치 꽤 아플 것이다.
  • 마우스가 암호화된 폴더 하나에 멈췄다.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곧바로 열렸다.
  • 기억을 잃기 전의 내가 남겨 둔 일기와 장부였다.
  • 안에는 강민혁과 윤여진이 각종 호텔을 드나들며 찍은 사진들과 공금 유용 내역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 나는 파일을 하나 복사해 USB에 저장했다.
  • 이건 진짜 좋은 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