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다음 화
전남편이 결혼한다

전남편이 결혼한다

영광로맨스

Last update: 2023-01-29

제1화 결혼식장에 선 전남편과 그 불륜녀

  • 하은아.
  • 너. 네 남편이나 애인이 바람피운다는 거 생각해본 적 있어?
  • 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
  • 내 남편, 내 남친은 나밖에 몰라. 라고 단정지으며 네 턱끝을 야무지게 올리고 있을 거야.
  • 대한민국 기혼, 미혼 남성의 48.7%가 불륜 및 바람 경험이 있다는 21년도 통계청의 객관적인 통계는 깔끔하게 무시하고 말이지.
  • 내가.. 어떻게 아냐고?
  • 그야 물론
  • 나도 그랬으니까.
  • 객관적으로 우리 결혼생활은 별로 나쁘지 않았어.
  • 물론.
  • 나쁘지 않았다는 건.
  • 그닥 좋지도 않았다는 거지.
  • 민준도 그랬을까.
  • 하아. 하아
  • “으응. 아응. 좋아. 오빠. 키스해줘.”
  • “하아. 미치겠다 연희 너땜에. 왤케 섹시한 거야.”
  • “빨리이. 오빠 와이프 오겠다.”
  • 병원에서 퇴근하려고 나서던 중 탕비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어.
  • “하아. 걔 지금 밖에서 차 시동 걸고 기다린대. 혼자 좀 가지. 오빠는 잠깐만 우리 연희랑 더 같이 있고싶은데.”
  • “아아응. 오빠. 근데 걔랑 뽀뽀 안하는 거 맞지?”
  • “뽀뽀가 문제냐. 나는 걔 얼굴만 봐도 이제 지겨워.”
  • 뭐? 우리 연희? 걔? 판도라의 상자인 걸 알지만. 남자의 목소리는 내가 너무도 잘 아는 목소리였어. 그 문을 열지 말았어야 했을까. 아니면 그 문을 연 내 선택이 옳은 것이었을까.
  • 그냥 전남편 김민준의 스쳐가는 바람 아니었을까.
  • 지난 몇 년간 그 순간만 떠올리면 자다가도 침대를 뒤집어 엎고 싶어.
  • ‘끼이익.’
  • 나는 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어.
  • 그리고 보고 말았지.
  • “헉. 시영아...”
  • “어머. 부원장님..”
  • 보고 말았어.
  • 내 남편이 나이 어린 간호사와 옷을 거의 벗다시피 하고 서로에게 얽혀 있는 모습을.
  • “김민준… 너 대체 뭐하는 거야… 병원에서. 그것도 내 간호사랑”
  • 병원 상담실에 와서 남편의 불륜으로 울고불고하는 여자들은 많이 봤지. 정신건강의학과의 고객은 50% 이상이 남편의 외도로 우울증에 걸린 여성들이니까.
  • 그런데, 그게 내가 되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내가…
  • ***
  • ‘전남편 김민준 이 개자식아. 이제 진짜 잘가라 굿바이.’
  • 결혼식장은 유명 정재계 인사들로 가득했다.
  • 이 결혼식장은 신라호텔 영빈관.
  • 예식장 대관료만 해도 3억이 넘어 유명인이나 재력가만 결혼할 수 있다는 예식장이다.
  • 그곳 한가운데에 내 전남편 김민준과 그의 불륜녀 이연희가 서있다.
  • “어머. 신랑신부가 너무 선남 선녀네요.”
  • “신랑될 사람을 그렇게 재벌가에서 다들 눈독을 들였었다며?”
  • 곱게 옷을 입은 여자들 몇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 정신과 의사 김민준.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이다. 저 잘난 얼굴에 속아 내 29살 꽃다운 나이에 결혼했었다.
  • 결혼식장은 화려했다.
  • 역시 대한민국 10대 재벌가 자제의 결혼식다웠다. 베라왕 웨딩드레스에 반짝이는 커다란 불가리 다이아몬드 반지까지. 이게 바로 부자의 결혼식이다라는 걸보여주는 듯했다. 여기 저기 눈에 익은 정치인, 연예인, 기업가들이 보였다.
  • “어머. 신부가 정말 연예인같이 예쁘네요.”
  • “허허. 이 회장님은 복도 많으셔.”
  • 이준호 회장. 대한민국 10대 기업인 이화기업 회장이다.
  • 혼주로 참석한 그는 깔끔한 검은색 양복을 입고 하객들을 향해 허허 웃고 있었다.
  • 날씨는 더할나위 없이 맑다.
  • 김민준이 이준호 회장에게 말을 건다. 내 전남편 김민준의 눈이 잠깐 나를 발견하고 놀란 눈이 되었다.
  • 비릿한 웃음이 내 입가에 서렸다.
  • 지금 당장 김민준에게 다가가 그가 입은 저 검은색 양복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 보통 드라마에서 다들 그렇게 하던데?
  • ‘김민준. 내 선배였고, 내 사람이었고, 내 남편이었고, 이제는 내 배신자가된…이 개XX야. 잘가라. 그리고 잘살아라.’
  • 그와 마지막 이혼도장을 찍을 때가 생각난다. 그는 불륜을 들켰음에도 뻔뻔하게 병원을 정리한 비용의 절반을 원했다.
  • “소송은 별 의미 없을 거야. 알지? 우리 연희네 헉소리날 만한 재벌가인 거.”
  • 그래서 위자료 하나 없이 이혼했다.
  • 대한민국 법률은 간통죄도 없어졌다. 불륜 남녀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아내를 보호하는 법률따위 대한민국엔 없었다.
  • “억울해…”
  • 정말 억울했다.
  • 순식간에 내 남편,
  • 내 직장이었던 개인병원까지
  • 모두 다 사라져 버렸다.
  • 오늘 이 결혼식을 위해 아침부터 곱게 화장했을 저 불륜녀 이연희때문에.
  • 생각해보면.. 이연희 간호사는 처음 병원에 들어왔을 때부터 내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많이 했다.
  • 처음에는 이연희가 병원 건물주 딸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남편 김민준이 자꾸만 이연희 간호사를 감싸고 돌 때도 별 의심을 하지 못했다. 김민준이점점 더 그녀를 감쌀수록 서서히 그녀는 내 말을 안듣기 시작했다.
  • “연희씨. 환자와 상담하고 있는데, 밖에서 그렇게 크게 전화통화를 하면 어떻게 해.”
  • “부원장님. 병원 한 번 가보셔야 하는 거 아녜요? 별로 크게 통화하지도 않았는데, 은근 되게 예민하시네.”
  • “연희씨. 말을 뭐 그런 식으로 해? 근무 중에 전화통화하는 간호사가 잘못된 거지 그걸 나무라는 의사가 잘못한 거야?”
  • “되게 까다롭게 구시네. 그니까 김민준 원장님이 부원장님이랑 말 섞으시는 거예요. 여자가 애교가 좀 있어야지. 하여튼 너무 뻣뻣하시다니깐.”
  • “뭐??”
  • “무슨 일이야. 부원장. 이 간호사. 왜이렇게 시끄러워?”
  • “어머 원장님. 나오셨어요? 부원장님이 자꾸만 별거 아닌 거로 혼내세요. 히잉. 저 진짜 일 못해요. 원장님?”
  • “부원장. 자꾸 별 거 아닌 거로 간호사들 혼내지 좀 마요. 환자들 보기 껄끄러워서 원. 흠.”
  • 항상 이런 식인데, 일찍 눈치 채지 못한 내가 바보였다.
  • 멀리서 나를 바라보는 이연희씨의 입가에 나를 비웃는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 ‘내가 얼마나 우스워 보였으면 그런 짓을 했을까?’
  • 뒤늦게 안 일이지만
  • 저 여자는 내가 친정에 가 있을 때면, 내 신혼집에 와서 내가 손수 고른 내 가구와 그릇들을 사용했다.
  • 내 집에서 요리를 하고 씻고 민준의 카드를 쓰고…
  • 내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내 침대에서 잠을 자고…
  • 민준과 병원에서 나몰래 밀회를 즐겼다. 새까맣게 아무것도 모르던 나를 바보라고 비웃으면서..
  • 그녀와 내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 그년이 민준의 팔에 팔짱을 꽉 끼며 나를 노려본다.
  • ‘자알 살아보라지. 내 전남편이랑.’
  • 이렇게 보니 내 전남편 김민준과 저 이연희 씨 굉장히 잘어울리는 한쌍이다.
  • 청춘의 덫이란 드라마에서 자기 버린 전남편에게 심은하가 그렇게 말했던가. ‘당신 부셔버릴 거야.’라고? 나도 한때 너희 둘을 부셔버릴 거라고 이를 갈았었다.
  • 아니. 부셔버리는 걸로 내 마음은 풀리지 않는다.
  • 저 예쁜 얼굴을, 저 예쁜 입을, 저 봉긋한 가슴을 날카로운 가위로 깊게 찔러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
  • 아니 라이터라도 있다면 불이라도 질러 저 얼굴에 화상을 입히고 처절하게 저 여자가 망가지는 걸 지켜보고 싶다.
  • 아니. 드라마에선 다들 그렇게 하더라니까?
  • “모두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이제 곧 신랑. 신부 입장입니다.”
  • 사회자의 말이 식장 안을 울렸다.
  • 전남편 김민준과 이연희가 하객석으로 가서 앉았다. 그들은 신랑측 하객으로 오늘 이곳에 왔다.
  • 누군가 내 손을 꽉 잡았다. 내 손을 잡은 남자를 올려다 보았다. 잘생긴 저 옆얼굴. 김민준도 잘생겼지만, 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잘생긴 남자이다.
  • “기분 안좋아요? 얼굴 좀 펴지. 보는 눈도 많은데.”
  • 신랑이 내게 나직이 말했다. 내 얼굴이 굳어있었나.
  • 그럴리가.
  • 오늘은 기쁜 날인걸.
  • “그럴 리가요. 오히려 기뻐요.”
  • 손에 든 꽃잎을 만지작거리며 내가 말했다.
  • 내 목이 서서히 빳빳이 서는 게 느껴졌다. 내 입꼬리가 나도 모르게 올라갔다.
  • “오늘은,
  • 내가 신부인 걸요.”
  •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우리를 향해 하객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 그렇다.
  • 오늘은
  • 내가 재혼하는 날이다.
  • “그것도 전남편과 그 불륜녀가 보는 그 앞에서.”
  • 결혼식은 두 번째지만, 이렇게 화려한 결혼식은 이번이 처음이다.
  • 예전에 김민준과 결혼할 때는 둘다 갓 졸업한 학생이라 돈이 부족해서 시장통같은 예식장에서 겨우겨우 결혼식을 올렸다.
  • 이걸 신데렐라라고 하나. 아니지 나는 재혼하는 거니까. 재혼한 신데렐라라고 해야 하나?
  • 뭐 아무렴 어떤가.
  • ‘나는 지금 대한민국 10대 재벌가의 첫째 아들 이지훈과 재혼한다.’
  • 그리고 김민준과 이연희는 남편쪽 하객으로 이 자리에 와있다. 그들이라고 이 결혼식에 참석하는 걸 거절할 생각을 못했을까. 전 아내의 결혼식인데, 피하고싶었겠지.
  • 하지만 그들은 그럴 수 없었을 거다.
  • 바로
  • 내 남편이 될 이지훈 대표의 여동생이
  • 바로 저 불륜녀 이연희 간호사니까.