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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호텔에서의 첫만남 그리고 키스

  • ***
  • 하아.. 하아…..
  • 디올 정장과 시영이 서로의 몸에 얽히고설켜서 호텔방으로 들어왔다.
  • 두 사람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오랜만에 만난 애절한 남녀 주인공같았다.
  • 시영이 술에 잔뜩 취했고 디올 정장은 정신이 오롯이 멀쩡하다는 것만 제외하면.
  • 디올 정장의 조각같은 턱선이 옆으로 능숙하게 기울고, 시영의 빈틈을 거칠게 파고들었다.
  • 시영은 술에 취해 얼굴이 발그레 달아 올랐고, 거의 인사 불성의 상태였다.
  • 시영의 청순한 긴 머리카락이 그녀의 촉촉한 입술을 침범하자, 디올 정장의 입술이 아슬아슬하게 시영의 입술에서 떨어졌다.
  • 시영이 그녀답지 않게 베시시 웃으며 입술에 닿아온 자신의 머리카락을 방해물인 마냥 뒤로 넘기고는 다시 디올 정장에게 바짝 다가갔다.
  • 하지만 잘생긴 그의 얼굴은 시영에게서 잠시 떨어져 그녀의 진주빛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 둘. 빠르고 능숙하게 풀어내려갔다.
  • 그는 잘난 얼굴만큼이나 너무도 능숙했다.
  • 인사불성인 시영은 술에 취해 베시시 웃으며 몸을 그에게 맡겼다.
  • 술이 그녀의 도덕심도, 또렷한 정신도 다 앗아가 버렸다.
  • “으응….. 하지 마요...”
  • 디올 정장의 탄탄한 몸이 셔츠 사이로 드러나고, 시영이 몸을 살짝 피했다.
  • 그녀의 동작에 남자가 아찔한 듯 시영의 턱을 한 손으로 잡고 그녀의 목 뒤로 깊숙이 손을 감았다.
  • 그리고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시영의 귓가를 간질였다.
  • “걱정 마요. 내일이면.. 아무 기억도 나지 않을 거니까.”
  • 그는 여자를 너무도 잘 아는 남자였다.
  • 첼로같은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남자의 뜨거운 열기가 시영의 입 안으로 스며 들어왔다.
  • 따뜻한 열기가 서로의 몸과 몸으로 옮겨가면서 점점 뜨거워져 갔다.
  • 시영은 능숙한 그의 키스에 자신도 모르는 새 그의 품으로 깊숙이 빨려들어갔다.
  • 디올 정장이 시영을 탁자 위에 올리고는 시영의 몸을 달게 파고들었다.
  • ***
  • ......!!!
  • 내가 내 바뀐 옷과 디올 정장의 가슴팍에 있는 립스틱 자국을 다시 여러번 빠르게 번갈아보았다.
  • 세상에……. 미쳤어 김시영!!!!!!!?
  • 상상에서 벗어나 다시 현실의 호텔방으로 돌아온 내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 “안돼. 안돼. 안돼! 안돼에!!!!!”
  • 상상 속의 나는 술에 취해 저 디올 정장에게 온전히 몸을 맡기고 있었다.
  • 그런데, 전혀 생각이 안난다. 아무 것도.
  • 나 정말 인사불성으로 … 대체 저 남자랑 뭘 한 거지?!...
  • 나.. 나 대한의 유교걸이었는데. 원나잇은 물론, 전남편 민준 외에는 아무 남자와도 한 적이 없는 순결한 이 몸을.
  • “이…. 이… 이 변태자식아!!!”
  • 남자가 나를 보며 놀란듯 눈가를 찡그렸다. 뭐? 그의 입모양을 읽을 수 있었다.
  • “너 너 솜노필리아(somnophilia*)지! 잠 자거나 술 마셔서 쓰러진 여자한테 흥분하는 변태!”
  • 솜노필리아들은 잠을 자거나 의식이 없는 여자에게 흥분을 느끼는 이상성욕자이다. 가령 지하철에서 옆에 술취한 여자의 허벅지를 더듬는다거나 하는 사람들이 이런 부류다.
  • 내가 살면서 이런 변태성욕자를 실제로 만날 줄은. 세상에 이런일이.
  • “너 너 나한테 잘못 걸렸어. 내가 말야. 정신과 전문의야. 내가 너 신고한다. 어딨어 내 핸드폰.”
  • 핸드폰을 가방 속에서 찾았다. 경찰서가 112던가.
  • 내가 허겁지겁 핸드폰에서 112버튼을 누르고 통화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 디올정장의 억지로 분노를 억누르는 듯한 나지막한 목소리가 내 손가락을 멈춰세웠다.
  • “하.. 미치겠네.”
  • 바지 주머니에 양 손을 넣고서 그가 기가막히다는 듯 말했다.
  • 뭐? 벙찐 표정으로 112를 누르는 내 손가락이 멈춰섰다. 경찰서가 112가 아니라 119던가..? 아니 그건 소방서지.
  • 내가 번호를 누르며 망설이던 그때, 디올정장이 분노를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 “당신 어제 밤새도록 오바이트 했다고!!”
  • 뭐? 내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 첼로 음계같은 그의 고급스러운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퍼졌다.
  • “이 자켓 이거 이거 보여? 지금 내가 그쪽 신고해도 모자랄 판인데. 뭐라고? 뭐 변태?”
  • 그가 자켓을 내쪽으로 던졌다. 그가 던진 자켓엔 온갖 토사물들이 묻어있었다. 아. 어제 내가 라면을 먹었던가.. 하하.
  • 인상을 쓴 그의 앞에서 한참을 어쩔줄 모르고 서있었다.
  • 어제와 달리 앞머리를 올려 이마가 드러난 그의 얼굴이 더 잘나 보였다.
  • 키가 왜저렇게 큰 거야.
  • 사실 저런 남자랑 했다면 감사하다고 내가 엎드려 절을 해야 할 것같긴 했다.
  •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같았다.
  • “…죄송합니다…”
  •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그는 다리가 참 길고 모델같았다. 그가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어이없다는 듯 노려보았다.
  • 그가 턱끝으로 나를 가리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마치 직장 상사같은 말투였다.
  • “하…. 일단, 저기 앉아요. 할 말이 있으니까.”
  • “넵.”
  • 나는 아무 반항 없이 그의 말에 순종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그의 맞은편 쇼파에 앉았다. 쇼파는 생각보다도 더 크고 푹신했다.
  • 디올 정장이 긴 다리를 꼬며 쇼파에 등을 기대었다. 살짝 들려진 그의 고개에 높은 콧날과 잘생긴 턱선이 도드라져 보였다. 그가 팔짱을 낀 채로 입을 열었다.
  • “하아. 내가 살다살다 별일을.”
  • 내가 그를 보며 민망함에 베시시 웃었다.
  • “그래도 제가 어제 먹은 게 라면이 다라서 다행…..”
  • “그걸 말이라고! 하.”
  • 디올 정장의 표정에서 깊이 있는 빡침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마치 포커페이스를 하는 법을 따로 배우기라도 한 것같았다.
  • 그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다시 교육을 잘 받은 듯한 고급스러운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대신 그가 머리가 아픈 듯 긴 손가락으로 이마를 꾹꾹 눌렀다.
  • “근데… 무슨 일로… 할 말이 있으시다고..”
  • “지난 일은 됐고. 요즘 나한테 중요한 일이 있는데, 그쪽이 적임자인 것같아서요.”
  • ‘그쪽’이란 단어를 말하며 그는 잘생긴 턱끝으로 나를 가리켰다.
  • 존댓말이지만, 은근히 부하직원에게 말하는 듯이 느껴졌다.
  • 아까 상상 속의 그의 야한 모습의 여운이 가시질 않아 그를 마주하고 앉아있는 내 몸이 딱딱하게 긴장이 되었다.
  • “제.. 가요? 제가 그럴 리가.”
  • “그쪽 자는 동안 내가 잠깐 알아봤는데. 전 대통령이 그쪽 친척이라면서요?”
  • “뭐. 한 번도 못봤는데, 그렇긴 하죠. 가까운 친척은 아니고. 한 십.팔. 촌인가 이.씹.팔. 촌 정도.”
  • 일부러 십.팔.촌과 이.십.팔.촌을 강조해서 말한 건 안비밀이다. 그가 살짝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말을 이어갔다.
  • “아버지도 대학교수 겸 의사시고. 뭐 그럼 집안은 합격이고. 정신과 의사죠?”
  • “뭐 경찰이에요? 어떻게 그걸 다 알았대. 무슨 일인데 그래요. 뭐 범인 심문하는 데 정신과 의사 자문이라도 필요해요? 저 지금 페이닥터로 일하는 곳도 따로 있어요.”
  • “복수할 명분도 확실하고.”
  • 그가 나를 평가하듯 훑어보며 말했다. 은근히 기분나쁜 눈빛이었다. 마치 강제적으로 면접장에 끌려온 것같았다.
  • “아니. 무슨 일인데 그래요. 무슨 일인지 먼저 말을 해줘야 할지 말지 결정하죠.”
  • “내 아내가 되는 일.”
  • 뭐? 누구 아내가 돼?
  • “뭐 잘못 알아보신 거 아니에요? 저… 이혼녀예요.”
  •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디올 정장은 이혼녀라는 내 말에도 전혀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대신 그가 내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 “어제 나한테 재혼하자고 했잖아요?”
  • 그러고 보니. 내가 어제 그렇게 말하고 그의 가슴팍에 쓰러졌다. 멋쩍은 듯 내가 웃어보였다.
  • “생각할 시간을 7시간 주죠. 아까도 말했다시피 내가 아주 바쁜 몸이라서 말이죠.”
  • “아.. 아니”
  • 그가 시계를 보며 쇼파에서 일어섰다. 신문지는 어느새 정갈하게 접혀 있었다. 나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벙 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그가 일어서서 나가다가 나를 흘끗 보며 말했다.
  • “아. 그리고 여기 스위트 룸비나 어제 술값은 안내도 괜찮아요.”
  • 그럼 다행이다. 휴우…가아니라 뭐??!
  • “이 호텔 내 거거든요. 그럼. 정확히 7시간 뒤에 보죠. 전대통령과 십.팔. 촌 혹은 이.십.팔. 촌 되시는 김시영씨.”
  • 그가 문을 열고 나갔다. 내이름은 어떻게 알았지..
  • 그리고 십. 팔. 촌을 꼭 저렇게 강조할 필요는. 근데 이 이화 호텔이 자기 꺼라고? 이거 우리 나라에서 제일 좋은 호텔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